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지중해
아~지중해, 지중해,
“나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라고 외친 자유의 상징 조르바가 살았던 크레타 섬이 있는 지중해,
아바의 아름다운 노래들이 울려 퍼지던 영화 맘마미아의 촬영지 지중해,
절벽 위의 하얀 벽에 파란 돔 지붕이 우리의 마음을 출렁이게 하는 산토리니가 있는 지중해,
이름만 들어도 낭만이 흘러넘치는 지중해에 드디어 내가 발을 디딘다. 남편의 칠순을 기념하기 위해 떠난 여행이다. 인생은 참으로 살아볼 만하다. 70대에 우리 부부가 함께 지중해에 오다니. 몇 년 전 큰 수술을 받아 더 이상의 장거리 여행은 못 할 거라 생각했는데... 이 여행을 계기로 다시 세계일주의 꿈을 꾸어본다.
카타르의 도하를 거처 베네치아에 도착했다. 공항에 도착하여 TV에서만 보던 수상택시를 타고 숙소로 향한다. 공항과 선착창이 바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 신기하다. 어둠이 내려앉은 저녁에 도착하여 수상택시의 낭만을 느끼지 못하고 깜깜한 물길을 달려야 했다. 30분쯤 후 드디어 야경이 아름다운 베네치아 본섬에 도착했다. 유명한 지역답게 관광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오랜 시간의 비행기 피로로 아름다운 베네치아 운하의 야경 감상을 뒤로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이튼 날 아침 기상하여 창문을 여니 발밑이 바로 수로였다. 골목길이 수로인 것이다. TV 에서나 사진을 통해서만 보던 수상도시에 내가 떠 있는 것이다. 5세기경 이민족에 쫓긴 롬바르디아의 피난민이 모래톱으로 이루어진 만 기슭에 말뚝을 박고 지반을 다져 마법 같은 마을을 만든 것이 베네치아의 역사라 한다. 얼마나 긴박했으면 물 위의 모래톱에다 지반을 만들 생각까지 했을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모래땅과 늪지는 단단한 지반이 되었다 한다. 인간의 생존 욕구는 어디까지이며 인간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그들은 어려운 시기를 교훈 삼아 안전지대를 만든 것이다. 베네치아는 이렇게 현재의 우리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래서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풍경들이 골목마다 이어진다. 건물과 건물 사이는 수로로 연결되어 있고 수로를 건널 수 있는 아치형의 구름다리들이 운치를 더한다. 아침을 먹고 숙소 근처에 있는 10세기 말부터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였던 산마르코 광장으로 향했다. 나폴레옹이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응접실’이라 칭했다는 산마르코 광장은 이른 아침인데도 많은 관광객들로 붐볐다. 베네치안 고딕 건축의 탁월한 걸작으로 마가복음서를 쓴 성 마르코의 유해가 안치된 대성당은 죽기 전에 꼭 보아야 하는 건축물에 뽑힌 곳답게 성스럽고 정교하여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다른 한 면에는 베네치아 공화국의 총독관저였던 건물을 지금은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드칼레 궁전, 또 그 궁전과 연결되어 있는 감옥으로 가는 다리, 죄수들이 다리를 건너며 이 아름다운 베네치아의 풍경을 다시 볼 수 없다고 탄식하며 건넜다 하여 ‘탄식의 다리’로 불렸다고 한다. 또 한 면에는 괴테, 바이런, 그리고 카사노바가 자주 이용했다는 카페 ‘플로리안’이 있는데 무라노 섬으로 향하는 배 출발 시간에 쫓겨 그곳에서 차 한 잔 못 마신 것이 이번 여행의 아쉬움으로 남는다. 산마르코 광장은 중세시대의 격조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광장에서 이어진 선착장에서 12세기 때부터 지금까지 유리공예로 유명한 무라노섬으로 향했다. 배에서 내리니 안내원이 나와 유리공예전시장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장인이 만드는 유리공예 시연을 보고 전시장으로 안내되어 정교하고 아름다운 유리공예품을 감상하며 인간이 가진 예술혼은 무한하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그다음 다시 배를 타고 부라노섬으로 향한다. 최근 우리나라의 유명한 가수가 뮤직비디오를 찍은 장소로 유명해져 인생 샷의 명소가 되었다는 부라노 섬의 알록달록한 집들이 인상적이다. 집집마다 페인트 색이 다른 이유는 안개가 많이 끼는 지역으로 새벽에 고기잡이배에서 돌아오는 어부들이 자기 집을 잘 찾을 수 있도록 칠하면서 지금의 알록달록한 동화마을 같은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저녁에는 1591년에 완성된 흰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베네치아 운하의 첫 번째 다리인 리알토 다리(1987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됨)를 건너 노천카페에 앉아 맥주 한잔 마시며 황홀한 베네치아의 야경에 취해본다.
