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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묘 Sep 08. 2024

백발 약사와 노란 알약

집으로 돌아가는 새벽 한 시에는 시린 냄새가 난다. 하루 종일 사람들이 지나다닌 동네 골목은 구석구석 작은 쓰레기들이 박혀 있고, 계절과 상관없이 그날의 가장 차가운 공기로 채워져 있다. 그 공기들을 압축하고 응축해 놓은 곳이 바로 내가 사는 집인 것 같다. 집으로 가는 내내 골목에 쌓여 있는 쓰레기봉투 틈 사이사이를 흘깃 본다. 하필이면 노란색인 종량제 봉투가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한다. 결국엔 도착해 버린 반지하 계단을 내려간다. 센서 등 하나 없는 깜깜한 계단이지만 익숙한 발끝 감각으로 아무렇지 않게 내려갔다. 그때 1층 입구에서 한껏 취한 목소리가 들렸다. 


“응 그렇다니까? 내가 지하에 있는 쓰레기 같은 것들 싹 다 처리했지. 재수 없는 도둑고양이들은 다 갖다 죽여야 해, 이놈의 집구석 답답하고 안 풀리는 건 불길한 고양이들 때문이야.”


위층 어딘가 사는 중년의 남자라는 걸 단번에 알아차렸다. 휘청휘청 발자국마다 체중을 실어서 지하에 있는 방이 울리는 것 같다.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지 건물 전체에 쩌렁쩌렁 목소리가 퍼졌다. 그 목소리가 깨운 건 고요한 새벽만이 아니었다. 마치 에스프레소를 연거푸 두 잔 원샷한 것처럼 정신이 맑아졌다. 감각이 뇌에 가서 닿은 것 같았다. 


깜깜한 현관문 앞에서 얼마나 서 있었는지 모르겠다. 오늘도 노란 고양이가 끝내 보이지 않는다.









새벽 6시 25분.


삐비빅 - 삐비비빅 -


알람 소리, 그리고 천장의 물 얼룩. 


달라진 게 있다면 알바 가는 길마다 뻗친 골목 사이사이를 유심히 쳐다본다는 것이다. 허름하고 외진 곳에 있는, 그리고 연로한 약사가 있을 법한 약국을 찾는다. 어려서부터 살던 동네지만 샅샅이 들여다본 골목은 마치 처음 이사 온 것처럼 새로웠다. 


특별할 것 없어서 괴로운, 그런 평범한 날이었다. 그날도 골목을 유심히 쳐다보며 알바를 가는데, 노란 꼬리가 휙 하고 지나갔다.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골목이기에 오랫동안 못 봤던 그 노란 고양이를 떠올렸다. 인간보다 발달된 감각과 본능으로, 밥을 챙겨주던 날 기억하지는 않을까. 


반가운 꼬리를 따라가다 보니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낯선 골목에 다다랐다. 보였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던 노란 고양이의 모습을 끝내 놓쳐버린 순간, 골목의 끝에서 허름하다 못해 지저분해 보이기까지 한 약국을 발견했다. 뿌연 유리창 너머로 제멋대로 쌓인 약상자들 때문에 약국 내부가 잘 안 보였다. 유리창 가까이에 가서 보니 신문을 읽는 백발의 약사가 어렴풋이 보였다. 약국의 형색만큼은 내가 찾던 딱 그 모습이었다.


‘요즘 세상에 여전히 신문을 읽는 사람이 있네’ 

약국 문을 열고 들어서자 읽던 신문을 접으며 인사를 건네는 약사는 족히 90살은 넘어 보였다.


“어서 오세요. 어디가 아파서 왔어?” 콧잔등을 타고 내려온 안경 위로 보이는 눈이 쭈글쭈글하다. 


“저… 그게… 요새 잠이 안 와서요…”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서 적당히 운을 떼 보았다.


“그건 요즘 젊은 사람들이 하도 핸드폰을 들여다봐서 그래, 핸드폰 딱 내려놓고 자기 전에 따뜻하게 우유 한 잔 마시고 자봐!”


