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이루어졌다.

할 수 있음의 행복

by 강 작가

2026년 2월 27일 오후


"입학만 시켜 주시면,

누구보다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入学できたら、誰よりも頑張ります!!)"


대학원 석사과정 면접이 끝나고

문을 나서며,

나는 거의 외치듯 말했다.


그렇게

나의 대학원 생활이 시작됐다.


지은 지 50년이 넘은 목조 건물.

넓이 3.5평의 원룸.

세탁기, 건조대 공용.


나의 첫 보금자리다.

벅차올랐다.


5시 반 기상.

주 3회 7시부터 12시 반까지

요양원에서 아르바이트.


14시부터 23시까지는 도서관.

24시가 되면 기절하듯 잠들었다.


아르바이트가 없는 날에는

수업과 공부에 집중.


그냥 좋았다.

일본인과 중국인 친구들,

그리고 한국인 선배들과 함께

공부를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만했다.


입학금 등 초기 자금 약 200만 엔은

아버지의 유산으로 충당했고,


월세 3만 엔, 공과금 5천엔, 통신비 3천엔,

식비 2만 2천엔,

월 생활비 6만 엔은 아르바이트로 마련했다.


저녁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카모카와(鴨川) 강둑에 앉아

입술을 포개는 커플들에게

자전거 플래시가 비추어졌을 때

그들이 놀라는 모습은 나의 작은 즐거움이었고,


두 달에 한 번씩

한국에서 배송되는 식품은

나의 외로움을 채워 주는 누나의 애정이었다.


아껴 먹으려고

꽁꽁 숨겨두었던 스팸을

가로로 크게 잘라 굽고 있던

선배의 모습에 분노했고,


상자에 고이 모셔둔 아몬드를 꺼내는 순간

쥐들이 파먹은 구멍으로 아몬드가 후드득 떨어질 때는

울고 싶었다.


한 달에 한 번

나에게 허락한 회전 초밥은

나에게 주는 선물이었고,


몇 달에 한 번씩 모이는

은사님 댁에서의 시간은

그 자체만으로도 힐링이었다.


나날이 발전하는

나의 일본어에 놀라는 교수님들의 반응은

나에게는 격려였고,


"잘하고 있어"

지도 교수님의 이 한 마디는

성장의 동력이었다.


나는 그때

이미

꿈 안에서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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