2박 3일의 베네치아 여행을 마치고 드디어 크루즈 선에 오르는 날이다. 우리가 탈 크루즈가 정박해 있는 베네치아 항으로 출발하기 전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곤돌라 체험을 했다. 괴테가 어렸을 때 아버지가 사다준 곤돌라 모형을 보고 베네치아 여행을 계획했다는 글을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그 역사가 있는 곤돌라 체험을 빼놓을 수 없다. 멋진 이태리 남자가 노를 저어주는 곤돌라를 타고 시간여행을 하니 나폴리 민요 산타루치아가 저절로 입가에 맴돈다.
베네치아 항에 도착해 탑승 수속을 밟는다. 비행기 탈 때와 비슷하다. 짐을 부치고 탑승권을 받아 승선한다. 방 배정은 예약할 당시 정해지고 모든 수속은 인터넷으로 미리 해 두어 그대로 따라 하기만 하면 되었다. 주어진 방 열쇠와 내 신용카드를 연계시켜 내가 크루즈 안에서 쓰는 부대비용은 자동 결제시스템에 의해 정산된다. 배 안에서 현금은 사용할 수 없다.
탑승 수속을 마치고 객실에 도착하니 가방이 벌써 방 앞에 와 있다. 승선을 마치자 각자 자기 방에 비치된 구명 도구를 가지고 교육장으로 오란다. 오래전 타이타닉 이란 제목의 영화를 떠올리며 교육을 받았다. 그다음부터는 자유시간이다. 거의 하루 종일 열려 있는 뷔페식당과 정찬을 하는 식당을 이용할 수 있다. 또 매시간 이어지는 공연을 볼 수도 있고 본인의 취미에 맞는 곳을 찾아 같은 취미를 가지고 있는 글로벌 친구들과 같은 시간을 공유할 수 있다. 헬스 클럽, 댄스 교실, 칵테일 바는 물론 중후한 사교 클럽도 있고, 활기 넘치는 디스코장과 클럽, 카지노도 있지만 반면 아주 조용하고 격조 높은 도서관도 있고, 병원, 약국도 있다. 갑판 위에는 수영장과 여러 개의 스파도 있다.
크루즈 내부를 돌아보고 방으로 돌아와 발코니에 앉는다. 부드러운 바람을 맞으며 석양에 물든 아드리아해의 낭만에 마음을 맡기고 남편과 서로 얼굴을 마주한다. 이 시간까지 건강한 모습으로 함께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에 그저 감사한 마음으로 깊이 포옹한다.
매일 저녁, 방으로 다음 날 이루어지는 행사 안내, 기항지 안내와 다음 날 드레스코드가 담긴 신문이 배달된다. 그 신문을 보고 자기가 할 일을 정하는 것이다.
어제 오후 7시 30분에 베네치아를 출발한 크루즈는 첫 기항지인 이태리 남부 바리항에 오후 2시에 도착했다. 현지 안내원의 안내에 따라 구 시가지를 둘러보았다. 오래된 골목길에 기념품 가게가 늘어서 있는 정겨운 거리였다. 골목을 지나며 마주한 바리의 수호성 산 니콜라 바실리카 대성당을 접한 것은 이번 기항지 투어의 큰 수확이었다. 이 성당에는 성 니콜라우스(270년~343년. 3~4세기 동로마제국에서 활동한 기독교의 성직자로 산타클로스의 유래가 된 인물)의 유해를 모신 곳으로 유럽의 여느 유명한 성당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하얀 외벽만큼 간결하면서도 내부는 성당다운 위엄이 있었다. 성당에서 나와 파스타 골목길로 들어섰다. 집집마다 파스타를 만들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골목길에서 할머니들이 평상에 앉아 수제 파스타를 빚는 모습이 어릴 적 엄마가 우리를 위해 칼국수를 홍두깨로 밀었던 때로 나를 데려간다. 이런 구시가지의 골목길도 관광 상품이 되는 곳이 이태리인가 보다.