역시 약국을 잘 고른 것 같다. 수면제는 처방전이 꼭 필요하다는데, 여기는 처방전 없이도 대충 수면제를 내어줄 것 같은 작은 기대감이 생겼다. 세상 돌아가는 것에 밝지 않아서 불법을 저지르고도 모를 것 같은 그런 약국 말이다.


“수면제… 좀… 살 수 있을까요?” 최대한 담담하게 내뱉어 본 말이었다. 부자연스럽거나 긴장하는 모습을 들켜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당연하지, 약국인데 약이 없을까 봐? 그런데 너무 약에 의존하지 말고 일단 따뜻한 우유 한 잔 마셔보라니까?


돌아온 약사의 말에, 하마터면 환호성을 지를 뻔했다. 작은 기쁨 같은 것이 느껴진 게 얼마 만인지 헤아릴 수도 없었다. 과거의 기쁜 데이터 따위가 없으니까. 약사의 말에 적당한 단어를 찾지 못해서 아무 대답도 못 하자, 한숨을 푹 내쉰 약사가 체념하듯 약통 하나를 꺼냈다.


“학생 인상이 참~ 좋아서 좋은 수면제 추천해 주는 거야, 이거 딱 하나만 먹어도 잠이 푹 들어서 누가 업어가도 모른다니까? 두세 알 먹었다간 하루를 꼬박 잠들 만큼 효과 만점이지.” 


혹시라도 처방전을 달라고 하면 어떤 핑계를 대면서 수면제를 달라고 해야 할지 다양한 버전을 고민하다가 가격을 물었다. 


“얼마예요?”

“오천 원.”


 지긋한 연세 탓에 절차를 잊은 게 분명하다. 인지하지 못할 때 얼른 사서 약국을 빠져나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서둘러 돈을 내고 도망치듯 나왔다.


“수면제라는 게 한 번에 너무 많이 먹으면 못써~!”


급하게 나오는 내 뒤통수에 대고 수면제의 복용법을 친절히 읊어주는 약사를 보니 머지않아 이 약국도 곧 문을 닫겠구나 싶었다. 물론 나는 이후에 이 약국이 문을 닫을지, 운 좋게 영업을 이어 나갈지 알 리 없겠지만.


어떻게 지구가 수억의 시간 동안 어지럽게 자전과 공전을 해왔는지 알 것 같다. 어떻게 한 번도 쉬지 않고 적당한 맥박으로 심장이 뛰어왔는지도 알 것 같았다. 수면제를 한 통 가득 손에 넣고도 나의 발은 편의점에 아르바이트하러 간다. 관성이라는 건 법칙이 맞는 것 같다. 오늘 밤 내가 깨버릴 법칙.


오늘은 일을 끝내고 편의점에서 나올 때, 유통기한이 지난 제품을 챙기지 않았다. 이젠 연료를 넣을 필요가 없는 몸이다. 지금 남은 에너지면 충분하다. 어김없이 눅눅한 현관문을 열면서 쓸모없는 것들이 쌓인 그 공간을 습관처럼 쳐다본다. 오늘 밤 쓸모없는 알바 기계 하나가 노란 고양이처럼 조용히 사라져 버릴 것이다.


하얀 약통에 노란 수면제가 가득 들어 있다. 하필이면 노란색, 그 알약 색깔 덕분에 주춤할 뻔했던 순간은 결국 나를 붙잡지 못했다. 한 줌 가득 쥐고 물을 연거푸 삼켰다. 알약의 개수가 많아서 점점 삼키기 힘들어졌다. 나의 삶은 마지막까지도 쉬운 게 없다. 반쯤 비운 약통을 아무렇게나 두고 잘 준비를 했다. 그만하면 충분했다.


잠자리에 누워 알람을 맞춘다. 대상이 없는 나의 복수는 내일 새벽 알람 소리를 거역하고 절대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공전 궤도를 이탈하면 태양과 멀어지겠지만 어지럽지는 않을 것 같다. 끝이 보이지 않는 시간을 끊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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