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73번째 생일이다.
큰 아들네는 미국에 살고, 작은 아들은 코로나에 걸려 격리 중. 고로 이 번 남편 생일은 우리 둘만이 오붓이 지내게 됐다.
돌아가신 시어머니가 생각난다. 시어머니 살아계실 때는 남편 생일 며칠 전부터 전화하셔서 ‘내가 뭐를 해 갈 테니 너를 뭐를 해라’는 등 나에게 은근히 남편 생일 잘 챙기라는 압력을 넣었다. 때로는 남편과 둘이 오붓이 멋진 장소에서 보내고도 싶었다. 그러나 항상 어머니가 먼저 챙기니 어쩔 수 없이 남편의 생일상 준비는 항상 내 몫이었다. 나는 그 일을 교훈 삼아 아들 며느리 생일은 챙기지 않는다. 자기들끼리 멋진 파티를 하든 말든 시어머니가 거기에 밤 놔라 배 놔라는 안 하고 싶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크게 불편하진 않았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며느리인 내 생일은 돌아가실 때까지 한 번도 안 챙겨 주셨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 와서 시어머니에게 섭섭함을 얘기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 시대는 그게 당연한 일이라고 믿었으니까.
얼마 전 호주 원주민인 오스틀로이드 부족(참사람 부족인)이 문명인에게 보내는 메시지인 ‘무탄트 메시지’라는 책에서 읽은 생일 축하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한번 상기한다.
이 책의 저자인 자연치유 의사인 ‘말로 모건’이 원주민들과 생일 축하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중 원주민이 의아하다는 듯 한 말이다.
‘축하란 특별한 일이 있을 때 하는 건데 나이를 먹는 것이 무슨 특별한 일이라 도 된다는 말인가요? 나이를 먹는 데는 아무런 노력도 들지 않아요. 나이는 그냥 저절로 먹는 겁니다. 우리는 나아지는 걸 축하합니다. 작년보다 올해 더 훌륭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었으면 그걸 축하하는 겁니다. 하지만 그건 자기만이 알 수 있는 겁니다. 따라서 파티를 열어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뿐이지요.'
이 글을 다시 한번 생각한다. 나는 작년보다 올해 나아졌는가? 나이 들어가는 사람이 나아지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건강도 작년보다 못하고 경제력도 작년보다 못할 수밖에 없지만 마음씀은 좀 더 나아질 수 있을 것이다. 좀 더 너그러워져야 하고 좀 더 지혜로워야 한다. 그러려면 욕심에서 생기는 불평불만을 알아차리고 자기 아집에서 벗어나야 한다. 내 것만 옳다고 주장하는 우를 범하면 안 된다.
다시 한번 다짐한다. 어제보다 오늘 좀 더 넓은 마음, 안정된 마음으로 매사 지혜롭게 임할 것을.
오늘 남편의 생일은 젊었을 때 바랬던 오붓한 시간이다. 아직 내 손으로 미역국 끓여 줄 수 있으니 행복하고 나의 정성을 고맙게 받아주는 건강한 남편이 있어 행복하다. 오후에는 영화 한 편 보러 가기로 한다.
시어머니 계셨더라면 푸짐한 생일상을 받았을 우리 남편, 오늘 괜히 측은해 보인다. 남편에게 건네 본다. 우리는 자식에게 생일상이나 바라는 ‘늙은이’가 되지 말고 자식들을 따뜻한 마음으로 포용할 수 있는 지혜로운 ‘어른’이 되자고.
오늘 시어머니 생각이 많이 난다. 남편을 끔찍이 생각했던 어른이시다. 시어머니에게 효도는 다 못했지만 남편 생일에 남편 낳으시느냐고 수고했다며 선물을 해드렸던 일은 잘 한 일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