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하지 않도록

by 민정애

지난밤도 가끔 오는 불면증 때문에 새벽에 잠이 들었다. 일어나 보니 9시가 넘었다. 다행히 남편도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오늘은 남편의 68번째 생일이다.

서둘러 부엌으로 나와 밥을 안치고 들기름에 쇠고기, 미역을 달달 볶다가 멸치가루 들깻가루 마늘, 통 양파 하나 넣고 국물 부어 푹 끓인다. 그다음 사다 놓은 마를 동그랗게 썰어 밀가루 달걀 발라 노랗게 전을 부친다. 준비되어 있는 김치와 몇 가지 밑반찬을 차려 남편의 생일 아침상을 준비했다. 느지막이 일어난 남편이 식탁에 와 앉는다. 나는 쑥스러움을 감추려고 장난기 있게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수저를 들던 남편 코끝이 빨개지며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눈물이 나는 얼굴을 감추려 하지만 잘되지 않는 모양이다.

“왜 그래, 갑자기 당신도 이제 늙었구나. 남자가 왜 눈물을 흘리고 난리야. 나까지 센티해지게, 오래전에 돌아가신 엄마가 보고 싶어서 그래 아버지가 그리워서 그래? 아니면 지나온 세월이 허무해서 그래?”

“자기한테 고마워서 그러지. 자기 정성에 감격해서”

남편의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한 마디에 나도 덩달아 눈물을 찔끔거렸다.

첫째 아들 유학 보내고 뒤이어 둘째 아들 유학 떠나보내고 공항에서 돌아와 식탁을 차리는데 습관적으로 수저 세 개를 들다가 다시 한 개를 내려놓았다는 말을 하자 그때도 남편은 눈물을 흘렸었다. 오늘 문득 그때의 일이 떠오르며 가족이 얼마나 서로에게 소중한 존재인지 새삼 느끼게 된다. 아이들은 자기 둥지 만들어 떠나고 우리 두 부부만 덩그러니 남았다.

그러나 나에게는 아직 사랑을 나누어 줄 상대가 있고 그 사랑을 고맙게 받아 주는 사람이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나는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우리 둘마저 하나가 먼저 떠나게 될 텐데 그때 후회되지 않도록 열심히 사랑하자. 눈물을 닦으며 빨개진 눈으로 어색하게 웃는 남편의 얼굴이 애처롭다.

미역국 한 그릇에도 감동받을 줄 아는 사람이 나의 남편이라는 사실이 고맙고 감사한 일이 아니겠는가. 나도 또 괜히 눈물이 난다. 감사의 눈물이다.

문득 마크 투웨인의 말이 떠오른다.

“There isn’t time, so brief is life, for bickerings, apologies, heartburnings, callings to account. There is only time for loving, and but an instant, so to speak for that.

(인생은 너무 짧아서 다투고, 사과하고, 마음 아파하고 책임 추궁할 시간이 없다. 오직 사랑할 시간밖에 없다. 비록 그것 또한 한 순간이라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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