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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 Jul 04. 2022

어쩌면 남프랑스

어쩌면 이번 가을엔 여행을 갈 수 있지 않을까, 그곳이 이왕이면 그토록 꿈에 그리던 남프랑스면 좋겠다, 고 생각했다. 노랗게 펼쳐진 미모사나 온통 보랏빛으로 물든 라벤더가 핀 시기가 아닐지라도, 남프랑스를 비추는 지중해의 햇살이라면 그 어느 곳이라도 좋았다. 구글 맵 속의 골목들을 눈으로 좇으며 그 길 위에 서 있을 나를 상상했다. 가을, 그곳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내게 프랑스의 첫인상은 평범하지 않았다. 24살 첫 배낭여행으로 떠난 유럽의 마지막 나라였다. 한 도시를 가더라도 여유롭게 즐기는 타입과 이왕 왔으니 모조리 다 보고 가리라는 타입이 있다면, 난 전자였다. 엑상프로방스, 니스, 에즈, 생폴드방스, 아비뇽, 망통, 칸, 모나코 … 근처에도 가보지 못하고 파리에만 머물며 공원과 카페를 다녔던 그날들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여행을 시작한 첫날, 어찌 된 일인지 유레일패스는 잘못 예약돼있었고, 파리의 기차역에선 프랑스어로 이야기하라며 나를 전혀 도와줄 마음이 없어 보였지만 이 또한 추억의 한 조각이었다. 나의 프랑스 친구는 ‘그곳이 파리라서 그래. 그들은 친절할 여유가 없어. 프랑스를 제대로 알려면 다른 지역을 꼭 여행해봐.’라며 날 위로해줬다. 그래, 다음번 여행은 파리가 아닌, 내가 가고 팠던 남프랑스로 가야지.


내가 이끌린 곳은 엑상프로방스였다. 이곳엔 폴 세잔의 아뜰리에가 있다. 세잔은 생트빅투아르 산을 사랑했다고 한다. 이 바위산의 풍경을 90여 점의 그림으로 담았고, 다른 인상파 화가들이 강과 들판으로 나가 빛의 변화에 집중할 때 작업실에서 ‘슬프고 우울한’ 사과를 그렸다. 그는 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큰 어려움 없이 작품 활동을 이어갔으나, 무명의 기간 동안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며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 그래도 그의 곁엔 함께 예술을 논하는 친구 에밀 졸라가 있었다니 다행이다. 도심에서 10분 정도 언덕을 오르면 나무로 둘러싸인 세잔의 작은 방이 있다. 커다란 유리벽을 통해 들어오는 남프랑스의 햇살 속에서 작업에 몰두했을 세단을 떠올린다. 그가 아꼈던 물건들이 그대로 남아있는 아뜰리에는 꼭 가봐야지.

*세잔의 아뜰리에(Atelier de Cézanne)

https://www.cezanne-en-provence.com/en/the-cezanne-sites/atelier-de-cezanne/


구글 맵으로 찾아본 엑상프로방스는 물의 도시라는 이름답게 크고 작은 분수들이 골목의 끝마다 자리 잡고 있었다. 엑상프로방스 주민들을 일컫는다는 엑수아(Aixois)들이 노천카페에 앉아 여유롭게 커피와 로즈와인을 즐기는 모습을 보며 그 골목 위에 서 있는 나를 떠올렸다. 큰 캐리어를 끌고 서울-파리-마르세유를 거쳐 또다시 버스를 타고 엑상프로방스로 이동해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분수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햇살을 받아 반짝이며 흩날리는 어느 오후의 여유를 경험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사실 여기까지 마음을 먹고 비행기 티켓을 알아보던 중, 생각보다 비행기 시간이나 이동이 여의치 않음을 깨달았다. 남프랑스로의 직항은 없으니 어찌 되었건 경유는 당연지사였고, 그렇게 내면의 합의를 본 곳은 니스였다. 완벽에 가까운 푸른 바다와 길게 깔린 자갈 해변 영국인들의 산책로 , 그 위를 여유롭게 걷는 사람들, 알록달록한 건물들, 매일 열리는 시장의 싱그러운 과일과 꽃, 관광의 도시답게 이방인들에게도 친절한 현지인, 그리고 이곳엔 마티스 미술관과 샤갈 미술관이 있다.


피카소와 함께 20세기 미술을 대표하는 마티스는 니스에서 예술적 영감을 크게 얻었는데, 단순할수록 내면의 감정에 더 강력히 작용한다는 그의 말처럼 그는 강렬한 원색으로 거칠고 대담한 붓터치를 선보였다. 그에게 니스는 영혼의 안식처가 되었는데, ‘모든 것이 거짓말 같고 어이가 없고, 숨 막히게 매혹적이다. 나는 매일 아침 이 황홀한 빛을 보게 될 것이라고 깨달았을 때, 내게 주어진 행운을 믿을 수 없었다’고 했다 하니 그곳을 가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마티스 미술관(Musée Matisse)

https://www.musee-matisse-nice.org/fr/


니스의 샤갈 미술관은 샤갈 작품 중 종교에 관한 작품만 전시된 곳이다. 종교, 성서는 샤갈에게 예술 창조에 있어 가장 원천이었는데, 작년에 국내에서도 이 주제의 전시가 올라갔었다. 샤갈은 색채의 마술사로 불리는데, ‘이것은 샤갈 작품’라고 바로 알아차릴 만큼 파란색과 녹색, 빨간색 그리고 흰색을 절묘하게 담아낸다. 종교를 깊이 있게 이해하기는 어렵겠지만, 그의 작품을 통해 그의 인생의 한 조각을 만날 수 있는 있지 않을까.

*샤갈 미술관(Musée National Marc Chagall)

https://musees-nationaux-alpesmaritimes.fr/chagall/en


그러다 어느 가을밤 하루는 마세나 광장의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을 보고 싶다. 니스의 추억을 가득 채워줄 멋진 작품을 관람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있을까.

*니스 오페라하우스(Opéra de Nice)

https://www.opera-nice.org/fr


서울-파리-니스로 이어지는 비행만으로도 도착할 수 있고, 약 40㎞ 이어진 지중해 해안 코트다쥐르(Cote d'Azur)의 중심도시이기에 혹 여행 중 다른 지역을 가보겠다는 마음을 먹게 된다면 엑상프로방스와 모나코를 당일치기로라도 갈 수 있으니 니스는 꽤 괜찮은 목적지였다. 하루는 꼭 아를도 가야지. 고흐의 ‘밤의 카페테라스’를 바라보며 그림을 그리고 싶다. 고흐는 “내 작품이 팔리지 않아도 어쩔 수 없어. 그렇지만 언젠가 사람들도 내 그림에 사용한 물감보다, 내 인생보다 더한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거야.”라고 했는데, 비록 나의 그림은 전혀 그 가치를 논할 수 없을지라도 그와 다른 시간대에 같은 공간에서 그림을 그린다는 영광의 순간만으로도 가치는 충분할 것 같다.

*고흐의 카페 Le Café La Nuit

https://goo.gl/maps/S7jZ77xsCiRBc7ZZ7


이렇게 글로써 마음을 정리하니 더더욱 남프랑스로 떠나야겠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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