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드레스 입고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꿈을 오늘 이루었다. 합창단에 가입한 지 5개월 만이다. 그 무대 위에서 나는 뜻밖에 초등학생 때인 나를 만났다. 하얀 주름치마에 빨간 블라우스를 입고 있는 꼬마,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떨리는 마음으로 합창 경연 무대에 서 있었던 귀여운 소녀. 60년 만에 그 아이에게 말을 건넨다.
‘참으로 오랜만이구나. 여기까지 잘 왔다. 그동안 살아내느라 수고 많았다.’
코끝이 찡해온다. 나는 초등학생 때 합창단이었고 중학교 때는 합창단에 소프라노 파트장이었다. 물론 고등학교 때도 음악 시간이 제일 좋았다. 그러나 나의 음악 사랑을 가족에게도 공개한 적이 없다. 부모님도 내가 하고 싶은 게 무언지 물어본 적 없었고 나 역시 부모님께 음악 공부를 하고 싶다는 말은 안 했다. 그때는 그랬다. 내가 태어난 해는 한국전쟁 직후인 1953년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 초등학교 선생님이셨던 아버지의 박봉으로 우리 6남매를 키우셨으니 배곯지 않고 기본 교육을 받은 것만도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봄 산책길에서 내 가슴을 다시 뛰게 만드는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용인시 더 플러스 합창단원 모집’이라고 쓰여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그 자리에서 전화를 했다. 총무라는 분이 친절히 안내해주며 오디션 날짜를 알려준다. 떨리는 마음으로 오디션에 임했다. 평상시 자주 부르는 곡인 ‘내 맘에 강물’ 이란 제목의 노래를 불렀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입회원서에 원하는 파트를 소프라노라고 썼는데 소프라노 음이 나오질 않는다. 몇 번의 기회가 더 주어졌으나 지휘자가 원하는 높이의 음까지 도달하지 못했다. 그동안 틈틈이 문화센터 성악반에서도 공부했고 재즈 보컬반 수강도 했는데 코로나 이후 나의 노래 공부는 중지되었다. 3년 만에 다시 시작하려는데 그동안 내 목소리도 나이와 함께 기능이 떨어졌다는 것을 실감했다. 결국 나에게 주어진 파트는 엘토이다. 오디션에 떨어지지 않은 것만으로 감사했지만 안 해본 엘토를 하려니 새로운 노래를 배울 때마다 많이 어려웠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엘토의 매력도 알게 되었다. 합창에서 기본은 엘토라고 한다. 엘토가 밑에서 잘 받쳐주어야 안정된 하모니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지휘자의 말씀이 나를 위로한다. 내 목소리에 맞는 엘토 파트에서 안정적인 목소리를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잠시 생각해 본다. 억지로 예쁜 목소리 내려고 애쓰지 말고 평상시에도 안정된 마음으로 나쁜 말(남의 흉 등)은 내 입으로 하지 말며 좋은 말(희망적인 말, 남의 칭찬 등), 만 한다면 나는 아름다운 노래를 계속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오늘 공연은 경기도에 있는 목회자를 위한 힐링 음악회에 참가한 것이다. 우리의 노래로 코로나 기간 동안 힘들었던 목사님들에게 조금의 위안이라도 전할 수 있었다는 것이 나를 기쁘게 한다.
60년 만에 다시 찾은 어린 시절의 나의 꿈. 나의 오랜 꿈이 피어 아름다운 단풍으로 넘실대며 죽는 날까지 노래하는 것이 허락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