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가 광주항쟁 40주년이라 그런지 TV를 켜면 과거 우리나라 군부 시절의 다큐멘터리들이 많이 나온다. 80년생이라 비참했던 한국의 근현대사 시절의 나의 가장 큰 관심사는 로보트 태권브이와 마징가 제트가 싸우면 누가 이기는지였다. 내 일본인 아내는 가끔 지금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그때 그 시절의 이야기를 물어보지만 나 역시 역사책에서 봤던 이야기를 할 뿐이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나도 '데모'에 대한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홍대입구 근처에 살았는데 신촌 로터리에서부터 동교동 로터리를 지나 서교동 사거리까지 데모가 항상 끊기지 않았던 지역이라 한다. 우리 동네에서 데모는 그저 일상에 지나지 않았다. 여름에 창문을 열어놓으면 최루탄 냄새가 스멀스멀 기어들어와 눈물을 흘리곤 했으니까..
초등학교도 홍익대학교 근처였던지라 데모가 있어도 걸어서 등하교를 하곤 했다. 데모는 일상이었으니까. 가끔 최루탄이 근처에서 터지면 길거리의 식당 아줌마들은 초등학생들에게 물수건을 나눠주곤 했다. 대학생들과 경찰들이 화염병을 던지고 최루탄을 쏘며 치열한 대치를 했는데 초등학교 등하굣길에는 안전을 위한 통제와 친절한 안내가 없었던 것인지 지금 생각하면 이해를 할 수 없다. 단지 내 기억에만 없었던 걸까?
그때 제일 무서웠던 건 '백골단'이었다. 청바지를 입은 전투경찰이었는데, 진짜인지 모르지만 조폭이나 범죄자들을 데려다 '백골단'을 조직했다는 소문도 있었다. 홍대입구역, 지금은 삼성플라자가 있는 곳엔 백골단들이 데모 진압을 하고 쉬고 있을 때가 많았다.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서 하교를 하고 있을 때면 백골단 아저씨들은 나 같은 아이들에게 짓궂은 장난을 하기도 했다. "야! 이리 와 봐! 나이가 몇 살이야? 여자 친구 있어?" 등등 시시콜콜한 질문을 하곤 했는데 참 무서웠다. 데모가 일상인 우리 동네이긴 했지만 어른들도 '백골단'이 있으면 피해 가라고 주의를 줬다.
한 번은 동네 친구들과 골목길에서 놀고 있었다. 최루탄 냄새가 조금 나긴 했지만 일상이었기 때문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우당탕탕 소리가 나며 대학생으로 보이는 어떤 형이 골목길에서 뛰어 왔다. 그 형은 헐레벌떡 뛰어 열려있는 우리 집 대문을 열고 뛰어 들어와 마당을 가로질러 담장을 넘어 옆집으로 도망갔다. 그 뒤로는 곤봉과 방패를 든 백골단이 뛰어왔다. 우리 집 담장을 넘어 도망쳤던 그 형이 잡혔는지는 무사히 도망쳤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데모가 일상이었던 어린 시절의 나지만 도망가는 대학생 형의 뒷모습과 그 뒤를 쫓는 백골단의 모습을 보고 무섭다는 생각을 했다. 데모가 일상이었던 우리 동네는 대학생과 백골단이 사라진 뒤 다시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일상으로 돌아왔다.
학생이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그 기억이 다소 충격이었나 보다. 경찰은 나쁜 사람을 잡는 훌륭한 사람이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날 한 어른에게 왜 저 대학생 형은 뭘 잘못해서 도망가고 경찰이 쫓아가냐고 말이다. 그 어른은 "학생이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너는 공부 열심히 해라!"라고 했다.
그 이후 나는 몇 년간 데모는 공부 안 하는 나쁜 학생들이란 생각을 갖고 살았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고 그 데모한 형과 누나들 때문에 지금 내가 이렇게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만약 지금 다시 그 어른을 만나게 된다면 다시 한번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