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저녁 나는 피아노를 치고 남편은 옆의 소파에서 책을 읽는다. 독서하는데 피아노 소리가 신경 쓰이지 않느냐, 방으로 들어가 책상에서 읽으라고 해도 괜찮으니 마음 놓고 치란다. 신기한 일이다. 나는 독서할 때 작은 소음에도 신경이 쓰이는데. 역시 남편은 무던한 성격의 소유자다. 남편이 밖에 일이 줄어들면서 많은 시간을 집에서 보낸다. 우리는 함께 장도 보고 음식도 같이 만든다. 언제부터인가 자연스럽게 설거지는 남편이 으레 하려니 한다.
요즘 TV에서 은퇴한 남편들이 가정에 적응 못해 힘들어하는 것을 자주 보게 되는데 우리 집은 다행히 그런 일은 없다. 얼마 전 모 방송국 작가한테 전화가 걸려 왔다.
“남편이 집에 계시는 시간이 많으니 불편하시죠? 밉기도 하고요. 은퇴한 남편들과 같이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그런 걸 털어놓는 프로그램이에요.
선생님 댁은 어떠세요. 불편한 거 많죠? 마음에 안 드는 것도 많고요.
그냥 출연하셔서 그런 거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시면 돼요. 남편분이 집안일은 좀 도와주시나요? 남편이 집에 계시면 꼴 보기 싫을 때도 많죠? 두 분이 같이 계실 때 주로 뭐하세요?”
나는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스러웠지만 있는 그대로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부부는 각자 취미가 있어서 그렇게 불편하지 않아요. 집안일도 같이 하고 그리고 남편은 집에 있을 땐 주로 책을 읽어요. 그래서 불편한 일은 없는데...’
‘그래도 잘 생각해 보세요. 같이 있으면 귀찮고 싫찮아요.’
‘별로 싫지 않은데...’
‘네 그럼 다음에 전화드릴게요.’
은퇴한 부부들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의 섭외 전화였다.
그 전화를 끊고 생각해 보았다. 황혼 이혼을 생각하는 부부도 많고 졸혼을 생각하는 부부도 많은 세태에 그래도 우리 부부는 그런 거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은 그럭저럭 잘 살아왔다는 생각이다. 젊었을 때는 술 마시는 것 때문에 잔소리도 많이 했는데 이제는 과음도 못 이기는 나이가 되었으니 서로 측은지심으로 살아가야지 별도리가 없다.
오늘 저녁 남편은 모임에 가고 나 혼자 집에 있다. 뒷문으로 보이는 낙엽 떨어지는 초겨울 숲이 우리 부부의 계절이 아닌가 싶다. 서로 감싸주고 사랑해 주며 나머지 인생 멋지게 마무리하고 싶다. 라디오에선 계절에 맞는 이브 몽땅의 고엽이 흐른다. 아름답고 운치 있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