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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KPI의 괴로움

매일매일 짧은 글 - 15일 차

by Natasha

오늘은 출근길에 문득 어떠한 감정도 느낄 기운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월요일이라 지쳐서가 아니라, 그냥 그 어떤 것에도 에너지가 나지 않더라고요. 3년째 그렸던 매월의 작은 그림은 손도 대지 못한 채, 벌써 일주일이 지나버렸죠. 그래도 매일매일 짧은 글쓰기는 어떻게든 써 내려가 봅니다.


벌써 2025년 1분기가 지났는데, 아직도 KPI를 설정하고 있어요. KPI(Key Performance Indicator)는 핵심 성과 지표라는 건데, 목표 달성 여부를 측정하는 것이죠. 쉽게 말해서, 성과를 숫자로 나타내는 도구인데요. 내가 하고 있는 업무가 명확하지 않고 수치화할 수 없을지라도 정량적 데이터를 만들어 내야 합니다. 구체적이고(Specific), 측정할 수 있으며(Measurable), 달성할 수 있어야 하고(Attainable), 관련성이 있고(Relevant), 무엇보다 시간제한(Time-Bound)의 기준이 적용됩니다. 물론, 달성할 수 없는 목표를 주기도 하죠. 누구를 위한 KPI인지 모를 것도 많습니다.


올해 내 업무와 팀, 부문의 성과를 평가할 KPI는 1분기 내내 만들었는데 왜 아직도 끝이 나지 않았을까요? 우선 조직의 전략적 목표가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죠. 목적지가 없는데, 우선 배부터 타고 출발하라는 팀리더 덕분에 우리 팀은 1달 넘게 망망대해를 떠돌았죠. 그리고 얼마전 조직의 목표가 나왔지만, 우리가 과연 건강한 조직인가, 의문이 드는 것들이 투성이었어요. 하지만 일개 직원인 우리는 따르거나 아니면 나가거나 둘 중 하나겠죠.


요즘 직원들은 탈출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쌓아온 커리어를 정리해 성장의 발판을 삼아 부서를 이동하거나, 다른 곳으로의 이직을 준비하고 있어요. 저도 마음은 답답하고 심란하고 조급한데, 어떻게 방향을 잡아 삶을 움직여야 할지 모르겠어요. 은퇴를 꿈꿨지만 대안도 없고, 다들 떠나는 이곳에서 벗어나려면 어디든 자리를 옮겨야 하는 것인지 고민이 깊어만 갑니다.


20년째 한 직장에서 근무하고 있는 엄마 아들과 이야기를 나눴어요. 어느덧 부장님이 된 그는 그다음 스텝인 임원이 되면 계약직이 되고, 3년 근무 후 퇴직을 해야 하는데, 아직 아이가 어려서 최소 10년은 더 일해야 한다고 했어요. 일하는 것이 너무 신나고 좋은 것은 아니지만, 가장으로서 당연히 일을 해야 하고, 어떻게든 평범하게 눈에 띄지 않게 일을 연명하는 것이 목표라는 그가 대단해 보였어요. 책임감이라는 것이 이런 거겠죠. 오늘도 정신 차리며, 매일매일 짧은 글, 15일 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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