바리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하다는 알베르벨로의 독특한 지붕모양의 집들과 폴리냐노아마레에 있다는 동굴 레스토랑을 시간 관계상 못 본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크루즈 여행이 편하고 좋긴 하지만 기항지에서 출발시간에 맞추어야 하기 때문에 천천히 가보고 싶은 곳을 여유로운 마음으로 할 수 없는 것이 약간의 흠이라면 흠이었다.
어제저녁 6시에 출발하여 두 번째 기항지인 그리스의 카타클론에 오후 1시에 도착했다.
다음 기항지인 산토리니로의 출발시간이 6시 이기 때문에 5시 15분까지 승선을 마쳐야 한다. 그러니 이번 기항지 투어도 4시간 정도 하게 된다.
크루즈에서 내리자마자 택시를 타고 올림피아 유적지로 향했다. 창밖으로는 올리브 나무와 레몬 나무가 펼쳐져있는 들판이 여기가 그리스라고 말해주는 듯하다. 약 30분 정도 걸려 고대 올림픽이 열렸던 올림피아에 도착했다. 11월이지만 지중해의 따뜻한 기후 탓인지 초록색 나뭇잎들이 우리를 반긴다.
제우스 신전은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기둥만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 보는 이의 마음을 안타깝게 한다. 박물관에도 온전치 못한 모습의 출토물들이 우리 보고 상상력을 발휘하란다.
물론 그동안의 자연재해, 전쟁 등으로 고대 올림픽의 발상지가 온전히 보존되어 있지 못했지만 후손들이 좀 더 신경 써서 관리해 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다시 크루즈 터미널로 돌아오는 길에 기념품 가게도 둘러보고 이국의 노천카페에서 맥주 한잔 마시는 멋도 부려보았다.
다시 크루즈로 돌아오니 많은 프로그램들이 우리를 이끈다. 오늘의 드레스코드는 60, 70, 80년대 옷을 입으란다. 파티 주제는 복고풍이다. 파티장마다 빈티지 의상을 입고 그 시대의 음악에 맞추어 복고풍 춤을 추는 것이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콘셉트이다. 그러나 허를 찔린 듯한 이 주제 또한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다음 날 파도가 살랑살랑 흔들어 주는 요람에서 잠이 깨었다. 어린 아기가 엄마 품에서 깨어난 듯한 포근한 느낌이다. 커튼을 열고 발코니로 나가니 지중해의 황금빛 햇살을 가득 머금은 망망대해가 하늘과 맞닿아 있다. 아침마다 발코니를 통해 번져오는 지중해의 햇살만으로도 행복감을 누리기에 충분하다. 발코니에 기대어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았다. 우주 전체가 나와 연결되어 있음을 온몸으로 느낀다. ‘我生有我 我無無我’ (내가 살아 있으니 내가 있고 내가 없으니 내가 없다) 내가 이 순간 살아있지 않으면 이 우주도 없는 것이다. 이 당연한 이치를 다시 한번 상기하며 내가 지금 이 순간 살아 숨 쉰다는 사실만으로 지족함을 느낀다. 나의 시선을 먼 수평선에서 나의 발밑으로 천천히 옮겨본다. 나의 방 11층 객실에서 내려다보니 검푸른 바닷물이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지중해의 아름다운 섬 산토리니로 향하고 있다. 나는 인생의 어느 지점을 통과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나도 지금 이 배에 실려 인생에서 제일 아름다운 지점을 통과하고 있다고 느끼고 싶다.
젊은 날 분에 넘치는 욕심 때문에 마음고생도 해 보았고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해 좌충우돌 부딪히며 내 시간을 고스란히 살아내지 못했다. 얼마나 소중한 시간들을 낭비하였던가.
