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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무주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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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 Dec 08. 2023

무주기행(feat.산골낭만)

아침에 만난 사람들

‘고등학교 졸업 이래 낯선 사람과 같은 방에서 3박 4일을 보내본 적이 있던가?’ 그런 생각을 하자 난 무주에 왔다는 것을 더욱 실감했다. 서울의 나는 사람들의 어깨와 가방의 압박으로 지하철을 탈 때마다 숨이 가쁘고 메스껍고 눈앞이 까매지곤 했다. 그저 컨디션이 안 좋은 날이라고, 회사에 가기 싫은 꾀병 정도라고 치부했던 그 간헐적 증상들이 잦아질 때쯤, 이것이 공황장애라는 것을 의사의 입으로 들었다. 그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고, 그럼에도 그 누구와도 만나야 했던 나의 일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산골이라는 단어, 낭만이라는 문구가 설레어 무작정 ’산골낭만‘ 프로그램을 신청해 버렸던 것이다. 리틀 포레스트 같은 삶을 꿈꾸지만 서울을 떠날 생각은 못했던, 떠난다면 한국을 떠나겠다는 생각만 했던 탓도 있지만, 하여튼 난 평소의 나답지 않은 선택과 실행을 해버렸다.


무주의 아침은 빨랐다. 아직 밤이 길 텐데 어디선가 닭이 매시간 울어댔다. ‘서울에선 강아지 짖는 소리가 들릴 텐데 닭 소리도 신선하네’ 싶었다. “몇 시예요?” 지난밤, 여러 개의 봉지에 짐을 잔뜩 담아 들고 온 여자가 이불을 뒤척이며 깨어나며 말을 걸었다. 상상 공상 망상의 세계를 뛰놀던 내 생각을 확 잡아 끌어당겨 현실로 나를 데려다 놓았다. 그녀의 얼굴이 내가 낯선 곳에 있음을 다시금 깨닫게 한 것이다.


산골낭만 프로그램이 시작되기 전에 사람들은 운영진 측이 나눠준 티셔츠를 입고 문밖으로 나섰다. 똑같은 녹색 티셔츠를 맞춰 입은 참가자들이 똑같은 연두색 깔깔이를 입은 운영자들과 사진을 찍었다. “지금은 다들 어색하지만, 끝나는 날은 어떻게 표정이 달라지는지 사진 보면 알 수 있어요” 지난밤 유쾌한 목소리의 여자가 말했다. 나눠 탄 차에는 일곱 명의 사람이 앉았다. 그리고 11월, 그 겨울의 입구를 달렸다.


아침을 건너뛴 점심 식사는 다슬기 된장국이었다. 내게는 할머니의 음식이었다. 할머니 집에서 종종 먹었던,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로는 아니 쓰러져 침대에 누워만 계셔야 했던 그날 이후로는 먹어보지 못했던 국이었다. ’아, 이런 음식이 있었지‘ 싶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온 거리는 작고 아담했다. “여기가 안성면 시내예요” 운영자 중 누군가가 이렇게 말을 한 것 같다. 삼삼오오 종이컵에 믹스커피를 담아 들고 주변을 살폈다. 나는 물이 흐르는 안성교 옆 단풍이 몇 남지 않은 나무 사진을 찍었다. 매달려 있는 잎사귀가 애처로이 보였다.


 “낙화놀이 알아요? BTS RM의 뮤직비디오에도 나오는데. 며칠 전 여기서 낙화놀이를 했어요.“ 사람들이 낙화놀이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줄불놀이라고도 하는 낙화놀이는 주로 뱃놀이에서 놀이의 흥을 돋우기 위한 것이었다. 뽕나무나 소나무, 상수리나무껍질을 태워 만든 숯가루를 한지 주머니에 가득 담아 나뭇가지나 긴 장대에 줄로 매달아 불을 붙이면, 불씨 주머니에 든 숯가루가 타면서 불꽃이 사방으로 떨어진다. 밤하늘의 불꽃이 멀리 날아가는 것 같아 낙화놀이라 한다. 난 눈앞에 검은 하늘에 흩뿌려진 붉은 꽃잎을 떠올렸다. 떨어지는 불꽃은 분명 꽃잎 같았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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