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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살. 민폐를 친절로 갚아준 베트남 (1)

by Mimyo

해당 여행기는 2019년 12월 말에 여행 갔던 이야기입니다. ( 코로나가 터지기 바로 직전. )

그냥 가볍디 가벼운 여행기입니다.


지금까지도, 제일 행복했던 순간을 꼽아보라고 하면 항상 이야기하는.

22살, 혼자서 무작정 떠났던 베트남 여행기를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정말 민폐만이 가득했던...



여행을 가게 된 계기


2019년, 열심히 다니던 회사에서 뜻밖에 일주일 전사휴가를 받게 되어서

다들 뭐 할까 들떠 있는 참에 나도 진지하게 고민해 보게 되었다.

' 해외여행 가기 딱 좋은데... 미묘님도 해외 다녀와요! '


라고 많이 들었지만, 휴가 날짜는 바로 12월 말.

다들 연말이라 바쁘고, 22살이었어서 대학 다니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었기에 같이 갈 사람 따위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해외여행을 갈까 말까.. 이전에 갔던 인도와 태국은... 전회사에서 단체로 간 거라, 확실히 진정한 여행의 묘미를 느끼지 못했던 건 사실이었으나, 가이드 없이 그리고 지인 없이 이렇게 혼자 떠나도 될까? 고민이 먼저 앞섰다.


그러다 뭔가 미래의 내가 시그널을 보낸 듯, 그냥 무작정 비행기 티켓을 예매했다.

나 지금까지 혼자 잘 컸고 혼자 다 이겨냈는데, 낯선 나라에서 여행도.. 괜찮지 않을까?

근거 없는 자신감이 나를 평생 잊지 못할 단 한 번의 순간으로 날 이끌었다.


난 정말 계획적인 사람이다. 무슨 일을 벌리든 A플랜 B플랜 / 가장 긍정적인 상황 / 가장 부정적인 상황 모두 가정 하에 일을 진행시키는 사람이다.

그래서 정말 내가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땅에 가서 문제가 생겼을 때 대비책이 필요했다. 그래서 동행도 구해볼까 고민하던 찰나, 큰오빠 친구가 호찌민에 거주 중이라고 해서 여차하면 나와주겠다 약속을 받고 마음의 안정을 찾아 여행 준비를 시작했던 거 같다.


그리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여행날이 되었다.

그날 바로 퇴근 후 캐리어를 끌고 공항으로 향했다.





비행기 시간이 7시이었기에, 내가 살던 지역에서 공항까지 갈 수 없는 시간대라

결국 인천공항 내의 '다락휴'라는 캡슐호텔에서 머물렀다.

지금 자취하는 5평 방보다 훨씬 작은 방이었고 화장실도 나가야만 있었지만 그래도 잠깐 눈 붙이기엔 좋았다.

못 일어날까 노심초사했지만 다행히 알람소리를 잘 듣고 일어나 준비를 했고,

새벽이라 열고 있는 카페나 음식점도 없어 심심하게 기다렸다.


그러다가 곧 탑승시간이 다가왔고, 겨울이었어서 짐을 최소화하고 싶어서 겉 옷을 공항 내에 맡겼는데.

그 후로 깨달은 점, 이어폰을 코트 안에 넣어놓고 왔다 -> 비행기 탈 때 노래를 못 듣는다?????????


난 장시간 이동이든 단시간 이동이든 무조건 이어폰을 지참해야 하는 사람이라,

이어폰을 사야 한다는 긴급한 미션이 주어졌다.

비행기 시간 7시, 이어폰 판매 매장 오픈 6시 30분.

나에게는 정말 식은땀이 날 정도로 조마조마한 미션이었는데 다행히 구매하고 비행기에 제대로 탈 수 있었다.





민폐를 극도로 혐오하는 민폐쟁이


김종욱 찾기 넘버만 주야장천 듣고 ( 해외 갈 땐 왠지 김종욱 찾기 넘버들만 듣게 된다.. )

무사히 베트남에 도착을 했는데, 마일린 택시를 타고 원하는 장소로 찍고 도착했다.

그런데 문제는 계산의 대한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내가 안절부절못하니 내가 들고 있던 지갑을 기사님이 갑자기 휙 가져가시는 거였다!


