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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먹기 싫은 사람

매일매일 짧은 글 - 18일 차

by Natasha

오늘은 팀 워크숍이 있었어요. 누군가는 ‘날이 좋은데 벚꽃 구경 가나요?’라고 묻더군요. 아니요, 저희는 하루 종일 회의실에 처박혀 진짜 워크 WORK를 한답니다. 주제는 분명 하나인데 쪼개고 쪼개 아이템을 나눠놓고 개인별로 자료를 만들어 발표를 시키고, 또 팀을 짜서 디벨롭시켜(하나로 정리해) 또 발표를 시키고, 이걸 아이템별로 각각 하는 거죠. 절대 이 자리는 예스 YES와 노 NO를 정하는 자리가 아니라 해놓고, 팀원들이 발표할 때마다 이건 안되네 저건 안되네 하는 건 또 무슨 경우인지 모르겠네요. 어차피 답은 팀리더가 원하는 걸로 정해져 있는데, 이럴 거면 그냥 하고 싶은 걸 말하고 세부 실행 방안을 만들어보자고 하는 게 나으려나 모르겠어요.


점심시간도 회의의 연속이에요. 직장인의 근무시간 8시간에 법정 휴게시간 1시간이 점심시간인 건데, 왜 이 시간조차 도시락을 시켜 먹으면서 회의를 해야 하는 걸까요? 왜 이 시간조차 편히 쉬지 못하게 하는 걸까요. 사실 무엇보다 그와 함께 밥을 먹는 것이 싫은 거죠, 뭐. 생각해 보면 같이 밥 먹기 싫다는 건 정말 싫은 것 중에 최악이지 않나 싶어요. 이상한 기운을 느꼈는지 그가 ‘좀 먹고 할까요?’라고 말하더군요. 덕분에 어느 누구도 대화 없이 저작운동 소리만 들리는 숨 막히는 10분의 시간을 보냈죠. 결국 절반도 먹지 못하고 남겼지 뭐예요. 물론 모든 일정이 끝나고 갑자기 너무 배고파져서 허겁지겁 제대로 씹지도 않고 남은 걸 다 먹었지만요.


보통 그 자리에 있으면 다른 팀리더와 식사를 하며 업무도 파악하고, 외부와도 점심 미팅을 하며 업계 트렌드나 변화도 알아채야 하는데 전 그분이 입사한 이래로 이런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네요. 또 모르죠, 몰래몰래 다니고 있을지도. 저희에게 ‘점약 없으신 분? 점심 번개?‘하며 제안하는데, 언제부터인가 우리 모두는 항상 약속이 있다는 핑계로 그와의 식사를 거부하고 있어요. 밥 먹는 내내 징징대는 소리, 상대를 깎아내리며 무시하는 말투, 어디서 흘러들어왔는지 모를 가짜뉴스 등등이 오랫동안 쌓인 결과죠. 가끔은 그런 그가 안쓰러울 때도 있어 나라도 챙겨주자 그랬던 적도 있었죠. 하지만 저도 이제 지쳤는걸요. 이젠 제가 살아야 하겠어요.


어쩌다 보니 18일 차 글을 올리지 못한 채 하루가 지나버렸어요. 지각은 했지만, 매일매일 짧은 글, 18일 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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