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무실 꼴찌를 지키는 12월 31일

올 해도 어김없이 내가 꼴찌!

by 세미삐약이

오늘은 무슨 꼭 드라마 한 편의 에피소드같은 날이라서 결국 모두가 퇴근한 교무실을 홀로 지키며 이 감정과 일련의 사건들을 기록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메신저로 나눈 마음, 커피, 꽃

피아노 조율 사장님의 환하고 밝은 성품

우리반 학생의 인생에 대해 주변 선생님들과 다 같이 한 상담

사랑하고 애정하는 아끼는 친구들과의 메신저 대화

한 해의 마무리에 대한 아이들과의 잠시 잠깐의 짧은 이야기

오랜 근심이자 스트레스 원인과의 헤어질 결심 그리고 실천

앙상블 아이들의 서로 다른 박자에 대한 원인찾기-눈맞춤이 없던 것

그리고 해도해도 끝나지 않는 고3 2학기 출결업무


저 정도의 일들이 있었는데 하나씩 다 기록하는 건 욕심일테고 방금 전의 일들만이라도 기록하고 얼른 나도 학교를 벗어나야겠다. 첫 해에도 야근, 둘째 해에도 야근 비슷했던 것 같은데... 또 학교에서 꼴찌로 나선다 이렇게.


우리반 학생이 지난주에 카톡으로 나와의 만남을 약속했다. 약속을 할 당시엔 현장체험학습을 쓰고 있었기에 학교에 나오고 있지 않았고, 수시 6개의 카드를 모두 논술로 쓰고 정시 공부에 매진했으나 수능날 너무 긴장한 탓인지 결과가 만족스럽게 나오지 않아서 미래를 고민하던 차였다. 오늘 오후 5시가 정시 모집 마감이었고, 정말 정시에 지원하지 않을 것인지 촉박한 마음을 안고 아이들이 모두 떠났을 3시 반이 넘어 이 친구와 마주하게 되었다.


만족스럽지 않은 대학을 갈 것인가, 아니면 공무원 등의 준비를 바로 할 것인가.

골자는 이 두 가지였고 많은 고민에 잠식되어 혼란스러워보였다.

나도 적은 나이는 아니니 정말 다채로운 길을 걸어가는 친구들의 사례와 나의 인생길 이야기도 함께 나눠줬고.. 하지만 아무래도 나 또한 자신있게 이 길을 걸어라!라고 말하기도 어렵고 그럴 위치도 되지 않아 교무실을 지키고 계시던 내 주변의 인생 베테랑 어머니 선생님들 두 분께 조언을 함께 요청했다.


그렇게 네 명의 대담 아닌 대담같은 분위기가 형성이 되었고, 공교롭게도 선생님들 두 분은 매우 상이한 시각을 갖고 계셨다. 한 분은 어쭙잖은 대학을 갈 바에는 안 가고 바로 공무원 준비를 정말 열심히 해서 일찍 사회에 나가서 경제력을 갖추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하고싶은 취미도 마음껏 즐기며 얼마든지 인생을 다채롭게 만들어나갈 수 있다, 단! 대학을 안 갔다는 데서 오는 자존감 타격이 없을 정도로 탄탄하고 단단한 자존감이 있어야 성립될 수 있다는 전제 하에.


그리고 다른 한 분께서는 아직도 한국 사회는 대학 얘기 없이는 대화가 진행이 안된다, 왜냐하면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사람이 극히 드물어서 너무나 숨쉬듯이 미처 인지하지 못하고 대학 시절에 대한 이야기들, 대학에서 비롯된 그런 경험들을 이야기하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네가 괜찮을 것인지, 그렇게 알지 못하는 소외를 평생 가지고 가야하는데 그게 괜찮겠냐, 생각보다 무시하기 힘들 것이다, 그리고 공무원 준비를 한다면 정시 공부했던 것보다 훨씬 더 열심히 모든 걸 걸고 불태워서 해야 한다, 추후 목표가 공무원이라면 바로 공무원 준비를 하는 것이 경제적일 것이다 하지만 정말 열심히 해야한다, 대학 4년은 공무원 시험 준비에 대한 유예를 할 수 있는 기간이지만 또 얼마든지 내가 시간을 어떻게 쓰냐에 따라 그 질과 경험의 폭이 달라진다, 나는 남들 하는 것은 같이 따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와 같이 상반된 견해를 보여주셨다.


