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8시 39분], 4장
<4>
피곤하다. 여느 때와 다르게 나는 잠기는 눈을 달고 출근길에 올랐다. 불과 어제만 해도 말똥 했던 내 눈이 이렇게 피폐해진 것은 아직까지도 선명한 그 지하철의 악몽 때문일 거다. 아무도 없는 그 지하철 속 나와 딱 그녀뿐이었던, 심장을 조여 오는 숨 막히는 어젯밤의 그 꿈. 흉흉하다. 이런 걸 두고 흉흉하다고 하는 거다. 괜히 어둑한 분위기에 어쭙잖게 꾸며 놓은 스토리텔링을 색칠해둔 들판 같은 곳이 흉흉한 것이 아니다.
39분 차에 몸을 실어야 하는데, 걸음이 괜히 느려진다. 거북이 같은 운동화를 신었다 해서 이렇게 거북이가 될 일인가. 한국인의 출근길이라고 하기에는, 마치 게으른 양반 흉내를 내며 지하철역에 다가가고 있다. 아마 그 여자와 마주치기 싫은 내 자아의 귀여운 몸부림인 듯하다.
어찌나 빨리 나왔는지, 39분 열차를 탈 수밖에 없겠다. 그저 뒹굴거리며 빈둥 댔는데도 이렇게 빨리 준비가 끝난 것은 꽤나 오랜만이다. 악몽 때문에 일찍 깨서 그런가. 이럴 줄 알았다면 더욱이 빠른 열차를 탈 수 있게 더욱이 빨리 준비를 하는 것이었는데.. 막상 출근 준비라는 것이 분침 돌아가는 속도에 맞춰 그 속도가 달라진다는 것을 다들 공감할 것이다. 39분 열차를 타던 습관대로 거실에 달린 저 시계의 분침이 저 정도 가 있으면, 내가 이 정도 단계의 출근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할 텐데 하면서, 일찍 일어난 것은 마치 저 세상 속 이야기라는 듯이, 결국은 내 몸이 39분 열차에 맞춰서 아침 출근 준비를 하게 된다.
나는 오늘도 플랫폼에 서 있다. 함께 몸을 세우고 있는 검은색 스크린도어에 내 몸뚱이가 비친다. 어제보다도 잘 만져진 머리, 직장인 같지 않은 부드러운 인상, 무엇보다도 얼마 전 새로 산 옷이 무척 잘 어울린다. 그리고 오른쪽을 바라봤다. 무의식이라고 핑계를 대보겠지만, 사실 나는 궁금하다. 그리고 그녀가 있었다. 그 여자, 오늘은 안경을 쓰지 않았다. 괜히 그저 둘러본 마냥 왼쪽, 오른쪽, 뒤, 앞, 시야가 잘 안 보인다는 듯이 눈도 찡그려보고, 괜히 그녀를 보기 위해 내 고개를 돌렸다는 것을 눈치채게 하고 싶지 않다. 그러면서 몇 번이나 그녀를 눈에 담았다.
'어디서 봤더라...'
안경을 썼을 때와 너무 다르다. 그리고 안경을 벗은 저 여자의 얼굴은 무엇인가 낯이 익는다. 저 여자는 그래서 나를 아는 사람의 눈을 피하듯 내 눈을 피했던 것인가. 그래, 그랬던 건가 보다. 그럼 그렇지.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을 이렇게 꿈까지 꾸어가며 떠올릴 리가 없지. 음. 흠. 음냐. 그래서 누구라고? 그러다 결국 오늘도 그 여자와 전철을 같이 타고 같이 내렸다.
전 대리님은 젊은 꼰대다. 이런 말이 있다지, '젊은 꼰대는 그저 나이가 어리기에 젊은 꼰대라고 표현한다고...'. '그냥 꼰대'라는 말이다. 본인'만'이 조직을 사랑하는 사람인 마냥 남들이 하는 모든 것들에 혀를 차는 양반이다. 하루는 나에게 '그런 신분으로 일하면 무슨 기분이냐'라며 망언을 던졌다가, 나에게 호되게 당한 적이 있었다. 무기계약직에게 신분 타령이라니, 너랑 나랑 같은 정규직이야, 이 사람아. 자기만의 기준으로 누군가를 이렇다 저렇다 이야기하는 일이 얼마나 기분 나쁜 일인지 알아야 할 것이다. 언젠가 알게 해주리라..
아침부터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본인이 어제 카센터를 다녀왔다는 말이다. 이제 여름이 금방 올 텐데 에어컨 점검도 받을 겸 차를 맡겨두고 왔단다. 오랜만에 전철을 타니, 예전에 어떻게 이렇게 통학을 하고, 어떻게 이렇게 출퇴근을 했는지 모르겠다며, 은근히 지금의 자신을 치켜세운다.
'에휴, 꼴 보기 싫다'
모닝커피나 테이크 아웃하겠다며, 자리를 뜬다. 그러다 전 대리님이 나를 부른다.
"주임님, 어디 가요?"
그냥 피곤해서, 그냥 커피 한 잔 사러 간다고, 그리고 나는 쓸 데도 없이, 같이 갈 거냐고 물었다. 당연히 '아니요, 괜찮아'라는 말을 기대했다. 그리고 휙 돌아설 계획을 마쳤다. 그러나 어느새 그 사람과 커피를 사러 함께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다. 아침부터, 짜증 난다.
