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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va Apr 13. 2016

긴장을 내려놓고, 세고비아

내가 버스를 타는 이유

 스페인의 중심 마드리드에 도착한 날은 3월 22일, 브뤼셀에서 테러가 일어난 날이었다.

인간의 본성이 의심될 만큼의 잔혹한 사고 이후 도착한 마드리드에는 애도와 긴장이 드문드문 느껴졌다.

마드리드 시내에는 무장한 경찰들이 곳곳에서 보였고 그들을 볼 때마다 끔찍한 뉴스의 공항 사고 장면들이 떠올랐다. 이러한 긴장감 속에서 마드리드를 보아서였을까? 마드리드는 편하지 않은 도시였다. 도시 특유의 혼잡함과 불쾌함이 존재했다. 마드리드에서 계획된 4박이 조금은 길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중 마드리드의 근교 여행도 포함되어 있다는 생각에 숨이 트이는 듯했다.


 마드리드에서 버스로 한 시간 남짓을 가면 만날 수 있는 세고비아. 일정 중에 버스를 이용하여 이동한 경우는 야간 버스 외에는 처음이었다. 가까운 근교라서 그런지 버스가 사람들로 북적인다. 나는 어릴 적, 차를 타고 이동하는 것을 참 좋아했다. 차를 탈 때는 오빠와 보조석을 가지고 서로 신경전을 벌였던 기억이 난다. 혹시라도 둘 중 하나가 타면 꼭 그 뒤에 앉아서 시기와 질투의 발길질을 했던 기억도. 그때, 그렇게 보조석을 가지고 다투었던 건 풍경을 보기 위해서였다. 좀 더 넓게 트인 시야를 확보하기 위한 영역 다툼이라고 할까.. 집과 마트를 오가는 길 마저 여행이었던 작은 시절.


 여행을 할 때 버스는 정말 좋은 수단이다. 여행자들에게 이동은 단순한 노동, 수단이 아니다. A 지역과 B 지역도  A에서 B로 넘어가는 여정도 여행(旅行)이다. 버스의 일정한 속도가 이루어 내는 관성과 창 밖 풍경의 시시각각 변화는 기다란 파노라마를 만들어 낸다. 목적지에 이르기까지 버스는 대게 멈추지도, 갑자기 출발하지 않는다. 버스를 타고 가다, 우연히 마주친 풍경에 허겁지겁 저곳이 어디인지 찾아보기도 한다. 그렇게 버스는 우리에게 새로운 여행을 선사한다.

세고비아로 가는 길, 쌀쌀하긴 했지만 신기할 만큼 눈이 쌓여있는 산

 버스는 기차보다 사람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간다. 기차는 마을에서 떨어져 그들 만의 기차역을 통과하고, 또 다음 기차역을 향해 갈 뿐이다. 기차는 그들만의 길이 필요하지만, 버스는 마을 곳곳으로, 사람들 속으로 파고들어간다. 기차를 타면 기차역에 정차할 때마다 소매치기들이 짐을 들고 튀지는 않을지 내가 내리는 곳을 지나치지 않을지 긴장을 놓을 수 없다. 그러나 버스에서는 딱 두 번이면 충분하다. 탈 때, 내릴 때.

비행기처럼 재미없는 것은 없다. 비행기에서는 똑같은 풍경이 반복된다. 구름과 하늘뿐이다. 큰 유람선도 개미처럼 보이는 비행기에서 사람은 없다.


 한 버스를 타고 달리는 인연 역시 무시할 수 없다. 혼자 하는 외로운 여행에서 걸어 다니고 자전거를 타고 다닐 때는 곳곳에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버스라는 매개체로 같은 공간과 시간을 공유하게 된다. 이 인연, 어떻게 무시한담? 재미있게 즐겨줘야지 버스에 가만히 앉아서 사람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오독오독 해바라기씨 같은 것을 먹으며 가는 사람도 있고, 친구와 스페인어로 이야기를 나누며 가는 사람들, 앗 앞 좌석을 바라보니 할머니 두 분이 다 삼성폰을 들고 있는 것을 보면 괜히 반갑다.




