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며 피는 꽃

by 민정애

내가 결혼할 때의 꿈은 그저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 알뜰하게 쓰며 살림 잘하는 주부였다.

그러나 그 꿈은 신혼 초부터 이루기 어려울 것 같은 조짐이 보였다.

탤런트라는 직업. 항상 배역이 주어지기를 기다려야 하는 인내심 없이는 결코 할 수 없는 직업이다. 본인들이야 천직으로 알고 기다린다지만 아내들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20대에 사랑 하나면 어떤 어려움이라도 헤쳐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던 나의 오만과 탤런트의 아내가 된다는 허영심이 결혼이라는 현실 앞에 보기 좋게 무너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부모가 된다는 첫 번째 책임인 경제적인 보장 없이 연년생으로 아들 둘을 낳았다. 거기에 더 큰 부담이었던 것은 주위의 시선이었다. 탤런트는 보통 사람보다 화려하게 살 거라는 사람들의 이목 때문에 본의 아니게 가면을 써야 할 때도 많았다. 없으면서도 있는 척하고 행복하지 않으면서 행복한 척해야 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따라주지 않으니 누구에게 말은 못 하고, 그런 생활을 계속하다 보니 낙천적이라고 믿고 있던 나의 성격이 우울해지고 주위 사람들에겐 우울하게 보이고 싶진 않고, 그러던 어느 날부터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어느 날밤 잠을 자는데 갑자기 숨이 차서 견딜 수 없었다. 이튼 날 아침 일찍 동네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으니 심장에 이상이 있는 것 같으니 큰 병원으로 가보라는 의사의 권유에 따라 그날로 바로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하여 정밀 검사를 받은 결과 대동맥 판막 폐쇄 부전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수술 성공을 장담 못하는 의사의 말을 뒤로하고 시어머니의 권유로 정신수 양하는 단체인 성덕도에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모든 병의 원인은 자기의 못난 성질에서 오는 것이니 병을 고치기에 앞서 마음을 착하게 고치면 병을 저절로 낫는다는 원리를 공부하는 곳이다. 그때부터 나는 가면을 벗고 진솔하게, 정말로 참된 인간으로 살기 위해 노력했다. 그 후로 20년 넘도록 나는 마음 닦는 공부를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착하지 못한 내 마음 때문에 고생할 때가 많으니 인간의 마음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새삼 깨닫게 된다.


부부란 무엇인가?


부족한 부분을 헐뜯고 원망하는 관계가 아닌 보완해 줄 수 있는 관계일 것이다. 역시 탤런트라는 직업을 보완해 줄 수 있는 것은 첫째 아내의 경제능력이다. 남편이 배역이 없을 때도 조바심 내지 않아도 될 정도의 경제력 말이다. 흔히 탤런트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화려한 직업으로 젊은이들에게 인기 있는 직업이다. 물론 탤런트라는 직업을 통해 보통사람들이 상상하기 어려운 큰돈을 버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숫자가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남편 주위에는 많은 선후배 동료들이 몇 개월, 심지어 몇 년 동안 배역이 없어 고생하는 분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나는 한 때 월급쟁이 남편을 둔 친구들이 부러웠다. 그러나 꼬박꼬박 돈 잘 벌어다 주는 남편하고 살았다면 자기 계발은 하지 못했을 거란 생각으로 자위한다. 나는 현재의 내게 만족한다. 나에겐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이 있고 자기 일을 천직으로 아는 남편이 있다. 나는 남편이 배역이 없을 때 이런 말로 위로한다.


“당신은 한 우물만 팠으니 머지않아 맑은 샘물이 펑펑 솟을 거야.”라고


그러나 설령 샘물이 솟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제는 조바심 내지 않을 정도의 수양은 된 것 같다. 남편을 돕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성장했다. 나는 오늘도 캐나다 출장을 준비하며 남편에게 사랑한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물론 그동안 어려운 일도 많았지만 굳이 나열하고 싶지 않다. 모두가 내가 겪어내야 할 과정이라고 믿기에.


문득 시인 도종환의 ‘흔들리며 피는 꽃’ 이란 시가 떠오른다.

흔들리며 피는 꽃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네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었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나 역시 그동안 살아오면서 많은 비바람에 흔들렸지만 꺾이지 않으려 노력했다. 우리가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고귀하면서도 두려운 일인가. 내 생이 다 하는 날까지 착하게 착하게 마음 닦으며 내 생이 다 하는 날 나의 아름다운 마음의 향기에 취해 내 생이 진정 아름다웠노라고 말하고 싶다.(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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