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킷리스트 따위

AM 11:30-PM 1:00

by Natasha

대충 점심을 때우고 회사 근처 공원을 한 바퀴 걸었다. 얼마 안 되지만 입장료가 있어 무료입장이 되는 동네 어르신들을 제외하고는 몇몇은 입구에서 발길을 돌린다. 아침점심오후 커피 사 먹는 돈도 안 아끼는데, 운동삼아 티켓을 끊고 들어갔다. 동료들이 싫은 것은 아닌데 묘하게 불편해 홀로 밥을 먹으며 생각을 정리하고 입과 눈이 쉬는 이 시간이 오히려 좋다.


입사 이후 두어 달 채 지나지 않아 자질구레한 사고로 깁스를 하고 정형외과와 한의원을 번갈아 다녔다. 이곳과 내가 맞지 않은 것인지, 이제 나이 들어 체력적으로 약해진 것인지, 그도 아니면 그저 운과 타이밍이 안 좋았는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일과 사람과 회사가 지금의 나에게 힘들다는 것은 알겠더라. 9시 출근과 6시 퇴근, 포괄임금제라 야근 강요도 없고(일이 없다는 것은 아님), 내가 하는 일에 큰 관심도 없고 잘 알지도 못하기에 성과에 대한 압박도 아직까진 없는, 나쁠 것도 없는 데 내 성에 차지 않는 업무와 결과와 대우에 병들어가는 기분이다.


얼마 전 엄마 아들이 내게 버킷리스트가 있냐고 물었다. 특별한 꿈이 있었던가, 잘 기억이 안 났다. 아마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 한 달 살기를 하고 싶었고, 무언가를 배우고 싶었고, 간절히 기도하는 삶을 살고 싶었던 것이 버킷리스트였다면 얼추 이룬 것 같기도 하다. 요즘은 매번 은퇴를 꿈꾸며 나의 로망인 그 도시에서 3년 정도 살면서 그 나라의 언어를 배우며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꿈을 꾼다. ‘로또가 되면‘이라는 가정법이 항상 따라붙는데, 어느 날 문득 이건 결코 이뤄질 수 없는 일이겠구나 싶었다. 지금 하지 못하는 걸 나중에 과연 할 수 있을까. 과감하게 그냥 하면 되지, 싶다가도 내 삶이 1-2년 안에 끝날 것이 아님을 알기에, 가서는 어떻게 3년을 살 건데? 그곳에 다녀와서는 어쩔 건데? 지금도 이직이 어려운데, 3년 뒤는 어떻겠니? 그렇게 꿈을 접는다.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에 대한 보기도 답도 없는데, 왜 현재의 삶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걸까. 쉽게 살고 싶은데 매번 쉽지 않은 길을 일부러 찾아가듯, 일이 별로라서 사람이 싫어서 성장가능성이 없어서 이런저런 이유를 찾아 퇴사와 이직을 반복하는 것도 지 복이지 싶다. 오롯이 육아와 살림만 하는 친구와 일찍이 프리랜서의 길로 들어선 친구와 나랏밥 먹으며 적당히 살겠다 했지만 변화무쌍한 인사이동과 업무에도 묵묵히 한 길만 파는 친구도 이처럼 고민할까. 다들 취업 시장이 꽁꽁 얼어붙다 못해 혹한기 빙하기라며 섣부르게 퇴사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이제 어디 들이밀기에도 많은 경력과 나이, 그렇다고 모셔가기에는 애매한 성과와 능력, 파이어족을 꿈꿨지만 그냥 내 몸이 타들어가는 하루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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