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머신 대신 산책
한 달 전, 새 아파트로 이사했다. 이삿짐 정리를 마친 날, 아파트 단지 안에 마련된 피트니스센터가 눈에 들어왔다. 말끔하게 정돈된 공간, 줄지어 선 운동기구들, 그중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러닝머신이었다. 평상시 운동 삼아 걷기를 많이 했기에 앞으로는 이 러닝머신 위에서 규칙적으로 꾸준히 걷기 운동을 해야지 다짐하며 기쁜 마음으로 운동을 시작했다.
욕심이 생겨 속도를 올리고 며칠이 지났을 무렵, 무릎에 이상 신호가 왔다. 아차 싶어 나 자신을 돌아본다. 기계에 맞추어 무심히 걷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똑같은 걸음을 반복하는 내 모습은 어딘가 기계적이고 무표정했다. 내 다리의 컨디션은 생각지 않고 기계가 움직이는 속도에 따라 무리하고 있었다. 생각 없이 걷고 있었으며, 어느새 나 자신도 그 기계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이 아파트로 이사 오기 전, 나는 매일 동네를 산책했다. 내가 사는 용인은 나지막한 산들이 이어져 새로운 계절을 실감할 수 있고, 철 따라 피어나는 꽃들이 반겨주는 산책로에서는 자연의 신비함에 경외심을 느끼기도 한다. 미풍에 흔들리는 나뭇잎, 살며시 고개를 내민 이름 모를 들꽃들, 자연 속을 걷는다는 건 단순한 운동을 넘어선 어떤 신비이다. 귓가를 스치는 바람 소리, 새들의 지저귐, 햇빛이 스며 반짝이는 나뭇잎, 자연은 조용하지만 끊임없이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래서일까, 걷다 보면 문득 오래된 기억이 떠올라 콧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감사한 마음이 저절로 피어올라 세상을 더 많이 사랑하게 된다.
많은 예술가들이 산책 중에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베토벤 또한 빈 근교 시골 마을의 숲을 걸으며 영감을 얻어 그 유명한 전원교향곡을 작곡했다. 이렇듯 자연이 가진 깊이와 고요함은 인간의 내면을 일깨우는 힘이 있다.
지금은 봄이다. 생명이 움트고, 색이 번지는 계절이다. 이런 때에 나는, 무슨 뜻인지도 모른 채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음악 속에서 기계처럼 걷는 대신, 다시 자연으로 나가 산책을 택하려 한다. 내 마음의 깊은 우물을 파기 위해, 그리고 그 우물 속 맑은 물로 나 자신을 비춰보기 위해.
산책 중에 만나는 햇살, 바람, 나무와 꽃, 그리고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모든 것이 나를 감각하게 하고, 그 감각이 생각으로 이어진다. 산책하다 보면 어느새 마음속 이야기가 피어나고, 그 이야기는 사유로 자란다. 반면, 러닝머신은 생각을 멈추게 한다. 텔레비전 화면이나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시끄러운 음악으로 감각을 분산시키고, 생각을 밀어낸다.
누군가에게 들었던 예능과 예술의 차이를 생각해 본다. 예능은 아무 생각 없이 즐기는 일이고, 예술은 생각이 필요하다고. 러닝머신은 예능이고 산책은 예술이라고 하면 맞을까?
나는 생각하고, 사유하고, 느끼고 싶다. 그래서 러닝머신 대신 다시 산책을 택한다. 자연의 리듬을 따라 걷는 그 길 위에서 나는 나를 만나고, 자연을 만나며 세상을 다시 사랑하게 된다.
나는 오늘도 걷는다. 생각하고, 느끼고, 그리고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