그러다가 내가 우리반 학생에게 궁금했던 지점은, 만일 대학 졸업 후에도 목표가 공무원이라면 재수를 해서 좋은 대학을 가고 싶은 건 무슨 이유냐였어서 이걸 물었다. 학생의 대답은 이왕 갈거면 인서울의 좋은 대학을 가고싶고, 그 이유는 자존감을 채우기 위해서라는 대답이었다. 그래서 그 얘길 듣자마자 나를 포함한 선생님 셋 다 그럼 너는 대학을 가야겠네,라는 대답이 너무나도 명확하게 나왔고.


그러면서 각기 다른 모습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내 친구들의 얼굴이 마음에 여럿 떠올랐다 사라졌다. 대학을 가든 안가든 각자의 삶의 무게와 자존감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친구들.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정답은 없지만 그래도 내가 더 원하는, 내 마음이 더 이끄는대로 사는 건 참 중요하겠다 이런 생각도 다시 한 번 들었고..


내가 답해주긴 쉽지 않고 어려운 문제였지만 주변 선생님들께서 인생 선배로서의 경험을 나눠주시니 내 학생에게도 큰 도움이 된 것 같았고 실제로 한결 밝아진 목소리와 상기된 얼굴로 "완전 유익했어요! 오늘 일기 쓸거에요."라는 소감을 나눠주니 선생님들도 뿌듯해하셨고.. 너무 상반된 의견이라 네가 더 헷갈릴 것 같은데 괜찮겠니? 라고 한 분께서 물어봐주셨는데 학생은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본인의 마음이 어디에 더 가까운지 선명하게 알게 되었다는 대답을 했다.


비록 내가 한 건 없지만 뿌듯하고 기꺼이 시간과 애정을 내어주신 선생님들께 감사한 그런 감정도 동시에 들었던 아까의 순간이었다.



삶에 정답은 없는데 참 잘 살아낸다는 게 정말 쉽진 않은 것 같다. 그만큼 여러 풍파에 휩쓸리지 않을만큼의 단단한 자존감을 장착하고 만들어나가며 살아가는 것도 지금 이 나이가 되도록 쉽지 않다고 느낀다.

그래도 예전보다 발전했어, 더 나아졌어 싶다가도 나 또한 내가 힘들어하는 사람이 엮인 일에 있어서는 한없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면 아직 멀었구나, 온전치 않구나 싶고.


해가 서서히 지려는 채비를 한다. 하늘빛의 온도가 잠시간 더 따듯해지는 게 보인다. 이제 30분 뒤쯤이면 해도 지겠지. 오늘의 출결 작업은 7명까지밖에 하지 못해서 마음이 불편하지만 그래도 12월 31일이니 자리를 뜨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잘 모르는 선생님이자 오해했던 선생님과도 메신저로 대화하며 완전히 다른 면모를 보게 되어 뭔가 생경하면서도 따뜻한 경험이 생겼는데 이것도 남기고 싶은데... 그래도 2025년의 마지막 날인만큼 학교를 빨리 떠나 퇴근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벌써 2025년의 마지막 날이라니 정말 믿기지가 않는다. 올 한해를 돌아보면 정말 셀 수 없이 다양한 결의 다채로운 일들이 있었던 것 같다. 하나하나 기억도 온전히 나지 않을만큼..


본격적으로 교회 활동을 시작하면서 알게 된 얼굴들과 가깝게, 또 깊이 지내게 되면서 공유하는 시간들이 엄청나게 빠르게 쌓였고 그 영향도 대단히 큰 것 같다. 올 해 내 삶은 정말.... 정말 정말 너무나도 다채로웠던 것 같다. 내 곁을 지켜준 친구들에게도 새삼스레 또 고마워지는 이 순간이다. 모두모두 너무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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