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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흔살 어른이 May 27. 2022

01. 내가 느그 OO랑 싸우나도 갔어!

마흔 살이지만 어른이 되고 싶어

느그 서장 남천동 살제?

어제도 마! 같이 싸우나도 같아 가고 어?!

같이 밥묵고 에?! 머 다 했어! 임뫄!


범죄와의 전쟁에서 나오는 배우 최민식의 대화다. 하지만 별로 낯설지가 않다. 다 보면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업무 특성상 외부에서 손님이 자주 찾아온다. 사실 손님은 아니다. 불청객에 가깝다. 광고, 협찬, 제휴 등을 제안하러 오는 사람들인데, 내가 불청객이라 칭하는 사람들은 공통점이 있다.

 

<첫째> 나이가 많다. 대부분 은퇴를 한번 했던 분들이다.

<둘째> 은퇴하기 전 저마다 이름을 들으면 알만한 회사의 경력을 갖고 있다.

<셋째> 갑과 을을 구분하는 건 싫어하지만, 만약 이분들과 업무를 한다면 내가 갑의 위치인데, 첫 만남부터 나를 아랫사람 보듯이 대한다. (간혹 반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넷째>  자기소개가 기본 30분이다.


그런데 이걸 자기소개라고 해야 하나? 보통 이런 말로 시작한다.

"내가 이 바닥에  한 30~40년은 있었지, OO회사에도 있었고, OO회사에도 있었고, 근데 자네는 얼마나 됐나?"

"한 15년 정도 있었습니다"

라고 하면 아직 햇병아리를 보는 듯한 표정으로 씨익 한번 웃음을 짓는다.


이어서 업계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최신 동향이 아닌 옛날이야기다. 그러면서

"옛날엔 말이지~ 이런 거 없었어! 세상 참~ 좋아졌어!"

라며 가는 세월을 아쉬워한다.


이 정도 얘기를 들어주면 무심한 듯 서류 한 장을 툭 던진다. 공문이다. 그 안에는 대부분 나에게 요청하는 사항들이 적혀있다. 과장 없이 그 공문의 요청사항을 평가하자면 내 업무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내용이다. 요즘은 ROAS(Return On Ad Spend)라고 해서 투자한 비용 대비 어느 정도의 수익을 얻었는지 효율성을 체크하는 시대다. 어르신의 옛날이야기 값으로 몇백만 원을 투척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예전에는 단호하게 거절하지 못해 괜히 그런 어르신들에게 희망을 고문을 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서로의 소중한 시간을 위해 요즘은 단호하게 말을 하곤 한다. 최대한 예의를 차려서


"죄송합니다. 이미 예산 집행 계획이 세워져 있어 진행하기가 힘들겠네요."


보통은 시간 낭비했다며 툴툴 대고 자리를 일어나지만 몇몇은 2차전을 시작한다. 그리고 범죄와의 전쟁 명대사들이 나온다.


"당신 OOO, OOO 알지? 그 사람들이 나랑 형, 동생 하는 사람들이야!"

"OOO 회장님, 잘 계신가? 내 핸드폰에 회장님 전화번호가 있어!"


난 발이 그다지 넓은 사람이 아니었나 보다.  그렇게 말을 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알지 못했다. 심지어 OOO 회장님은 선대 회장님으로 몇 년 전에 돌아가셨다.


이런 분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자리로 돌아오면 진이 빠진다. 그리고 두렵기도 한다. 나도 한 업계에만 15년이 있었고 계속 같은 업계에 있다가 내가 그 불청객 중 한 명이 되는 것은 아닌지...

아직 은퇴는 하지 않았지만 가끔 술자리를 함께 했던 한 어른은 술이 약간 오르면 이런 말을 내게 하곤 했다.


"마흔 살 어른이 씨! 나는 은퇴하면 이 바닥이랑 연을 끊을 거야. 그리고 야키토리 집을 하나 해서 현역 시절 만났던 사람들과 술 한잔 하는 낙으로 살 거야"


풍채도 있던 분이어서 야키토리 집에서 두건을 쓰고 땀을 흘리며 꼬치를 굽는 모습이 잘 어울리는 어른이다. 그 어른과 연락을 한지도 너무 오래됐지만, 만약 그 어른이 야키토리 집을 개업하면 단골집으로 등록하고 매상을 올려줄 의향이 충분히 있다.


나는 어른이 되고 싶다.

친구와는 과거를 얘기하고

젊은이와는 미래를 얘기하는

그런 어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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