알아서 금액을 가져가셨다.


혹시나 덤터기 씐 게 아닐까 했는데 딱 맞게, 아니 오히려 더 적게 가져가신 듯했다.

이때부터 바보 모먼츠를 엄청 뽐내기 시작했는데 그 이후가 더 굉장했다.


한국인들이 많이 간다는 마사지샵에 이동하던 중,

설레는 마음으로 새하얀 원피스를 입고 캐리어도 끌고 가고 있었다.

근데 진짜 알 수 없는 돌부리에 캐리어와 함께 넘어져서 엄청난 소리와 함께 나자빠졌다.


진짜로 대자로 넘어졌다.


주위 여성 분들은 너무 놀라서 내가 큰일 난 줄 알고 소리를 지르셨고(ㅠㅠ) 내가 넘어지자마자 어떤 현지인 할아버지께서 소리 지르고 곧바로 나를 일으켜 주셨다. 엄청나게 걱정하는 표정으로 알 수 없는 베트남말을 연신 외치셨다. ( 추측으론 너 괜찮은 거 맞냐 한 거 같다 )


정말 창피해서 쥐구멍에 숨고 싶은 지경이었는데 일으켜주신 할아버지께서 너무 친절히 챙겨주셔서 미친 듯이 감사하고 창피했다. 이때부터 느꼈다.


아, 베트남은 친절의 나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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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보다 시원했던 마사지를 받고 슬리핑버스( 긴 시간 이동해야 하는 거리를 갈 때, 누워서 갈 수 있는 버스 ) 예약 확인을 위해 투어사를 찾아갔다.

직원분이 안내하는 말을 분명 알아들었는데.. 불안하셨는지 내가 문 밖에 나가고 바로 나오시면서 영어로 " 너 꼭 이 시간에 이 앞으로 와야 해! " 외쳐주셨다. 이때 확실히 느꼈다.

아 나 좀 모자라 보이는구나?


그런데 그 직원의 염려가 이루어져 버렸는지, 시간과 장소는 맞춰서 왔는데 그 시간에 오라는 이유가 안에 들어가서 티켓을 먼저 바꿨어야 했다. 그래서 버스 타기 바로 직전에 난리가 나서 연신 쏘리만 외쳤다. 남에게 민폐주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데, 어찌 여행 첫날부터 민폐의 기운만 폴폴 풍기고 다녔는지.

그렇다고 직원들이 타박 주거나 하지도 않았다. 다급하긴 했지만.


생각보다 편안했던 슬리핑버스였지만, 이게 소통이 잘 이루어진 건지 의심을 하게 됐고 구글맵을 켜놓고 자다 깨다 하며 내 숙소 앞에 내려주나 기다렸다.

다행히 직원분이 내리라고 말해줬고 새벽 1시경에 숙소에 도착하여 친절한 직원, 맛있는 웰컴드링크, 그리고 극한의 졸림을 참아내며 당일 새벽 5시에 있을 무이네 지프투어 때 입을 옷을 미리 꺼내놨다.


옷 꺼내놓고 그냥 기절하듯이 잤는데, 얼마나 피곤했는지 휴대폰 알람을 못 듣고 계속 자다가 프런트 전화로 투어사 가이드가 기다리고 있다고 말해줬다.

와, 진짜 나 어제부터 이 나라에서 민폐란 민폐는 다 끼치는구나. 한국에선 절대 없을 일인데.

거적데기 같은 옷 주워 입고 화장도 그냥 쿠션만 대충 두드리고 프런트에서 전화가 온 지 5분 만에 나갔다.


다행히 가이드가 화내거나 하진 않았다. 근데 어쩌다 보니 나만 투어를 신청했어서

가이드 한 명과 숨 막히게 어색한 여행이 시작됐다.

설상가상, 난 더운 나라면 새벽에도 더울 줄 알았지. 아까 말한 거적데기 같은 옷은 아주 얇디얇고 등이 다 파인 원피스였는데 사실 너무 추웠다. 그냥 참고 가야지 하는 찰나, 가이드가 번역기로 무언가 말하고 보여줬다.


