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가고 싶을 때

매일매일 짧은 글 - 60일 차

by Natasha

‘삶에 열심이었다’라는 것은 질량이나 부피로 계산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그것의 정도에 대하여 다른 삶과 비교하거나 상대할 수도 없습니다. 제 인생에 대해 ‘매 순간 치열하게 살았다 ‘까진 아니어도, 적어도 ‘열심히 살았다 ‘라고는 말하고 싶습니다. 일하면서 번번이 번아웃으로 멈춤의 시간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지금의 직장에서는 딱 3년 차에 그 순간이 왔고, 그리고 작년부터 스멀스멀 기운이 느껴지더니 올 초 다시 한번 마주쳤습니다.


인생의 폭풍은 갑자기 온다고 하지만, 번아웃의 예고는 분명 있었습니다. 폭풍이 오기 전, 날이 흐리고 공기 중 습도가 높아지고, 새들의 움직임이 여느 날과는 다르듯 말이죠. 삶이 지루한데 그 무엇도 배우고 싶지 않고, 그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았습니다. 누구라도 칭찬할 정도로 예쁘고 깔끔하게 정리했던 집이 언젠가부터는 쓰레기와 먼지가 쌓였습니다. 지금의 제 모습이 전혀 멋지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의 난 무엇을 해온 것인지 자괴감이 들어 스스로를 용서하기 힘들기도 하더군요.


다른 사람들에게는 배려와 이해와 공감을 하자면서, 스스로에게는 잔인하고 엄격한 기준을 들이밉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도 결국은 나를 괴롭히는 일이었습니다. 남은 곧잘 용서한다면서, 정작 내 마음은 달래주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얼마나, 자주, 용서하나요? 스스로에게 화가 난 채로 사는 사람은 결코 평화를 경험할 수 없습니다. 어째서 최선을 다해, 열심이었던 나를 칭찬해주지 않았을까요? 멍청했던 실수나 해결하지 못한 문제, 더 나은 ‘나‘이지 못했던 것에 대한 후회가 가득하다면 내 마음은 그저 지옥일 뿐입니다.


하지만 이런 내 마음과 차분히 이야기를 나누고, 스스로를 용서하고, 다시 나를 마주하는 시간을 일상에서 갖기 어렵습니다. 제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입니다. 저의 여행은 누군가에게는 속 편하고 배부른 이의 여유로운 휴가처럼 보이겠지만, 제겐 현실에서의 도피이자, 내 삶을 지우는 의식이며, 내게 감사하는 순간입니다. 지금 여행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매일매일 짧은 글, 60일 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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