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금플라워 떡케이크로 효도하기
평화롭고 여유로운 백수생활을 즐기던 나는 우연히 지역 맘카페에서 앙금플라워 원데이클래스 광고글을 보게 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손재주가 좋다는 소리를 귀에 딱지가 앉을 만큼 듣고 살던 나는 SNS로 앙금플라워 피드를 보면서 나도 하면 잘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마침 오픈기념으로 4만 원이란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이벤트를 진행한다고 하여 바로 신청했다.
날씨가 아주 좋은 봄이었다. 전 달에 영국 여행에서 산 목도리도마뱀같이 생긴 블라우스를 입고, 중국 부자들이 쓸 법한 선글라스를 쓰고 떡케이크를 만들러 가던 내 모습이 생생히 기억난다. 날씨도 날씨지만 그 매장은 내가 어렸을 때 오랫동안 살던 동네에 위치해 있어서 더 설렜었다. 이사를 간 뒤로는 굳이 찾아가지 않아서 동네의 모습이 얼마나 바뀌었는지 궁금한 마음이었다.
어렸을 때 오빠와 일주일에 몇 번씩 시켜 먹던 9,900원짜리 피자가게 바로 맞은편이었다. 요즘은 피자 한 판에 2~3만 원은 우스운데 라지 사이즈 피자가 9,900원이라니. 초등학교 저학년 때 난생처음으로 삼각김밥을 사 먹었던 세븐일레븐 편의점 바로 옆.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고 많이 변한 거리의 모습에 뭔가 아련함도 느껴졌다.
원데이 클래스를 진행하는 공방은 아담한 사이즈의 정겨운 분위기였다. 막내이모쯤 되실 것 같은 사장님께서 친절하게 반겨주셨고 나는 내 손재주를 뽐낼 생각에 매우 들떠있었다. 요즘은 관심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앙금플라워케이크가 꽤 비싼 가격이었고, 원데이 클래스도 보통 5만 원 이상이었던 걸로 기억된다. 시새보다 저렴한 가격이라 큰 기대 없이 신청했는데 막상 가보니 종류별로 많은 것들을 준비해 주셔서 놀랐었다. 색색의 색소들과 하얀 앙금이 놓여 있었고 사장님은 막 찜기에서 떡을 꺼내고 계셨다.
흑임자를 좋아해서 흑임자 떡으로 주문했는데 생김새만 보아도 정말 맛있는 떡이란 걸 알 수 있었다. 평소 떡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만큼 떡 사랑이 대단한 아빠께 선물로 드릴 생각이었다.
사장님은 무슨 기념일이냐 물어보셨고 나는 그냥 아빠가 떡을 좋아하셔서 만들러 왔다고 답했다. 특별한 날도 아닌데 아빠를 위해 클래스를 신청한 거냐며 엄청 기특해하셔서 기분이 좋았다.
앙금플라워는 생각보다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손에 앙금을 넣은 짜는 주머니를 계속 쥐고 있다 보면 체온 때문에 앙금이 녹아 흐물흐물해지는 게 문제였다. 꽃 한 송이 만드는 게 생각보다 세심하고 어려운 작업이었다. 그래도 배운 대로 하나씩 만들다 보니 제법 꽃다운 모양새를 갖추는 걸 보며 뿌듯함이 밀려왔다.
꽃을 다 만들었으니 떡케이크 위에 꽃을 하나씩 올리며 자리배치를 하고 잎사귀도 만들며 마무리를 해야 했다. 꽃의 색감도 다 다르고 크기도 제각각이라 위치를 잡는 것도 심혈을 기울여야 했다. 아무 데나 막 올리면 색이 겹치거나 꽃이 뭉개질 수도 있어 꽤나 신중하게 한 송이 한 송이 자리를 잡아주었다.
앙금플라워케이크 가격을 볼 때면 저게 뭐 그리 비싼가 싶었는데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떡도 다 직접 쪄내야 하고 앙금도 색색별로 만들어서 하나하나 손으로 짜내야 한다니. 시간도 정성도 많이 들어가는 작품이라는 걸 직접 해보고서야 깨달았다. 역시 사람은 직접 경험해 보기 전엔 모른다. 비싸다는 경솔한 생각을 한 나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선생님의 도움으로 케이크가 다 완성이 되고 예쁜 리본도 둘러매주었다. 이제 대망의 포토타임이다. 다 사진을 남겨두기 위해 하는 거 아니겠는가. 선물하고 싶은 마음 30%, 사진으로 남겨서 SNS에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70%라는 걸 부정하진 않겠다.
사장님과 열심히 사진을 찍고 예쁘게 포장해서 기분 좋은 발걸음으로 출발했다. 평일 대낮에 말도 없이 불쑥 찾아간 효녀를 부모님은 반갑게 맞아주셨다. 우리 아빠는 내가 본가에 갈 때면 항상"딸 왔어~?" 하면서도 시선은 손에 고정되어 있다. 군것질을 좋아하는 아빠를 위해 빵이며 과자며 떡이며 바리바리 사 오는 딸임을 알고 계셔서 그런가 보다. 그날도 내 손에 들린 케이크를 보며 이게 뭐냐고 물어보셨고 이건 요즘 유행하는 떡케이크라고 설명드렸다. 어느새 나이가 드셔서 그런지 그런 신문물은 자식이 챙겨드려야지 접할 수 있는 게 조금 마음이 아팠다.
나는 아빠가 만들어 주신 칼국수로 끼니를 때우며 내가 직접! 손수! 만든 케이 크니까 남기지 말고 다 드시라고 오만 생색을 다 냈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부모님은 케이크가 달지도 않고 너무 맛있다며 잘 먹었다는 전화를 주셨다.
그냥 보고 지나칠 수도 있었던 원데이 클래스. 호기심 겸 경험 삼아 만들어본 케이크가 부모님에겐 좋은 선물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나의 취미가 누군가에겐 행복이 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뜻깊은 일인가. 취미가 취미에서 그치지 않고 뭔가 더 의미 있는 일이 될 수 있도록 주위를 둘러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