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로 가는 버스
무주행 시외버스를 타기 위해 터미널에 도착했을 때 나는 90년대로 회귀한 듯한 그곳의 분위기가 낯설어 오래돼 모퉁이가 해진 의자에 앉지 못하고 얼마간을 서성였다. 입구 쪽에 걸린 전자시계가 [14:10]의 빨간빛을 번쩍였지만 2시 35분 출발의 버스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출발까지 5분쯤 남았을까. 이윽고 부릉부릉 시동을 켠 버스들 사이에서 장수행 버스를 발견했다. 무주로 가는 버스였다.
내 옆 좌석에 앉아 있는 노부부의 대화가 얼핏 들렸다. “시간 내에 못 가겠는걸” 대화 틈을 비집고 버스 기사가 누군가와 통화하는 목소리를 나는 들었다. “앞에 사고가 나서 이제 휴게소를 지났어요.” 6시 30분 도착 예정인 버스는 꽤 늦게 도착할 듯했다. 난 지금 지나고 있는 곳이 어디쯤인지 가늠도 못 한 채 네이버 지도를 켜고 도착 장소까지 남은 시간을 수차례 되돌려 보았다. 무주로 들어선 버스가 첫 번째 정류장에 멈춰 섰을 때, 버스 안의 좌석은 거의 비어졌다. 아마 이곳이 가장 크고 사람이 많이 사는 면이지 싶었다. 나는 언제쯤 내려야 할지 불안한 마음에 엉덩이를 띄웠다 앉았다 어쩔 줄을 몰라했다. “에잇 썅” 난데없이 버스 기사가 욕을 했다. 갑작스레 끼어든 차에 브레이크를 밟으면서. 난 비로소 이곳이 내가 살던 곳이 아닌, 낯선 지역으로 왔음을 새삼 느꼈다.
버스의 덜커덩거림이 잦아졌을 때쯤 두 번째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행여나 도착지를 놓칠까 서둘러 내려 짐을 찾았다. 버스에 타고 있을 때는 몰랐던 피로가 몰려왔다. ’이제 어떻게 가지?‘ 그 언젠가 상상해 본 적도 없는 곳에 11월의 어둠이 짙게 내리깔려 있었다. 택시도, 버스도,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제가 지금 터미널에 도착했는데 어떻게 가면 될까요?] 메시지를 보내자마자 누군가가 정류장 문을 열고 들어오며 인사를 건넸다. “낭만이 이시죠?”
연둣빛 깔깔이를 입고 단발머리를 짧게 묶은 그녀의 눈빛이 나를 지나쳐 다른 곳을 향했다. 서울에서 버스를 탄 이래, 나는 이 낯선 곳에 홀로 내려졌다 생각하고 있었다. 내 뒤에는 또 다른 이가 있었다. “두 분 같은 버스일 거라 생각했어요. 도착 시간이 비슷했거든요.” 그녀는 유쾌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처음엔 낯을 가리는 성격인 탓에 난 꿀을 머금은 것처럼 입술에 힘을 잔뜩 주고 있었다. 초겨울 산 밑자락 무주의 바람 속에는, 스산한 어둠과 아직 그 누구도 밟지 않은 첫눈 같이 깨끗한 공기, 그리고 어색과 긴장으로 쭈뼛대는 내가 이상스레 섞여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