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흔한 일 아니겠니?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우리 회사에 취직한 신입 사원과 대화를 한 적이 있다. 그 친구는 요즘 학생을 벗어나 어른이 된 것 같다며 너무나도 행복해 했다. 근데 궁금했다. 어른이 됐다고 느끼는 게 교복을 벗고 회사에 출근을 해서인지, 아니면 다른 계기가 있었는지?
"얼마 전 친구들과 노량진 수산시장에 가서 회를 안주로 먹으며 술을 마셨어요. 술을 마시면서 우린 성공했어~라며 뿌듯했어요!"라고 천지난만하게 얘기했다.
회를 먹는다는 것이 어른? 성공? 하긴, 나도 그럴 때가 있었지...
군대를 제대하고 복학하기 전까지 홍보대행사에서 인턴을 했다. 그때 팀 회식이 있었는데, 특별히 그날은 사장님이 함께 참석했고, 우린 광화문의 한 횟집으로 갔다. 횟집에서 사장님이 회를 시켰는데, 회 위에 금가루가 뿌려져 있었다. 지금이야 괜히 맛도 없는 금가루 뿌리고 비싸게 돈 받는다고 투덜댔겠지만, 금가루 뿌린 회를 처음 본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걸 먹으라고 준 건가? 귀하디 귀한 금을 왜 먹지? 이거 맛있나? 역시나 금가루는 입을 위한 것이 아닌 눈을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몇일 뒤, 친구들을 만나 금가루 뿌린 회를 먹어봤냐며 엄청나게 자랑했다.
대학교를 졸업하기 전, 4학년 2학기 여름 방학 때다. 학생 신분으로 친구들끼리 마지막으로 여행을 가자며 해운대를 놀러 갔다. 당시 나는 학교를 다니지 않고 일을 하고 있던 터라 다른 친구들보다 여윳돈이 좀 있었다. 아직 아르바이트와 집에서 받는 용돈으로 생활을 하던 친구들은 갑자기 회를 먹고 싶다고 했고, 상대적으로 지갑이 두둑했던 나는 친구들을 위해 멋지게 광어회를 샀다. 그리고 나는
'아~ 난 성공했어! 회를 쏘다니!'
라고 자화자찬을 했다.
내가 어른이 됐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가 몇 번 있다. 편의점에서 가격을 보지 않고 먹고 싶은 것을 살 때, 자동차 운전을 하고 스키장을 갈 때 등이다. 그리고 친구들과 부담 없이 횟집에 가서 소주를 한잔 할 때 역시 어른이란 기분이 들곤 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스테이크, 파스타보다 생선회는 유독 어른의 음식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땐 고추장 맛으로 먹던 생선회지만, 어른이 된 후에는 와사비를 푼 간장에 생선회를 살짝 담가 생선회 특유의 쫄깃함과 생선살 고유의 맛을 느끼곤 했다.
그런데 몇 해 전 친구랑 둘이 술을 마시기로 하고 약속 장소를 잡기로 했다. 뭘 먹을지 고민하다 친구가
"그냥 횟집이나 갈래?"라고 물었다.
"나... 요새 회 잘 안 먹어"라고 답했고, 친구는 놀라 재차 물었다.
"회를 왜 안 먹어?"
이 친구는 대학교 때 해운대에 가서 광어회를 사줬던 친구 중 하나였다.
4~5년 전이다. 회사 회식에서 세꼬시 집을 갔다. 평소에도 회를 좋아했지만, 나는 유독 세꼬시를 좋아했다. 다른 사람들은 왁자지껄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도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미역 위에 해초를 바닥에 깔고 세꼬시를 올린 후 갈치젓을 얹었다. 바다내음과 함께 세꼬시의 맛을 즐기려고 미역쌈에 세꼬시를 입에 넣은 순간,
'뭐야? 왜 이렇게 비려?'
인정할 수 없었던 나는 연이어 3~4개의 세꼬시를 먹었다. 해초를 빼고 먹어보고, 미역을 빼고 먹어보고, 세꼬시만 먹어보고... 그런데 비린내가 계속 났다. 혹시 이 가게가 신선하지 않은 세꼬시를 내온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사람들에게 물었다. 모두들 '맛있다'는 반응이었다. 내가 피곤해서 미각이 이상해졌나 보다 하고 아쉬움을 남기고 회식자리를 마쳤다.
시간이 좀 지난 후 팀에서 워크숍으로 제주도를 갔다. 유독 맛집 투어를 좋아했던 우리 팀은 제주도의 숨을 맛집을 찾아다녔다. 그중 해녀가 직접 잡은 해삼, 멍게를 먹을 수 있는 한 막횟집을 찾았다. 횟집을 들어가는 순간 밀려오는 비린내에 코를 막을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 맛집 리스트에서 횟집은 빠지게 됐다. 그런데 나처럼 입맛이 바뀐 사람들이 주변에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친구들은 회도 못 먹어서 어떡하냐며 안쓰러워하기도 한다. 그럴 때면 난 이렇게 말한다.
괜찮아, 세상엔 아직 내가 먹어보지 못한 맛있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아!
요즘의 난? 양고기와 곱창을 참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