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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시간, 아름다운 노래

by 민정애

6월의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말갛다.
눈부시게 펼쳐진 푸른빛은 햇살을 담아 투명하게 반짝이고,
살랑이는 바람은 흐드러진 덩굴장미의 향기를 실어 나른다.

초록 잎새들은 그 향기에 살포시 몸을 맡긴다.

청명한 하늘 아래, 자연은 초 여름이라는 이름으로 노래한다. 현충일 아침,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을 마치고 남편과 나들이를 꿈꿔본다. 미술관으로 갈까, 식물원으로 갈까. 하지만 곧 현실적인 생각이 스친다. 오늘 같은 공휴일에 잘못 나섰다가는 차 막힘에 마음까지 상할지 모른다.

“매일이 휴일인 우리 같은 노인들이 굳이 교통체증에 보탤 일은 없지.”

나의 말에 남편이 고개를 끄덕이며 평일에 다시 나들이하자고 마음을 모은다.


그렇게 느긋한 하루가 시작되려던 찰나, 아들네 가족이 온다는 반가운 전화가 걸려온다. 몸은 분주해지지만 마음은 벌써 웃고 있다. 부엌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경쾌하다. 냉장고 문을 열고 안을 찬찬히 스캔해 본다. 오늘의 메뉴는 월남쌈. 보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다채로운 색깔의 채소들과 함께 훈제오리를 곁들인 건강한 한 끼를 만들자.

파프리카, 오이, 사과, 양파, 적채를 깨끗이 씻고 가지런히 채 썬다. 돌려 담은 접시 안에서 색깔 채소들이 서로의 존재를 빛내듯 조화를 이룬다. 그다음 통마늘, 부추를 넉넉히 넣고 훈제오리를 볶아 접시에 먹음직스럽게 담아 놓는다. 양파, 마늘, 토마토, 새우, 갑오징어를 넣고 올리브유에 볶다가 강황 가루 약간, 우유 넣어 밥과 버무린 다음, 모차렐라 치즈와 파마산 치즈 솔솔 뿌려 레인지에 구우면 엄마표 리조또 완성.

아차, 중요한 월남쌈 쏘~~ 스가 빠졌네. 플레인 요거트에 땅콩잼, 참치액 약간, 꿀, 아차 레몬즙 한 방울. 이렇게 아들 가족을 위한 한 상이 완성된다.


내가 만든 음식을 가족이 함께 둘러앉아 먹는 모습. 이것이 내가 가장 사랑하는 풍경이다. 요리는 여전히 나에게 기쁨이요, 행복이다. 또래 친구들이 하나둘 이젠 밥 하기도 귀찮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요리를 할 때면 마음이 설렌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오늘처럼 야채를 많이 썰고 좀 무리했다 싶으면 목이 뻐근하고 팔도 아프다. 이 번 기회에 힘 안 들이고 썰 수 있는 자동 채칼 하나 장만해야겠다. 그래야 내가 좋아하는 요리를 좀 더 오래 할 수 있을 테니까.


언젠가는 나도 음식 하기 힘들어질 날이 올 것이다. 그날이 오기 전에, 사랑하는 자식들아, 가끔은 이유 없이 엄마 집에 들러다오. 너희가 들어서는 소리에, 나는 벌떡 일어나는 동시에 에너지가 충전되어 다시 냉장고 문을 열고 오늘의 메뉴를 떠올리며 행복의 노래를 부를 것이다.


오늘도 나는 행복한 할머니다. 가족을 위해 요리할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이, 내 인생의 가장 달콤한 시간, 가장 아름다운 노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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