아무런 기대 없이 회사를 다니는 일에도, 어쩌면 이런 '전 대리님' 같은 사람 때문에 괜한 기대를 가지게 된다. 벌써 3년이 넘은 것 같다. 이 회사에서 직급에 대한 기대도, 업무 성과에 대한 기대도, 개인 역량 성장에 대한 기대도 없이, 가끔은 가방도 없이 빈둥빈둥, 다리만 움직여 잠깐 머리를 쓰러 출근한 지도 벌써 3년이라는 말이다. 이곳에 오기 전, 샐러드 가게에서 종이 쪼가리에 적힌 고객의 커스텀을 훑어보며, 어차피 내 돈이 들어가지도 않은 샐러드를, 푹푹 양껏 퍼내어 담던 시절이 나았겠다. 아니면 그 이전에 가끔씩 오븐을 여닫으며 놀이공원에서나 팔 것 같은 '츄러스' 빵을 구울 때도 있었지만, 그리고 덕분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도 했지만, 그 시간만큼, 그 빵을 구워내는 시간만큼 내가 빛나면서도 눈치 보지 않고 일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츄러스 집'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면, 가끔은 함께 일하는 상냥하지 않은 알바생들 때문에 비위를 조금 맞춰주느라 피곤하기도 했었다. 그렇다 한들, 결국 생산을 해내지 못하면 서비스의 앞단에 있던 그들에게도 괜히 귀찮은 일이 생길 테니, 그들도 나에게 비위를 조금 맞춰줘야 하는 일이 당연했었다. 진상 고객이 방문하는 날이면 결국은 내가 앞단으로 넘어가 이러쿵저러쿵 고객의 컴플레인을 달래주는 일도 있었지만, 그러면서 생기는 '나'라는 직원의 존엄성이 더 드높아졌던 것이다. 그래도 꽤 그곳에서는 사명감 넘치게 일했던 것 같단 말이지. 그때 같이 일했던 친구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으려나.
오늘 퇴근길에는 그 여자가 없었다. 이 편이 낫겠다며, 편한 마음으로 귀가를 했다. 어제부터였겠지. 이렇게 내가 출퇴근을 불편하게 하고 있는 것. 아예 피곤하지 않은 상태는 아니지만, 하루 9시간을 꼬박 회사에서 보내야 한다는 것을 아는 데서 시작되는 잠재적 피곤함, 그리고 반쯤 아니 3분의 1쯤 덜 깬 잠을 유지하고 있는 만성적 피곤함, 그리고 '전 대리님'과 같이 한심한 인간을 마주할 것이라는 귀찮음 같은 예측 가능한 피곤함들을 인지한, 그러면서도 이런 일상을 적응했다는 내 몸이 허용한 그 적당함 같은 것들이 있다. 그런 '적당한 피곤함'을 가진 채, 나름 편안하면서도 평안한 출퇴근길이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나는 요즘 그녀를 신경 쓴다. 지긋지긋하게 날 따라다닌다. 왜 이렇게 날 따라다니는 거지. 첫눈에 반하기라도 했나, 그건 아니다. 내 스타일이 전혀 아니다. 어려서 잘 먹지 못하고 자란 아이처럼 비실비실 말라 비틀어서는, 길쭉한 달걀형 얼굴에 다크서클까지 내려앉았다. 외모 비하라고 생각하겠지만, 내 스스로 아무도 듣지 않지만, 외모 비하가 아니라며 뒤늦게 수습하는 중이다. 그 사람이 별로라는 말이 아니라, 내가 선호하는 스타일이 아니라고 말하는 중이다. 오해하지 마라. 아무튼 이것은 사랑이 아님이 분명하다. 나도 사랑이라는 것은 해봤다. 많이는 아니지만. 그러다 갑자기 내 사색을 뒤흔드는 전화 진동이 울린다. 전 대리님이다. 참내, 퇴근하고도 이렇게 귀찮게 굴다니.
"네, 대리님. 잘 들어가셨어요?"
그러면 그렇지. 혀가 꽤 꼬여있다. 아직 주말이 채 되지 않았는데, 오늘도 술을 마신 모양이다. 잘 마시지도 못하신다던데, 아 물론 나는 대리님과 단 한 번도 술을 같이 하지 않았다. 전 대리님은 회사 내에서 가장 사교성이 밝은 사람이다. 그렇지만 나는 그의 술 자리 제안을 거절한 얼마 몇 되지 않는 사람이다. 아무튼 퇴근한 나에게 지금에서야 일을 지시한다. 본인이 지금 처리해야 할 것이지만, 술이 취해버렸으니, 윗사람에게 말하긴 껄끄럽고, 그렇다고 일을 안 할 수는 없었을 모양이다. 진짜 마음에 안 든다.
"대리님, 근데 저도 지금 밖이라서요. 죄송합니다. 과장님께 말씀드려볼까요? 어쩌죠?"
이런 사람에게는 윗사람을 거들먹거리며 거절하는 편이 가장 편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젊은 꼰대는 역시 윗사람을 가장 두려워한다. 인정받고 싶을 테니까. 그러자 대리님은 본인이 처리하겠다며, 퇴근했는데 미안하다며 진심도 담기지 않은 말을 툭 뱉으며 전화를 급하게 끊는다.
'어쩌라고. 진짜. 여기저기. 신경 쓰기 싫은 사람 투성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