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의 시대

by 민정애

복지관에서 다음 주부터 대면 수업이 시작된다는 연락이 왔다.

드디어 2년 반 동안의 코로나 거리두기가 끝나는 모양이다. 제발 코로나 바이러스가 이대로 종식됐으면 좋으련만 아직도 미래는 불투명하다. 그동안 우리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혼돈의 시간을 보냈다.

몇몇 클래스는 줌 미팅을 통한 수업으로 대치됐지만 대부분의 연세 드신 회원 분 들은 적응하지 못하고 쉬는 것을 택했다.

그동안 당연한 듯 다녔던 복지관이 얼마나 우리에게 귀한 장소였는지 새삼 깨닫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으로 인해 일상생활이 비대면을 지향해 설계되고, 모든 것이 빠르게 디지털화되었다. 이에 적응하지 못한 층은 자연히 고립되고 외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요즘 나는 영국의 경제학자 ‘노리나 허츠’의 신작 ‘고립의 시대’라는 제목의 책을 읽고 있다. 이 책에는 외로움이 얼마나 위험한지 또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공동체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일깨워준다.

흥미로운 예가 있다. 일본에서 지난 20년 동안 65세 이상 노령층의 범죄건수가 4배로 급증했다고 한다. 또 그들은 5년 내에 재범을 저지를 확률이 70%나 된다고 한다. 그 이유는 외로움 때문에 교도소란 공동체를 택한다는 것이다. 믿어지지 않지만 엄연한 사실이란다.

또 이 책에는 높은 빈곤율을 경험하고 있는 한국의 노년층이 외로움을 극복하는 장으로 찾는 콜라텍을 예로 들었다.

영국 작가의 자료 정보도 대단하단 생각이 든다.

콜라텍의 분위기, 입장료 등이 자세히 설명되어 있는데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작가는 콜라텍을 빈곤한 한국 노년층의 구명줄이라고 까지 표현했다.

그만큼 외로움이 수명을 단축시킨다는 것이다.

외로운 마음의 상태로 살다 보면 자연히 건강상태도 나빠진다는 과학적 보고도 있다.

“스트레스를 경험할 때 외로운 신체는 외롭지 않은 신체보다 콜레스테롤 수치가 빨리 증가한다. 혈압 상승도 가파르다.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가 순식간에 오른다. 더욱이 만성적으로 외로운 몸은 장기간에 걸쳐 혈압과 콜레스테롤의 순간적 증가분이 축척되어 편도체가 위험신호를 훨씬 오래 보낸다. 이는 백혈구를 증가시키고 염증을 초래하여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에서 순간적으로 강력한 힘을 낼 수 있게 한다. 하지만 이 상태가 장기간 유지되면 부작용으로 몸이 많이 상한다. 외로움으로 인해 만성적인 염증을 앓는 신체는 면역계가 과로에 시달리는 바람에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다.

그 결과 정상적인 상태였더라면 예사롭게 이겨냈을 감기나 독감 편도선염 따위에 취약하다.

외로운 신체는 심각한 질병에도 취약해서 관상동맥 질환에 걸릴 확률은 29%, 뇌졸중에 걸릴 확률은 32%, 임상적 치매로 진단될 확률은 64% 높다. 외롭다거나 사회적으로 고립되었다고 느끼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조기 사망의 위험이 거의 30%나 높다.”


이런 결과로 ‘외로움의 경제’가 눈부시게 발전한다고 한다. 외로움을 달래줄 인공지능 로봇들이 줄지어 출시되고, 미국에는 시간당 40불에 친구를 빌릴 수 있는 사이트가 성업 중이라고 한다. 또 영국에서는 외로움의 문제가 너무 심각해서 2018년에 총리가 외로움부 장관(minister for loneliness)을 임명했다고 한다.

책의 마지막에 이렇게 쓰여 있다.

“우리는 여유를 갖고 걸음을 멈추어 더 대화할 필요가 있다. 그 상대는 이따금 서로 지나치지만 한 번도 말을 걸진 않았던 이웃이어도 좋고, 길을 잃은 낯선 사람이어도 좋고, 외로워 보이는 누군가여도 좋다. 일이 너무 많고 바쁠 때라도 말이다. 결국 우리가 진정으로 찾는 것은 우리가 무언가의 일부로 느껴지는 곳, 우리가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어떤 곳이다.

외로운 세기의 해독제는 궁극적으로 우리가 서로를 위해 있어 주는 것일 수밖에 없다. 상대가 누구라도 상관없이 말이다. 흩어져가는 세계에서 우리가 하나가 되고자 한다면 이것은 최소한의 요구다.”


나는 복지관에서 글쓰기 수업을 맡고 있다.

이 교실이 단순히 글쓰기의 요령을 배우는 곳이 아닌 좀 더 의미 있는 노년을 보낼 수 있는 소통의 장이 되길 바란다. 자칫 무료하기 쉬운 어른들이 자신의 스토리를 글로 옮김으로써 그동안의 삶을 돌아볼 수 있고 지적 자극을 받으므로 자존감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이 교실에 소속돼 있는 것만으로도 이 시대의 화두인 외로움을 극복하고 생각의 지평을 넓힐 수 있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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