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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묘 Sep 07. 2024

새벽 6시 25분

삐비빅 - 삐비비빅 -


새벽 6시 25분.


알람 소리에 눈을 뜬다. 천장에 그려진 물 얼룩이 비명을 지르는 것 같다. 창문을 옮겨 다니는 수없이 많은 발그림자가 싫어서 커튼을 달아 달라고 엄마를 귀찮게 했다. 그땐 엄마가 있었다. 누군가 인생은 드라마 같다고 했던가, 어떤 감독이 만들었는지 알 수 없는 내 인생은 망작이다. 드라마틱했던 그 사고로 나는 혼자가 되었다. 눅눅한 반지하 방과 함께. 


창문 밖으로 보이는 건 없지만 코끝으로 느끼는 차가운 공기로 지나가는 계절을 알 수 있다. 적당히 껴입고 참치캔을 하나 챙긴다. 현관문을 열면 바로 왼쪽에 창고 같은 게 있다. 위층에 사는 사람들이 버려놓은 쓸모없는 것들이 쌓여 있는데, 이용가치는 없고 버리기엔 골치 아픈 그런 대형 폐기물들은 다 이곳 반지하로 오는 것 같다. 들고 나온 참치캔을 따서 켜켜이 쌓인 물건들 사이로 집어넣는다. 쭉 밀어 넣는데 어제 넣어둔 참치 캔이 안에서 부딪혔다. 벌써 2주째, 좁은 틈 안에서 허겁지겁 참치를 먹어 치우던 작은 고양이가 보이지 않는다.


지하철역으로 가는 걸음 내내 노란 고양이를 떠올렸다. 고양이가 잘못될 만큼 추운 날씨는 아니라고 생각했고, 먼 동네로 놀러 갔을 거라 여긴 지 열흘이 넘었다. 종종 뉴스에서 보던, 동물을 학대하는 악마 같은 인간들이 떠올랐지만, 나에겐 그저 먼 이야기라고 여겼다. 


걸음을 멈추게 한 건 핸드폰 진동 때문이었다. 이 시간에 나에게 연락할 사람은 없다. 점퍼 주머니에 찔러 넣은 손끝에서 진동이 느껴진 지 오래되었지만, 선뜻 확인하지 못했다. 지하철 계단을 내려가면서 손가락으로 핸드폰을 툭, 툭, 건드려 보았지만, 지하철을 타고 나서야 핸드폰을 꺼내 보았다. 핸드폰 메시지는 온통 읽지 않은 광고성 문자뿐이다. 종종 알바 대타를 해줄 수 있겠냐는 사장님들의 연락도 있었지만, 최근엔 그마저도 없었다. 핸드폰 진동의 주인은 채용 결과 메일이었다. 선뜻 확인하지 못하고 첫 번째 알바에 도착했다.


오늘 같은 주말에는 호텔 웨딩 알바로 하루를 시작한다. 오전부터 두세 시간 간격으로 진행되는 결혼식 뷔페의 테이블을 세팅하고, 식이 시작되면 저마다 한껏 꾸민 사람들이 한 입씩 먹고 쌓아 놓은 그릇들을 치운다. 대형 스크린을 통해 보이는 결혼식 장면을 흘깃 보며 감상에 젖었던 때도 있었다. 나한테도 저런 날이 올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보다는 절대 가질 수 없을 것 같은 절망감이 컸다. 노동의 강도를 못 느낄 만큼 쓰리고 아렸다. 그래도 그땐 사람 비슷했던 것 같다. 지금은 스크린에 눈길조차 주지 않고 식사하는 사람들의 그릇에만 시선이 향한다. 시각에 반응하는 팔과 다리는 정상 작동하지만, 시각적 감각이 뇌로 전달되는 경로는 상실한 지 오래다. 서빙하는 AI 로봇과 다를 게 뭐가 있을까. 


북적였던 홀이 어느덧 텅 비었다. 옷을 갈아입으면서 핸드폰을 다시 꺼낸다. 액정 위에서 한참을 허우적거리던 손가락이 겨우 메일 제목에 가 닿았다. 


“안녕하십니까,

TS그룹 채용 전형에 지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서은님께는 안타깝게도 이번 공채에서 합격의 기쁜 소식을 전해드리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서은님의 뛰어난 역량과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제한된 선발 인원으로 인해 합격 소식을 전해드리지 못한 점 널리 양해 부탁드립니다…”


날 위해주는 척 좋은 말로 포장해 논 불합격 메일이 휴지통에 가득하다. 뛰어난 역량과 잠재력은 애초에 나한테 없다. 그런 걸 발견할 여유도 만들 시간도 없었다. 나는 절대  평범한 직장인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굳이 공들여 확인하는 것 같다. 알고 있었지만, 되도록 많은 사람의 입을 통해 듣는 과정이다. 내 삶에서 일말의 가능성도 남겨두지 않을 것이다. 작은 희망은 더 큰 열정을 만들어 낸다. 열정이 커지면 결국엔 수많은 파편을 허공에 뿌리며 터져버린다. 다시 주워 담을 엄두도 못 낼 만큼.   


여전히 나의 감각은 감정을 배제한 채 자동화되어 있다. 어떠한 뇌의 지시도 없이 편의점 저녁 알바로 발걸음을 향했다. 주말이나 공휴일, 명절 같은 날에 단 한 번도 알바를 빼본 적이 없다. 이런 알바생을 두고 만족스러워 한 사장은 내 알바 시간을 늘렸다. 그때 알았다. 날 귀하게 여기는 고마운 마음이 아니었다는 걸. 가성비 좋은 기계를 더 많이 활용하며 일명 뽕을 뽑겠다는 본전을 찾게 되는 마음이란 것을 말이다.


밤의 끝자락을 지나 새벽으로 접어들 때 즈음 다음 알바생이 왔다. 형식적인 인사를 나누고는 바로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유통기한이 지나 더 이상 판매할 수 없는 상품들을 가방에 쑤셔 넣는다. 집에 가면 끼니라는 것을 종종 잊는 내 위 속에 쑤셔 넣을 것들이다. 내가 유일하게 돈을 들여 구입하는 건 고양이용 참치 캔이다. 이젠 그 노란 고양이의 식성까지 알아버렸다. 좋아하는 맛의 참치 캔을 집으려는데, 며칠 동안 먹은 흔적 없이 놓여 있던 참치 캔들이 떠올랐다. 새로운 참치 캔을 사면서 입맛 까다로운 아기 고양이의 반찬 투정을 상상해 본다. 아무 일 없었던 듯 나타나 줄지어 놓여 있는 참치 캔들을 뷔페 삼아 허겁지겁 먹어 치우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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