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의예지 비육불포(仁義禮智 非肉不布)

by 민정애

건강이 제일이다. 2년 전쯤 대장 내시경을 하며 용종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시경 중에 발견되는 용종은 바로 제거를 한다. 그러나 나는 그 때 제거하지 못했다. 오래전 심장 판막 수술 후 피를 묽게 하는 약을 복용하고 있기에 용종을 제거하다 만약 출혈이 되면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종합병원은 응급상황에 대처할 수 있으니 종합병원에 가서 상담해 보라는 나의 심장 주치의의 의견에 따라 종합병원에 예약을 했다. 작년에 종합병원에서 진찰 받은 결과 용종이 많이 크진 않으니 1년 후에 떼어 내자고 했다. 바로 그 날이 오늘이다.

하루 전부터 해야 하는 대장 비우기는 정말 고역이다. 아무튼 시간 맞추어 병원에 도착했다. 접수원이 읽어보고 사인하라고 내민 서약서에는 수술 중 만약에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 적혀있는데 ‘사망’이라는 단어가 내 눈에 크게 들어온다. 혹시 수면 내시경 중에 깨어나지 못하면? 용종 제거 중에 출혈로 응급상황이 되면? 등 불안한 마음이 엄습해 온다. 만약을 대비해 집안정리라도 해놓을 걸 그랬나, 괜스레 마음이 심란하다. 대기실을 둘러보니 모두 긴장한 상태로 앉아 있는 것 같다. 나는 눈을 감고 마음을 안정시키려 묵상한다. 모든 것이 감사하다. 이 나이 먹도록 살아있는 것도 감사하고, 이런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도 감사하고, 이런 날 같이 와서 손잡아주는 남편도 감사하다. 감사한 마음으로 돌리니 마음이 안정된다. 내 이름이 불려지고 바로 수면으로 들어가 아무 부작용 없이 잘 마쳤다. 병원에서 나오니 구름한 점 없는 청명한 하늘이 나를 반긴다. 늦가을 찬바람을 견디며 아직 피어있는 길가의 이름 모를 작은 꽃들도 오늘은 더 사랑스럽다.

내 나이 70 이지만 하고 싶은 일,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재미있는 일도 많고 이제야 나답게 살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는데 몸이 아프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지 아니한가. 다 아는 이야기 이지만 건강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 번 깨닫는 시간이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몸의 여기저기가 불편해지는 것은 기정 사실이다. 오늘 나는 수면 마취에서 깨어났고 출혈 없이 용종제거를 잘 했지만 또 갈 곳이 많다. 치과, 이비인후과, 안과, 정형외과 등 손볼 곳이 자꾸 생기는데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미루면 병을 키우는 줄 알면서 미련을 떨고 있다. 다음 주에는 차례차례 병원 나들이를 해야겠다.

‘죽음보다는 추한 삶을 더 두려워해야 한다.’는 베르돌트 부레히트의 말을 다시한 번 새겨본다. 누구나 평안하고 아름다운 노년을 원하지만 건강하지 않은 노년은 평안할 수도, 아름다울 수도 없다. 정신과 육체가 힘께 건강해야 온전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지적으로 도덕적으로 정신함양은 할 수 있겠지만 육체는 그렇지 않다. 인의예지 비육불포(仁義禮智 非肉不布)라는 말씀이 떠오른다. 어짐과 옳음과 예의와 지혜를 갖추었어도 육체가 없으면 펼칠 수 없다는 이 말씀을 깊이 새기며 영육(靈肉)이 합덕(合德)될 수 있는 마음가짐으로 죽는 날까지 수양(修養)할 것을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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