이제라도 나에게 주어진 내 시간을 오롯이 행복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채울 수 있기를 기도한다.
드디어 크루즈가 항구에 도착한다. 크루즈 정박지는 약간 떨어져 있어 텐더 보트를 이용하여 산토리니로 향한다.
보트에서 내려 케이블카를 타고 해안 절벽에 위치한 티라 마을에 도착했다. 좁은 골목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기념품 가게를 둘러보고 대절한 버스를 타고 섬 일주를 했다. 우리나라에서 몇 년 전 한 음료 회사의 광고 사진을 찍었던 곳으로 유명해진 하얀 벽에 돔 모양의 파란 지붕이 인상적인, 여행자라면 한 번쯤 꼭 가보고 싶어 하는 곳 산토리니의 이아마을에 내가 드디어 발을 디뎠다.
화산재로 매몰된 고대도시 위를 내가 걷고 있는 것이다. 역사는 쉬지 않고 흐른다는 사실, 나 또한 이 거대한 우주의 역사 속에 한 점으로 태어나 나의 임무를 마치면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는 엄연한 사실에 다시 한번 자연의 순환 법칙에 순응하는 마음을 가져본다.
다시 크루즈로 돌아가는 길은 케이블카를 타면 쉽게 내려갈 수 있지만 지그재그로 되어 있는 580계단으로 내려가며 산토리니 여행의 낭만을 온몸으로 느끼고 싶어 그 길을 택했다. 그러나 생각처럼 낭만적이지 못했다. 처음에 내려올 때는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절벽 위에 위치한 하얀 채양이 아름다운 노천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여유도 즐겼지만 중간쯤 오다 보니 그 길은 당나귀가 다니는 길이기 때문에 당나귀 배설물이 도처에
있어 위생적이지 못해 그 길을 택한 것이 후회되었다. 산토리니의 아름다운 추억만을 새기며 배에 오른다. 580계단을 무리하게 내려온 다리의 피로를 풀기 위해 남편과 함께 갑판 위에 위치한 따뜻한 스파에 들어앉아 저녁노을이 번지는 붉은 하늘을 바라보니 이곳이 바로 지상천국이 아니던가. 오늘의 드레스코드는 정장이다. 준비해 간 한복을 입고 공연장에 들어서니 스텝이 나를 잡고 무대로 올라가 재미있는 퍼포먼스를 한다. 몇 명의 유럽인들은 한복 입은 나에게 같이 사진 찍자고 제안한다. 어느 드레스보다 특별한 인상이었나 보다. 한복을 입고 예상치 못한 반응에 얼떨떨했지만 기분 좋은 저녁시간을 가슴에 안고 잠자리에 든다.
지중해, 단어만 들어도 설레는 곳, 고대부터 중세까지 유럽 문명의 중심무대였고 지금도 세계 주요 항로인 지중해, 따뜻한 태양이 올리브를 넉넉히 익히는 곳, 수많은 전쟁과 약탈, 자연재해에 시달리며 오늘도 아름다운 역사를 만들어내고 있는 곳 지중해, 거기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러, 또 어제보다 조금 더 너그러워진 나를 만나러 다음 행선지로 향한다.
오늘은 그리스 최대의 항구 피레우스다.
배에서 내리니 시내 관광버스들이 줄지어 우리를 기다린다. 지붕이 없는 노란 2층 버스에 올라 자리를 잡는다. 지중해의 온화한 햇빛 속에 늘어선 야자수 길을 달리며 이국의 정취를 한껏 느껴본다. 바다에는 멋진 요트들이 정박해 있고 길 건너 언덕 위에는 아름다운 집들이 저마다 멋진 발코니를 뽐내고 있다. 이 아름다운 길을 따라 아크로폴리스에 도착했다. 소크라테스, 플라톤의 발자취를 느끼며 파르테논 신전으로 향한다. 아테네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언덕에 자리 잡은 파르테논 신전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안타까운 모습으로 서 있다. 기둥만 남아있는 신전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 금할 길이 없다. 누더기를 걸친 모습으로 보수 중인 어수선한 신전이지만 찬찬히 둘러보며 고대 그리스의 흔적을 더듬어 본다. 신에게 바치기 위해 지어진 최고의 건축물도 세월의 흐름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이 모든 것이 자연의 이치 아니던가. 어쨌든 나는 지금 소크라테스가 젊은이들에게 정의를 가르쳤던 곳, 바로 그 자리에 있는 것이다. ‘너 자신을 알라’라는 소크라테스의 음성이 내 가슴에 울려 퍼지는 듯하다. ‘너 자신을 알라’라는 가르침을 다시 한번 되새기며 내가 누구인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깊이 성찰하며 다시 버스에 올라 아테네 시내를 둘러본다. 관광지와 달리 시내에는 닫혀있는 상점이 많고 왠지 어수선한 느낌이 그리스가 요즘 경제위기를 겪고 있다는 것을 실감케 한다.