 도착한 세고비아는 도둑, 전염병, 테러 이러한 도시의 것들과는 정 반대로 보이는 따뜻한 곳이었다. 버스를 탈 일도 없이 찬찬히 걸어 여정을 시작하고 마무리할 수 있는 곳. 디즈니 백설공주의 배경이 되었다는 알 카사르를 보기 위해 성벽을 따라 걸어가다 보면 돌멩이가 비어있는 곳곳에 비둘기들이 쏙 들어가 휴식을 취하고 있다.(태어나 새 똥을 3번 맞은 내가 새 떼들 옆을 지나가면서도 평온함을 느끼는 곳이라니!)

성벽을 따라 올라가다 들린 박물관은 작지만 한 주제에 얽매이지 않은 지역 박물관이라 그런지 콘텐츠가 다양했다. 구석기, 신석기 이런 시대의 유물들은 분명 유사한데 중세 이후의 유물들을 보면 발전의 갈래 차이가 느껴진다. 우리와 같은 물레방아를 사용하였다. 그러나 곡식을 찧는 용도 이외에도 위의 놋그릇을 절구처럼 생긴 것으로 찧어서 만들기도 하고 아래와 같은 톱니바퀴를 이용하여 동전을 찍어내는 기계로 이용하기도 한다.


초록색 공사천으로 아름다움이 가려진 알 카사르
밖에서 건축 양식만 간단히 바라보고 지나간 세고비아 대성당


 이 곳의 소소함과 편안함이 좋았기에 알 카사르는 내부를 간단히 둘러본다. 그런데 성벽을 오를 때부터 성에서도, 어딜 가도 자꾸만 하얀 집을 지으면 딱 어울릴 것 같은 노래 속의 푸른 초원에 눈길이 가기 시작했다. 컴퓨터 배경화면의 언덕과 꼭 닮은 푸른 초원을 보며 대성당을 들어가지 않고 저 곳에 올라가 봐야겠다고 결심을 했다.


 마지막으로 수도교를 보고 언덕에 올라갔다 버스를 타고 생각으로 먼저 발걸음을 향한 수도교는 水道, 정말로 물만을 위해서 만든 다리이다. 로마 시대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서 설계되었는 데, 엄청난 것은 풀이나 시멘트와 같은 것들을 전혀 이용하지 않고 오로지 화강암과 건축 기술로 이 어마어마한 건축물이 버티고 서 있다는 것이다. 건축에 깜깜한 나마저 경이로운 마음에 위, 아래, 옆 구석구석을 살펴보게 된다. 근처로 올라가기만 해도 다리가 바들바들 거리는 이 높이에, 대체 수도교는 어떻게 만든 건지. 이 다리는 수도관을 설치하여 여전히 수도 공급에 이용하고 있다고 하니 기술력에 감탄할 따름이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로마 수도교


 버스를 타기 전, 해가 질 까 급해지는 발걸음으로 처음부터 눈 독들였던 언덕으로 올라간다. 멀리서 볼 땐 구릉 같았는 데 올라갈 때는 어찌나 태산 같은지 자꾸만 나타나지 않는 언덕에 드문 인적 사이의 납치 주의판은 서늘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인생은 멀리서 볼 땐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누가 말했던 가. 멀리서 그렇게  평온하고 싱싱해 보이던 언덕은 공동묘지였다. 허탈한 마음이 들면서도. 이 세상에 이런 식으로 인간이 보이는 오류는 얼마나 수 많을지 생각을 해본다. 내 눈으로 보는 것 조차 멀리서, 가까이서 보는 것이 이렇게 다를 수 있음에.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언덕에서 보이는 세고비아 대성당

이왕 올라온 김에, 아까 상상했던 평화로운 언덕이라고 생각하며 잠시 앉아 건너편을 바라본다.

"그래도. 예쁘긴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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