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깨달음(20250908월)

사람은 어려운 순간에 원망할 대상이 필요하다

by 대통령의스승

현재 내가 살고 있는 곳은 극심한 가뭄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렇다 바로 강릉이란 곳이다. 관련된 수많은 기사들이 다루는 많은 사람들의 고통이 내 피부에 와닿는다. 나 역시 그 사람들 중 한 명이므로.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다른 지역은 현재 물난리라고 한다. 비가 너무 많이 온 탓이다. 이 좁은 나라에서 이럴 수도 있다는 현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지극히 개인적으로는 특히 종교적으로는 충분히 더 자세히 설명할 이야기가 많지만 그 방향은 아내와 나누기로 하고.

평창을 출퇴근하고 있는 나는 직장과 가정 모두에서 다가오는 압박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아내의 입장에 100퍼센트 완벽히 공감하긴 어렵다. 강릉 외 지역은 가뭄이 아니므로 마실 물이 부족한 것은 아니며 씻는 것도 집 앞 목욕탕이 있다(그 목욕탕의 수원은 다른 곳에서 끌어오는 것이라고 한다). 식당도 아직 단수는 되지 않았으며, 식당이 아니더라도 지금처럼 햇반과 다른 반찬들로 어떻게든 식사는 할 수 있다. 마지막 가장 중요한 요소는 화장실이다. 이 부분에 대한 해결책으로는 길어온 물을 온전히 화장실에 쓰는 것! 물을 길어올 곳은 꽤 많이 있다. 강릉 내에도 있으며(물론 수 리터에 불과하지만), 내가 다니는 직장에서도 공수해 올 수 있다. 결과적으로 해결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아내 및 현재 강릉을 벗어나기 힘든 사람들의 스트레스다. 커뮤니티에서는 난리다. 단수로 인한 문제점들을 호소하는 사람, 이 문제의 원인이 무엇이다라는 사람, 이 사태가 올 때까지 강릉시청은 무엇을 했는지 원망하는 사람, 나아가 기후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이야기하는 사람. 정말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오고 가며 문제의 심각성을 심화해 가고 있다.

오늘에서야 내가 느낀 그들의 공통점. 많은 이들의 토로에서는 한 가지 유사성이 있다는 점이다. 당연히 사람 사는 세상에서 예외는 있겠지만 적어도 내가 보고 들은 이야기들의 대부분에서는 누군가를 또는 무엇인가를 원망한다는 점이었다. 그들을 탓하는 것이 아니다. 객관적으로 그러한 사실이 보인다는 것이다. 강릉시장을 원망하고(원망할 만하다.) 날씨를 원망하고 이웃주민을 원망하기도 한다.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원망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있었다, 아니 필요하다라는 깨달음이 들어서이다. 사람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때 그것을 풀지 못하면 병이 난다. 본능적으로 원망의 대상을 찾고 그 대상에 화를, 스트레스를 쏟아내며 자신을 안정시킨다. 이때 자기 자신을 원망하는 사람은 정말 없었다. 이 부분이 더욱 원망의 대상을 찾는다는 점에 확신을 갖게 되었다. 내가 조금 더 예전에 물을 아꼈어야 하는데, 기후변화에 대비하기 위해 노력했어야 하는데, 내가 저 사람을 뽑지 말았어야 하는데라고 자신을 탓하고 원망하고 부끄러워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그것이 육체의 생존본능이 아닌 마음의 생존본능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또 얘기하지만 그것이 나쁘다,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다. 지극히 보이는 사실에 대한 나만의 현실자각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오죽하면 아내의 어려움 호소에 100퍼센트 공감하지 못하고 있다고 하지 않았겠는가.

이러한 불편함과 혼돈이 속히 지나가야 모두가 안정을 찾아 원망의 대상이 아닌 배려, 사랑의 대상들이 보이고 따뜻한 관계들이 회복될 텐데 쉽사리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 가뭄이. 아니 기약조차 없다. 오늘도 난 아내와 기도한다.

2025. 9월 강릉 가뭄 검색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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