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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호 Aug 28. 2021

나를 알지 못하는 그의 눈치를 대강은 알아챈 일

[아침 8시 39분], 6장

<6>


  오늘 결국 나는 그에게 나라는 존재를 명확히 했다. 사실 그 선배는, 지금은 선배는 아니지만, 5년 전쯤 일 것이다. 츄러스(정식 명칭은 추로스겠지만, 우리 가게에서는 ‘츄러스’라고 했었다) 가게에서 함께 일하던 남자였다. 상냥하지만 까칠했던, 솔직하지만 가장 속을 알 수 없었던 남자였다. 잘생긴 얼굴에 그다지 야망이 없었던 사람이었기에 가게 내에서도 불편함 없이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던 꽤 인정받는 선배였다. 그리고 나는 그 가게에서 온갖 부류의 손님들의 비위를 츄러스를 자르는 가위질 박자에 태우며 시간을 때우던 캐셔로 일했다.


  마지막 학기다. 조교 일을 병행하는 빡빡한 이번 학기를 마치면 나에게도 직장인이 될 자격이 부여된다. 대졸자라니, 요즘 대졸자 절반 이상이 가진 직업이 ‘백수’라고 한다던데, 그것 마저도 하고 싶다. 매일 9시 출근하는 조교 일 보다야 훨씬 나을 것 같으니까.

  아무튼 매일 같이 그 옛 선배가 눈에 거슬려오던 찰나가 반복되고 있었다. 한결같은 시간에 맞춰 전철 플랫폼에 서 있는 그 남자가 은근히 나를 의식하고 있다는 것을 나도 의식하고 있었다.


  하루는 퇴근길마저도 겹쳤었는데, 그날은 내가 전화하는 모습도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 생각을 해보면, 아침에 눈이 마주쳐서 인사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했었는데, 그 남자가 그냥 아는 체를 하지 않았기에 나도 그저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러고 저녁에 또 마주치고선 아침에 인사를 못해 미안하다는 듯이 계속 내 전화를 훔쳐 듣는 듯한 느낌으로 눈을 흘기던 것이었다.

  지하철을 내려 집 가는 길에서도 뒤를 졸졸 따라오더니 그 남자가 문득 발걸음을 빠르게 옮기기에 나를 불러 나에게 인사를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잠시 긴장을 했었다. 그러나 속 시원하게도 나를 앞질러 걸어가는 의도였기에 오히려 내가 뒤에서 그 남자를 보면서 속도를 맞추는 게 낫겠다 싶어 안심을 했었다.


  차라리 그냥 인사를 하고 얼굴 트고 출퇴근길을 싱그럽게 해 볼까도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런 긴장감 같지도 않은 긴장감을 혼자 논하면서 ‘왜 이러고 있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괜히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이 재밌기도 한 것 같다. 오늘도 그 선배를 만나게 될지, 그리고 오늘은 머리를 올렸을지 내렸을지, 그리고 오늘도 그 흰색 스니커즈를 신고 왔을지 - 그 스니커즈는 새로 산 것일 뿐 나와 일했을 당시에 신던 그 디자인의 그 모델명 그대로의 스니커즈였다. 오히려 그가 위험하지 않다고 느낀 것은 이런 이유도 있었다. 그는 그 흰 스니커즈부터 여전히 그대로다.


  오늘의 이야기를 다시 해보자. 오늘 결국 나는 그에게 나라는 존재를 명확히 했다. 음 정확히는 오늘도 내가 8시 39분 전철을 탔다는 사실을 알린 꼴이 됐다. 그리고 더 구체적으로는 그 시간의 전철을 탈 때 당신을 의식하고 있다는 것을 당신이 의식할 수 있도록 서두른 꼴이 됐다. 꼼짝없이 우리는 아는 척을 하는 사이가 된 것이다. 오늘 내가 뛰어서 전철을 탄 바람에.

  이런 불규칙한 사건은 삶에 파도를 만든다. 아는 척하는 일이 귀찮은 일이 된다는 것은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피하기 위해 나는 애써 그 5년 전의 스니커즈마저 기억할 정도로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그 남자를 모르는 체하며 전철을 타고 내려왔다. 그리고 오늘은 그 규칙성을 허물었다. 열차 창문에 내 눈을 잔뜩 붙인 채로 그 남자가 전철을 타지 않은 사실을 그렇게 유심히도 관찰했다. 그 남자가 내가 유심히 관찰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도록 그렇게도 잔뜩 그 남자를 의식하면서.


  ‘어? 근데 잠깐. 그런데, 그는, 좀, 이상했다.’


  눈은 휘둥그레 토끼 같이 뜨고선, 열차 창문에 비친 나를 따라 고개를 돌리고선, 입꼬리는 귀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마치 이 상황이 불편하지 않은 것처럼, 마치 첫눈에 반한 사람에게 사랑이 빠졌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렇게 나를 보고 있었다.

  과연 내가 그의 자리에 있었다면 그런 표정을 짓고 있었을까. 옛 선배가, 어언 일주일을 매일 같이 마주치지만 나에게 아는 체 하지 않는 그 선배가, 허겁지겁 달려 열차에 타는 것을 본다면, 그리고 그가 창문에 얼굴을 붙이고 나를 바라보고 있다면, 나는 그런 손짓과 그런 몸짓과 그런 표정을 짓고 있었을까. 민망한 나머지 고개를 휙 돌려버리거나 뒤를 휙 돌아서지 않았을까.


  ‘아, 어쩌면 그는 나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겠다.’


  그리고 이어 의아했다. 매일 같이 그 시간에 그 열차를 타는 그 남자가, 그 열차에 탄 나와 눈이 마주할 수 있었다는 것은, 그 열차를 타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는 것. 그 남자도 오늘 아침 8시 39분 열차를 늦었던 것일까, 아니면 잘 탔었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다시 내린 것일까. 왜?

 

  그 남자는 나를 바라보았다. 나도 그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는 그 스니커즈를 신었다. 내가 잘 아는 그 스니커즈다. 어쩌면 나는 그 남자의 시선보다, 그게 더 잘 보였다. 나는 옛 선배에 대한 그 기억의 많은 부분들을 그 흰색 스니커즈로 대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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