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매일 짧은 글 - 54일 차
텅 빈 집무실에 인수위 없이 업무를 시작한 새 정부처럼, 저 역시 워드파일 2장에 회의 일정만 주절주절 작성된 인수인계서를 전달받았었죠. 이런 상황이 처음은 아닌데, 그래도 그전엔 팀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아는 상사와 팀원이라도 있었는데, 위아래 모두 새로운 사람들이니 매번 답답합니다. 오늘은 지난달부터 시작한 프로젝트의 지출을 올려야 하는데, 전 팀리더가 예산 세목도 없이 품의서를 올리고 본인 결제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도대체 무슨 예산으로 계약을 맺고 품의서를 올린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어 문의 메일을 보냅니다. 그는 현재 남은 휴가를 보내고 있는데, 본인이 필요할 땐 메일도 메신저도 열어보는 것 같은데, 이런 업무 메일은 또 확인을 않네요.
또 다른 프로젝트는 팀 업무에도 있고 담당자도 있는데, 이 업무를 인수인계해줄 사람도, 업무 자료도, 기획안이나 운영방안조차도 없었습니다. 해당 업무를 맡은, 조직개편으로 인해 이 팀에 온 새로운 직원 역시 황당해하더군요. 저 역시 전달받은 바 없지만, 그래도 일은 굴러가야기에 급히 정리해 봅니다. 이렇게 0에서 시작하는 해야 는 것이 너무도 많습니다. 담당자가 초안이라도 잡아주면 좋겠는데, 그들 역시 0에서 시작이니 뭐라도 있어야 방향을 잡을 수 있지 않겠어요. 그러니 제가 기획안을 씁니다. 그리고 추가 자료들을 여기저기서 찾아 수정, 보완해 적용하라고 전달합니다. 이렇게 업무가 늘어나지만 월급은 당연히 그대로입니다. 업무시간도 늘어 1시간 야근은 기본인데, 이런 건 추가근무로 올리지도 못합니다.
어차피 돈은 매번 없었고, 일은 위에서 내키는 대로 내려오는 통에 헐레벌떡 처리하기도 바쁩니다. 그래도 일이 재밌고, 다들 으쌰으쌰 분위기라면 버틸만하겠죠, 하지만 이젠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모르겠어요. 모두들 모른 채 손 놓고만 있는 것 같아요. 조직개편 4주 차인데 아직도 업무 인계가 되지 않고, 담당자들은 본인의 업무가 무엇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파악하지 못하고, 스스로 알아서 일을 해주길 바라는 것은 너무 무리이겠죠. 벌써 상반기가 끝나 곧 성과중간점검도 있을 텐데, 그냥 팀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 성과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제 8월까지 빨간 날이 없네요. 이직을 하거나 여름휴가를 가거나 둘 중에 하나는 정해야겠어요. 그래도 익숙한 곳에서 변해가는 회사를 참아가며 일해야 할지, 새로운 곳에서 다시 열정을 외치며 일할 수 있을지, 어차피 둘 다 스트레스를 받는다 하면 무엇을 선택하실래요? 새로운 곳이라면 체계 속에서 잘하는 일을 반복할지, 아니면 낯선 곳에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며 새로운 일을 펼쳐볼지, 이 또한 어디를 선택하실 건가요? 그 어디라도 부디 사람이 힘들지 않은 곳이면 좋겠습니다. 매일매일 짧은 글, 54일 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