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살짜리 손자와 손잡고 아파트 공원을 걷는다. 고사리 같은 작은 손의 부드러운 촉감과 따스한 체온을 통해 행복감이 가슴으로 스며온다.
“지환아, 할머니는 세상에서 지환이가 제일 좋아.”
“왜?”
“지환이가 세상에서 제일 멋지니까. 그래서 지환이랑 이렇게 손잡고 걷는 것도 너무 좋아. 지환이도 할머니랑 같이 산책하는 거 좋지?”
“응.”
지환이의 속마음은 모르지만 어쨌든 나는 이 순간이 행복하다.
이번에는 강아지풀을 하나 따 손자의 코끝을 간지러 본다. 손자가 간지럽다며 어깨를 움츠리며 까르르 웃는다. 또 한 번의 행복감이 온몸으로 스민다. 나는 손자와 있는 시간이 너무 좋다. 나의 손자가 태어나기 전에는 남들이 손자 이야기하는 것을 못마땅해했었다. ‘어지간히 이야기 소재가 없나 보네’ 그렇게 취급했었다. 그러나 내가 손자가 생기고 보니 정말 할 말이 많아진다. 그러나 내 손자는 나만 예쁜 법, 어디 가서 남들처럼 손자 이야기는 하지 말아야지 다짐도 여러 번 했지만 그 자신과의 약속을 망각할 때가 많다.
며칠 전에는 비행기라는 노래를 가르쳐 줬더니
‘떴다 떴다 비행기 날아라 날아라
높이 높이 날아라 우리 비행기’
하며 제법 잘 따라 했다. 그런데 오늘 공원을 산책하는데 갑자기 헬기콥터가 요란한 엔진 소리를 내며 날아간다. 그것을 보고 손자가 노래를 한다.
‘떴다 떴다 헬리콥터 날아라 날아라
두구두구두구두구 날아라 우리 헬리콥터'
이렇게 상황에 맞춰 가사를 바꿔 부르는 4살짜리 손자가 너무 사랑스럽다.
손자와의 추억을 떠 올려 본다.
며칠 전 며느리가 병원에 간다며 나에게 손자를 어린이 집에 데려다 주라는 부탁을 했다. 집에서 가까워 입고 있던 운동복에 화장도 하지 않은 얼굴에 모자 하나 눌러쓰고 손자의 손을 잡고 출발했다. 가는 도중 손자의 표정이 계속 좋지 않다.
“지환아, 왜 그래?”
“........”
“왜, 화났어? 할머니랑 가는 거 싫어?”
“응.”
“왜? 왜 싫어?”
“못생겨서.”
나는 그만 할 말을 잃었다. 네 살짜리의 솔직한 대답이 나를 당황시켰다.
물론 자기 엄마보다 못생긴 건 어쩔 수 없지만 운동복이라도 벗고 화장이라도 하고 왔으면 어린 손자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았을 걸. 할머니 노릇도 쉽지 않군, 지환아 다음부터는 멋진 할머니 모습 보여줄게 손잡고 가자.
문득 최백호와 아이유가 부른 ‘아이야 나랑 걷자’의 가사가 생각난다.
‘아이야 나랑 걷자,
멀리 너의 얘길 듣고 싶구나
아이야 서두를 건 없다.
비가 올 것 같진 않아
볕이 닿는 흙을 밟으며 바람 따라 걷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