약간은 무거운 마음으로 시내 관광을 마친 후 다시 크루즈로 돌아온다.
크루즈 안에는 어제와 같이 온갖 풍요로움이 펼쳐진다. 잘 차려진 음식들이 나를 유혹하고, 멋진 음악과 함께 하는 댄스 클럽은 나의 마음을 출렁이게 한다. 1200석 규모의 웅장하고 화려한 대극장에서는 오늘도 여지없이 내가 깜짝 놀랄만한 무대가 준비되어 있을 것이다. 지중해의 코발트빛 하늘을 향해 열려있는 스파에서는 어서 와 오늘의 피로를 풀라 한다.
내딛는 발걸음마다 감사함을 꾹꾹 새기며 나에게 주어진 이 시간을 마음껏 음미해 본다. 내 나이 67, 지금까지 잘 견뎌낸 나에게 ‘여기까지 잘 왔어, 지금까지 잘 살아냈어,’라고 속삭이며 눈을 감는다. 감사한 마음이 가슴 가득 채워진다.
어젯밤 피레우스를 출발한 크루즈가 그리스의 아름다운 항구 코르푸에 도착했다. 버스를 타고 올드 도시를 거쳐 성벽까지 간다. 가는 길에는 소박하고 조용한 마을이 이어졌다. 크루즈에서 들떠있던 마음이 차분해진다. 중세시대에는 왜 이리 침략이 많았는지 가는 곳마다 외세의 침략을 막아내기 위해 지어진 성벽들이 유적으로 남아 있다. 그러고 보니 중세뿐 아니라 지금까지도 지구촌 곳곳에는 전쟁을 치르고 있는 곳이 많다. 우리나라 역시 수많은 침략을 받지 않았는가. 인간은 서로 뺏고 뺏기는 역사 없이는 발전할 수 없는 것인지. 서로 침략하지 않고 평화롭게 살 수는 없는 것인지. 이런저런 상념으로 성벽에 오르니 아드리아해의 코발트 빛 눈부신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냥 바라보기만 해도 저절로 탄성이 나온다. 성벽에서 내려와 좁은 골목길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기념품 가게를 둘러보며 옛 도시의 정겨움을 느껴본다. 파란 바다를 배경으로 하얀 파라솔이 펼쳐진 노천카페에서 차 한 잔의 여유도 가져본다. 다시 배에 올라 저녁을 먹고 오늘은 댄스 클럽 대신 조용한 도서관에서 책을 읽었다. 도서관에서 책 읽는 나는 언제나 나에게 칭찬받는다. ‘너는 멋진 할머니야’
어젯밤 코루프를 출발한 크루즈가 아드리아해의 가장 아름다운 항구 몬테네그로의 코토르에 아침 7시에 도착했다.
코토르는 몬테네그로에서 가장 잘 보존된 중세도시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도시답게 고색창연한 건축물들이 우리를 반긴다.
