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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시간, 삶을 돌아보는 시간

또 한 학기를 마치며

by 민정애

노인복지관에서 어르신들과 함께 수필 쓰기를 시작한 지도 어느덧 오랜 시간이 흘렀다. 60대 중반에 이 교실을 맡았고 어느덧 나이 일흔이 넘고도 또 몇 해가 지났다. 이 교실은 내가 가르친다기보다 배우는 자리이다. 70대, 80대 어르신들이 대부분인 우리 글쓰기반은, 살아온 길은 달라도 마음은 하나같다.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 마음에만 담아두었던 사연들을 글로 풀어내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고, 위로한다. 글을 쓴다는 건 지나온 삶을 찬찬히 되짚는 일, 앞으로의 삶을 더 의미 있게 만드는 일이다. 말보다 더 솔직한 마음이 문장으로 옮겨지는 시간은 단순히 글을 쓰는 시간이 아니라, 삶을 마주하고 성찰하는 시간이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었다. 이번 학기 종강을 맞아 뜻깊은 만남을 준비했다.

‘쓸수록 돈이 된다’ ‘나는 죽을 때까지 지적으로 살고 싶다’ '부의 품격'등의 저자, 양원근 작가님을 초청해 강연을 들었다. SNS를 통해 조심스레 연락드렸고, 바쁘신 와중에도 조건 없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우리 교실에 와 주셨다.

“이렇게 연세가 높으신 분들이 책 읽기와 글쓰기에 관심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많은 강연을 다니지만 이런 자리는 처음입니다."라는 작가님의 말처럼, 이 자리는 그에게도, 우리에게도 잊지 못할 시간이었을 것이다.

책의 저자로서 또 오랫동안 해온 출판 기획자로서의 경험을 진솔하게 들려주셨다.


강연이 끝난 후엔 각자의 책에 사인도 받고, 다정한 인사를 나누며 웃음꽃이 피었다. 사인을 받기 위해 줄을 선 어르신들의 모습은, 마치 오래전 문학소녀, 소년 같아 정겹기 그지없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참으로 흐뭇하고 따뜻했다. 아마 작가님도 그런 모습을 통해 저자로서의 보람과 새로운 자극을 받으셨으리라.


오늘 이 시간을 계기로 나 자신도 더 많이 배워야겠다고 다짐했다. 단지 가르치는 사람이 아닌, 함께 배우는 사람으로, 우리 어른 학생들에게 더 좋은 영향력을 줄 수 있는 길을 찾고 싶다. 초고령사회로 접어든 지금, 여생을 조금 더 의미 있게 보내기 위해서 글쓰기만큼 소중한 활동은 없다고 믿는다. 글을 쓴다는 건 자신을 돌아보고, 스스로의 삶을 증명해 내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생물학자이면서 많은 책을 쓰신 최재천 교수는 “세상의 모든 일은 결국 글쓰기로 판단된다”라고 말했다. 우리 어르신들도 글을 통해 말로 다 못했던 인생의 장면들을 써 내려가며 자신을 드러내고, 삶의 의미를 다시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 누구의 삶도 사소하지 않다. 우리는 지금, 그 사소하지 않은 삶을 글로 남기고 있다. 그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오늘 하루를 통해 모두가 가슴 깊이 느꼈을 것이다.


우리 어르신들이 살아온 삶은, 그 자체로 이미 한 편의 수필이고, 때론 장편소설이며, 어떤 날은 시(詩)처럼 아름답다. 이제는 그 이야기를 글로 써 내려갈 차례다. 말로 다 하지 못한 마음들을 조심스레 꺼내며, 자신을 증명하는 그 용기 있는 여정을 나는 함께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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