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선회 못 먹어도 괜찮아!

마! 흔한 일 아니겠니?

by 마흔살 어른이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우리 회사에 취직한 신입 사원과 대화를 한 적이 있다. 그 친구는 요즘 학생을 벗어나 어른이 된 것 같다며 너무나도 행복해 했다. 근데 궁금했다. 어른이 됐다고 느끼는 게 교복을 벗고 회사에 출근을 해서인지, 아니면 다른 계기가 있었는지?

"얼마 전 친구들과 노량진 수산시장에 가서 회를 안주로 먹으며 술을 마셨어요. 술을 마시면서 우린 성공했어~라며 뿌듯했어요!"라고 천지난만하게 얘기했다.

회를 먹는다는 것이 어른? 성공? 하긴, 나도 그럴 때가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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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를 제대하고 복학하기 전까지 홍보대행사에서 인턴을 했다. 그때 팀 회식이 있었는데, 특별히 그날은 사장님이 함께 참석했고, 우린 광화문의 한 횟집으로 갔다. 횟집에서 사장님이 회를 시켰는데, 회 위에 금가루가 뿌려져 있었다. 지금이야 괜히 맛도 없는 금가루 뿌리고 비싸게 돈 받는다고 투덜댔겠지만, 금가루 뿌린 회를 처음 본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걸 먹으라고 준 건가? 귀하디 귀한 금을 왜 먹지? 이거 맛있나? 역시나 금가루는 입을 위한 것이 아닌 눈을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몇일 뒤, 친구들을 만나 금가루 뿌린 회를 먹어봤냐며 엄청나게 자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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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를 졸업하기 전, 4학년 2학기 여름 방학 때다. 학생 신분으로 친구들끼리 마지막으로 여행을 가자며 해운대를 놀러 갔다. 당시 나는 학교를 다니지 않고 일을 하고 있던 터라 다른 친구들보다 여윳돈이 좀 있었다. 아직 아르바이트와 집에서 받는 용돈으로 생활을 하던 친구들은 갑자기 회를 먹고 싶다고 했고, 상대적으로 지갑이 두둑했던 나는 친구들을 위해 멋지게 광어회를 샀다. 그리고 나는

'아~ 난 성공했어! 회를 쏘다니!'

라고 자화자찬을 했다.


내가 어른이 됐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가 몇 번 있다. 편의점에서 가격을 보지 않고 먹고 싶은 것을 살 때, 자동차 운전을 하고 스키장을 갈 때 등이다. 그리고 친구들과 부담 없이 횟집에 가서 소주를 한잔 할 때 역시 어른이란 기분이 들곤 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스테이크, 파스타보다 생선회는 유독 어른의 음식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땐 고추장 맛으로 먹던 생선회지만, 어른이 된 후에는 와사비를 푼 간장에 생선회를 살짝 담가 생선회 특유의 쫄깃함과 생선살 고유의 맛을 느끼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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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몇 해 전 친구랑 둘이 술을 마시기로 하고 약속 장소를 잡기로 했다. 뭘 먹을지 고민하다 친구가

"그냥 횟집이나 갈래?"라고 물었다.

"나... 요새 회 잘 안 먹어"라고 답했고, 친구는 놀라 재차 물었다.

"회를 왜 안 먹어?"

이 친구는 대학교 때 해운대에 가서 광어회를 사줬던 친구 중 하나였다.


4~5년 전이다. 회사 회식에서 세꼬시 집을 갔다. 평소에도 회를 좋아했지만, 나는 유독 세꼬시를 좋아했다. 다른 사람들은 왁자지껄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도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미역 위에 해초를 바닥에 깔고 세꼬시를 올린 후 갈치젓을 얹었다. 바다내음과 함께 세꼬시의 맛을 즐기려고 미역쌈에 세꼬시를 입에 넣은 순간,


'뭐야? 왜 이렇게 비려?'


인정할 수 없었던 나는 연이어 3~4개의 세꼬시를 먹었다. 해초를 빼고 먹어보고, 미역을 빼고 먹어보고, 세꼬시만 먹어보고... 그런데 비린내가 계속 났다. 혹시 이 가게가 신선하지 않은 세꼬시를 내온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사람들에게 물었다. 모두들 '맛있다'는 반응이었다. 내가 피곤해서 미각이 이상해졌나 보다 하고 아쉬움을 남기고 회식자리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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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좀 지난 후 팀에서 워크숍으로 제주도를 갔다. 유독 맛집 투어를 좋아했던 우리 팀은 제주도의 숨을 맛집을 찾아다녔다. 그중 해녀가 직접 잡은 해삼, 멍게를 먹을 수 있는 한 막횟집을 찾았다. 횟집을 들어가는 순간 밀려오는 비린내에 코를 막을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 맛집 리스트에서 횟집은 빠지게 됐다. 그런데 나처럼 입맛이 바뀐 사람들이 주변에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친구들은 회도 못 먹어서 어떡하냐며 안쓰러워하기도 한다. 그럴 때면 난 이렇게 말한다.


괜찮아, 세상엔 아직 내가 먹어보지 못한 맛있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아!


요즘의 난? 양고기와 곱창을 참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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