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로얄석

by 민정애

남편과 나 두 식구 노년에 도란도란 살아갈 수 있는 작은 집이 있는 용인으로 이사 온 지 두 달이 되어간다. 지난밤 잠을 청하며 뒤척거리고 있는데 이사 와서 처음 들어보는 소리에 놀라 눈을 떴다. 그 소리의 근원지를 따라 살금살금 발걸음을 옮겼다. 부엌 쪽의 창문이 열려 있었다. 이 집으로 이사 오고 제일 마음에 드는 것이 이곳 창문으로 내다보이는 골프장 입구로 나있는 낮은 언덕의 숲이다. 집 안에서 자연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두 달 전 이사 올 때 노란 은행잎들이 빨간 단풍잎들을 불러 모아 가을 축제를 한창 벌이고 있었는데 며칠 전 새벽에는 밤새 모두 흰 눈 코트로 갈아입고 나를 한참 그곳에 머물게 하더니 오늘 밤은 앙상한 겨울나무들이 찬바람의 날카로운 현에 맞추어 춤추는 소리로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다. 얼마 만에 들어보는 신비한 자연의 소리인가. 나는 한참을 서서 어느 악기로도 흉내 낼 수 없는 자연의 오케스트라를 감상했다. 관객이 아무도 없는 캄캄한 무대에서 오직 나 하나만을 위한 연주는 아다지오 안단테 알레그레토 알레그로를 넘나들며 나를 감동시켰다. 내가 관람하는 자리는 로얄석이다. 숲이 가까이 있으니 작은 소리까지도 내 마음을 두드린다. ‘겨울나무’라는 제목의 동요가 저절로 입가에 맴돈다.

‘나무야 나무야 겨울나무야

눈 쌓인 응달에 외로이 서서

아무도 찾지 않는 추운 겨울은

바람 따라 휘파람만 불고 있느냐.’


그리움이 밀려온다. 몇 해 전 돌아가신 친정아버지, 홀로 계신 엄마, 며칠 전에 다녀간 외국에 살고 있는 큰아들 가족이 벌써 또 보고 싶다. 집안을 가득 메웠던 손주들의 웃음소리도 아직 귀에 쟁쟁하다. 어느새 훌쩍 지나가 버린 나의 푸르렀던 시절 또한 그립다. 60이 넘으니 세상에는 아름다움 천지다. 추운 겨울 칼바람도 마다하지 않고 고스란히 견디며 봄을 기다리는 자연의 묵묵함을 배우고 싶다. 이 겨울이 지나면 나만의 로얄석에서 또 한 번의 찬란한 봄의 연주를 감상할 수 있겠지. 그때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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