주요 유적으로 1166년에 건립된 성 트뤼폰 성당과 4.5킬로미터에 달하는 고대 성벽 등이 있고 중세시대의 건물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코토르에서는 꼭 요새의 성벽에 올라 코토르 만 전체를 내려다보아야 한다고 들었지만 엊그제 산토리니에서 580 계단을 내려온 후유증이 되살아나 포기하기로 했다. 젊을 때 같으면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되지만 지금 우리 나이는 자신의 몸 상태와 잘 타협해야 한다. 어디로 갈까 두리번거리는 우리에게 택시 운전사가 접근해 성벽에서 보는 것 이상으로 아름다운 여러 군데의 뷰포인트로 데려다준다며 코토르 지도를 펼치며 설득한다. 우리가 선뜻 결정하지 않으니 100유로를 80유로로 깎아 준다며 돈은 관광 후 달라고 한다. 그 말이 믿음직스러워 택시 투어를 하기로 한다. 역시 잘한 결정이다. 산길을 구불구불 달리다 세워준 곳에서 내려다보니 탄성이 저절로 나온다. 코토르만의 에메랄드빛 바다와 구시가의 붉은 지붕, 몬테네그로의 상징인 검은 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영국의 시인 바이런이 왜 코토르만을 보고 ‘육지와 바다의 가장 아름다운 만남’이라고 노래했는지, 왜 많은 유럽인들이 몬테네그로를 ‘유럽의 흑진주’ 라 칭하는지 알 것 같다. 1979년에 일어난 대지진으로 50프로 이상의 건축물이 파괴되었다는데 나머지 50프로가 있었던 시기에는 얼마나 더 아름다운 불가사의한 건축물들이 있었을까 궁금하다. 역사 속의 수많은 칩입을 견디면서도 아름다움을 더해가며 살아남은 이 도시와 나는 사랑에 빠진다.
우리 인간 역시 많은 어려움을 통과하며 살아가지 않는가. 내 마음도 이 도시처럼 연륜만큼 아름다움도 쌓여가기를 기도한다. 몬테네그로의 아름다운 코토르만을 마지막으로 동부 지중해 크루즈 여행을 마무리한다.
어제 코토르항을 떠난 크루즈가 7박 8일의 지중해 항해를 마치고 오늘 아침 우리가 떠났던 베네치아 항구에 도착한다. 이른 아침인데도 많은 승객들이 14층 갑판에 모여 밝아오는 일출을 배경으로 서서히 드러나는 베네치아의 아름다운 풍경을 다시 한번 가슴에 새긴다. 군데군데 떠있는 여러 개의 섬마다 붉은 지붕들이 여기가 중세 유럽이었다라고 말해준다. 역사는 도도히 흘러간다는 것도 새삼 깨닫는다.
이번 여행을 통해 여러 도시를 만났고, 여러 사람을 만났다. 또 무엇보다 중요한 나 자신과 만났다. 모든 것이 넉넉지 못했던 유년시절의 나도 만났다. 꿈이 뭔지도 생각지 못하며 훌쩍 지나가버린 나의 청년시절도 만났다, 마음이 옹졸해 많은 시련을 혼자 이겨내려 애썼던 신혼 시절의 나도 만났다. 몸이 아파 병원에 누워있는 동안 어린아이들 걱정이 사무쳤던 나도 만났다. 수입이 일정치 않은 연예인인 남편과 어떻게든 잘 살아내려 아등바등 항상 마음이 바빴던 젊은 시절의 나도 만났다. 아들 둘을 키우며 보람과 성취를 맛보았던 시간의 나도 만났다. 그저 살아내려 꾸준히 공부하려 애쓴 괜찮은 나도 만났다.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상대를 미워하거나 원망하지 않으려는 마음자세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착한 나도 만났다. 지금까지 내가 만났던 나, 어리석기도 했고, 부끄럽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다. 앞으로 만나게 될 나는 지금보다 좀 더 지혜롭고, 너그러운 마음의 소유자가 되어 萬物萬像을 和心應行할 수 있는 나이기를 기도한다. 내가 역사의 흐름 따라 다른 세계로 건너갈 때는 모든 것을 초월한 편안하고 평화로운 마음의 소유자로 갈 수 있기를 기도하며 남편의 손을 잡고 한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남편의 주름진 얼굴에서 나의 주름진 얼굴도 보인다. 함께 손잡고 서로 위로하며 후회 없이 사랑하며 평화롭게 살아가자 다짐하며 멋쩍게 웃는다. 벌써 추억이 되어버린 코발트빛 지중해의 반짝이는 햇살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