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교직에 대한 성찰 일기
13주 차 대학원 수업을 들으며, 오늘 강의 주제였던 ‘교사로서의 자아성찰’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그동안 나의 교직생활에 대해 돌아봤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아직 5년 차 초보 선생님이지만, 이번 수업을 계기로 나의 지나온 학교생활을 돌이켜보았다.
2020년 4월 1일, 내가 교사로서 처음 교단에 섰던 날이다. 당시 코로나로 인해 개학이 한 달 늦춰졌었다. ‘첫’이라는 단어는 어디에 붙던 설렘과 두근거림을 가져다준다. 나의 25살 첫 출근, 첫 학교 그리고 첫 제자. 대학생과 다름없던 나의 첫 교직생활은 풋풋함을 넘어 서툶 그 자체였다. 수업을 어떻게 하는 지도 잘 몰랐고 학생과 학부모 대하는 법도 많이 미숙했다.
그 당시 우리 반에는 고등학생 다운증후군 여자아이 ‘소희’가 있었다. 다운증후군 특성상 짓궂은 장난을 많이 치는 학생이었다. 그래서 소희는 나에게 혼이 많이 났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나도 참 어리석은 생각이었지만, 교사의 권위는 공포에서 나온다고 믿었었다. 나의 중고등학교 학창 시절, 무서운 선생님 말을 잘 들었던 기억에 자연스레 그리 생각했던 것 같다. (나 같은 초보 교사들이 저지르기 쉬운 잘못 중 하나이다.) 그래서 나는 소희가 잘못을 할 때마다 매섭게 혼을 냈다. 어느 날은 정말 머리끝까지 화가 날 정도로 학생이 나에게 반항을 해서, 나도 큰 소리로 소희에게 혼을 냈다. 그때 소희가 나에게 했던 말이 아직도 가슴에 꽂힌다. “선생님 괴물 같아.” 그 소리를 듣자마자 누군가로부터 머리를 세게 한 대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이 아이 눈에 나는 괴물인가?
그렇게 소희가 우리 반 문을 쾅 닫고 나간 후, 나는 자리에 앉아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내가 이 교사로서의 길을 선택했던 이유와 사랑하는 학생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학생에게 감정적으로 화풀이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미안함과 부끄럼 등 다양한 감정에 눈물이 났다. 혼자 괴로워하고 있을 때 소희가 교실 문을 두드리고 들어왔다. 그리고 나에게 죄송했다는 삐뚤삐뚤한 글씨가 적힌 편지를 주며 사과했다. 이 작은 여자아이는 나에게 큰 가르침을 주었다. 이때 나는 소희로부터 무조건적인 사랑을 느꼈다. 나는 교사이지 괴물이 아니다. 이날 이후 나는 절대로 학생을 감정적으로 대하거나 큰 소리를 내지 않기로 다짐했다. 미숙한 신규교사였던 나에게 첫 제자가 준 가르침이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괴물’이 되지 않기. 사랑과 신뢰를 가슴에 새기기.
그 이후로 몇 년의 시간이 지나 2024년이 되었다. 5년 차 교사가 되었지만 아직도 부족한 점이 많다. 올해 나는 중도·중복장애(뇌병변 장애 1급) 학생들로 구성된 학급의 담임교사를 맡고 있다. 교직생활 4년 동안은 어느 정도 대화와 소통이 되는 지적장애와 자폐성장애 학생들을 맡아왔었지만, 올해는 좀 더 새로운 장애 유형의 학생들을 만나보고 싶었다. 그래서 중도·중복장애 학습 담임을 자원하게 되었다.
3월 새 학기가 시작되며 이 아이들을 만난 지 벌써 1년이 다 되어간다. 2학기를 마무리하며 올해의 교직생활을 성찰해 보았다. 반성할 것이 참 많았다. 작년까지의 나는 수업 준비를 열심히 하는 교사였다. 장애학생들을 대상으로 칠판에 판서도 하면서 열정적으로 수업을 해왔다. 하지만 올해의 나는 열정과는 거리가 먼 한 해를 보냈다. 뇌병변 장애의 특성상 인지 수준이 생후 6개월 정도인 학생들로 구성되어 있다 보니, 내가 열심히 준비를 해 와서 수업을 해도 학생들은 침을 흘리며 천장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교사로서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되긴 하지만, 나도 점점 시간이 갈수록 무기력해졌다. 하는 일이라고는 학생들의 기저귀를 교체해 주며 소변, 대변 횟수 세기, 그리고 욕창이 생기지 않게 자세를 시간마다 바꾸어 주는 일, 점심시간에 급식을 믹서로 곱게 갈아서 먹이는 일이 하루 업무의 대부분이었다.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며 ‘이게 교사인가? 아니면 요양보호사인가?’ 의문이 들었다.
우리 반에는 간질로 인해 하루에도 여러 번 전신 발작을 하는 학생이 있다. 그 학생이 매번 경기를 할 때마다 이러다가 잘못되는 것은 아닐지 나도 무서워졌다. 그리고 매일 기저귀를 갈 때마다 용변 냄새도 힘들었다. 하루 종일 침만 흘리는 학생들의 목에 둘러 준 수건을 몇 번씩 바꿔주면서, 도대체 특수교육의 범위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일지 의구심을 느끼는 하루하루가 계속되었다.
혼자서는 이 무기력함과 우울함을 견디기 힘들어서 7월부터 심리상담센터를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매일매일 하루 일과를 보내면서 특수교육에 대한 나의 학문적 부족함을 깨닫는 날들이 많아졌다. 그래서 중도·중복장애 전공 서적을 몇 권 구입하여 매일 조금씩 공부하기 시작했다. 조금씩 읽다 보니 내 고민에 대한 답이 보이는 듯했다. 그 책에서 읽은 구절이 있다. ‘보이지 않아도 보기. 그리고 학습가능성 그 자체를 믿기.’ 이 말이 가슴속에 박혔다. 그리고 내가 얼마나 특수교육대상 학생들, 즉 느린 학습자라는 방패 뒤에 숨어서 안일한 교직생활을 보내고 있었는지 반성했다. 특수교사는 무엇보다 학습에 대한 가능성을 믿어야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나는 이것을 애써 모른 척하고 지내왔던 것이다.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나는 이제 다시 굴러서 나에게 낀 이끼를 벗겨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올해 대학원에 진학하여 다시 신규교사가 된 것처럼 배우고 있다. 이기동 교수님은 수업 중 한 학생으로부터 포스터를 선물 받으신 이야기를 해주신 적이 있다. 30여 년 전 교직을 관두고자 결심했을 때 애정하던 학생이 “Mr. Lee, you cannot quit.”이라는 메시지를 적은 포스터를 집 앞에 놓고 갔다고. 그때 그 기억으로 지금까지 힘든 날들을 버텨 왔다고 하셨다. 나도 언젠가는 직장을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힘든 날이 올 것이다. 그럴 때 학생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을 때가 올까. 매일매일 조금씩 굴러서 앞으로 가는 돌이 되어야겠다. 그러고 내가 소희에게 받은 편지처럼, 학생들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주도록 노력하는 교사가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