" 당신 너무 추워 보인다. 내 옷 입을래? "

하곤 아디다스 져지를 벗어서 선뜻 주는 게 아닌가... 가이드도 그 안엔 반팔만 입고 있었다. 가이드도 안 춥진 않았을 텐데. 너무 감사했다.


그리고 도착한 사막. 가이드는 입구까지 데려다주고 시간 맞춰 오면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로 했다.

딱 선라이즈 투어였어서 일출을 기다리는데 정말.. 살면서 본 일출 중 가장 아름다운 일출이었다.



일반적인 하늘에서 볼 수 없는 색상들이 눈앞에 펼쳐지고.. 카메라로 담을 수 없는 웅장함이 내 뇌와 가슴을 일렁이게 했다. 정말 다시 한번 보고 싶은 풍경.


그렇게 일출을 감상하던 중 사막에서 오토바이? 지프?를 탈 수 있게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근데 관광객들(99% 한국인)이 많이 안 타고 있었고, 그러다가 갑자기 한 분이 돈 안내도 되니 한 번 타보라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게 첫 해외는 아니었으니 호락호락하게 넘어가지 않았고 돈 없다고 했다.

그랬더니 돈 있는지 안 물어봤고(?) 재밌을 테니 한 번 타보라고 했다.

속는 셈 치고 한 번 타볼까. 하고 탔는데 진짜 그 사막에서 달리는 오토바이 중 제일 빠르게 달려줘서 너어무 즐거운 나머지 소리를 엄청 질렀다. 내가 재밌어 보였는지 다른 사람들도 점점 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태워주던 분이 " 혹시 네가 운전해 볼래? " 해서 오 그건 무서울 거 같다했지만 자기가 뒤에서 잡아줄 테니 걱정 말라해서 결국 또 내가 운전해서 사막 한 바퀴를 돌았다.


재밌었다. 그리고 혼자 와서 대화할 사람 없는 나에게 선뜻 먼저 말 걸어주고 돈도 안 받겠다 하니 감사했다. 내리니 정말 돈을 안 받으려 했는지 잘 가라고 해서 그냥 기분이다! 싶어 팁도 주고 같이 사진도 찍었다.


다시금 느꼈다. 진짜 친절의 나라야.





그렇게 나머지 일정을 진행하면서 가이드가 중간중간 포토스폿에서 사진을 엄청 찍어주셨다. 일찍 일어나서 화장을 좀 더 했었어야 하는데 싶을 정도로 내 꼴이 말이 아니었지만.

그날 하루 너무 감사했어서 팁도 넉넉히 드리고 다시 숙소로 도착했다. 리조트는 처음 묵어본 거였는데 지나가는 직원마다 연신 뷰티풀을 외쳐주셔서 "you too"를 엄청 외쳐댔다.


그리고 리조트 내에 있는 마사지 스파는 꽤 가격이 나갔지만 과연 제 값을 할까 궁금해서 들어가 봤는데,

무슨 드라마 회장님이 들어올 법한 방이었다.

바로 앞에 잉어가 가득한 연못이 있었던 것.

그래 일단 뷰는 완벽하군. 어쨌든 마사지가 훌륭해야지.


참고로 나는 현재 2025년까지 마사지를 받으면서 잔 적이 딱 한 번이 있는데 그 한 번이 딱 여기다.

애초에 누가 나를 만지고(?) 있는데 마사지받으며 잔다는 말을 이해 못 했었다. 근데 여긴 실현시켰다. 투어를 받아서 피곤했던 것도 있었겠지만 다른 나라를 갔을 때도 동일한 피곤함에 마사지를 받아도 나를 잠들게 한 곳은 여기뿐이었어서 정말 기억에 남는다...




거의 이틀 간의 이야기의 일부만 다시금 쓰는데도 나의 민폐짓에 참 놀랍다. 필자는 한국에서 남의 시선을 엄청 신경 쓰고 남에게 피해 주는 일을 극도로 싫어하기 때문에... 처음으로 나의 민폐를 이해해 주는 나라를 만났다. 민폐를 친절로, 곱절로 갚아주었다.

조금은 딱딱했던 내 사고와 행동을 풀어주게 해 준 나라.


그렇게, 남은 여행도 여러 친절에 갇혀서 행복한 여행을 보내게 되는데... ( 다음 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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