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에서 열리는 도자기 박람회에 가기 위해 대절해 놓은 관광버스에 올랐다. 도자기 박람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접하고 가보고 싶었지만 혼자 선뜻 나서지 못했었는데 주민센터에서 자원봉사하는 주민자치위원들과 문화센터 강사들을 초청해 주어 기쁜 마음으로 문화의 허기를 채우려 나섰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가을 풍경은 대자연의 오묘함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 주었다. 세상은 온통 미국의 테러 사건으로 시끄러운데 자연은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할 뿐이었다. 산등성이는 어느새 빨강 노랑 점을 찍기 시작했고 길가의 코스모스는 무표정한 도시인들에게 밝게 웃는 표정을 열심히 가르쳐주고 있었다.
박람회장에 도착하기 전 이천에 있는 맥주 공장을 견학했다. 평상시 맥주를 좋아하지 않아 별 관심은 없었지만 최신 설비로 맥주가 만들어지는 것을 보니 신기하기만 했다. 고대 이집트의 바빌로니아에서 만들었던 보리술에서 유래했다는 맥주는 라틴어의 마신다 라는 뜻인 비베레(bibere)가 어원으로 독일에서는 비르(bier) 프랑스에서는 비에르(biere) 이태리에서는 비라(birra) 미국에서는 비어(beer)라고 한단다. 이름들이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생산라인을 돌아보며 안내원의 설명을 들었다. 원형의 커다란 통들이 가득 들어 있는 곳이 숙성실이라고 했다. 맥주가 만들어지는 과정 중에 일정기간 숙성을 거쳐야 맥주 특유의 깊은 맛을 낼 수 있는데 그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는 안내원의 설명을 들으며 나는 생각했다. 숙성이라는 과정, 우리 인간에게도 얼마나 중요한 과정인가, 인간도 예술도 모두 숙성기간이 필요할진대 나 자신은 진득하게 숙성되기 전에 아무 데나 미리 나서지 않았는지 반성해 보았다.
내가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완전한 인간이 되기 위한 숙성 기간이라면 오늘 하루, 아니 순간순간이 얼마나 중요하고 소중한 시간인지 다시 한번 깨달아졌다. 또 그 과정이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군말 없이 참아 내리라 다짐도 해 보았다.
맥주 공장 견학을 마치고 이천 도자기 박람회장에 도착했다. 청아한 가을바람에 흩날리는 문화의 향기가 코끝을 간지렀다. 세계 도자 문명전을 둘러보며 시공을 넘어 도예 세계로의 여행을 시작했다. 동서양을 아우르는 세계 도자 문명의 일만 년 발자취를 따라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도자에 대해선 문외한이지만 작품 하나하나를 보면서 장인들의 숨결이 느껴졌다. 문외한의 눈으로도 각 나라의 작품마다 그 나라 특유의 취향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세계 도자사를 주도했던 ‘한 중 일 도자 교류의 역사 조명’이란 타이틀로 전시해 놓은 동북아 도자 교류전을 비롯해서 현대 생활 도자기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특히 세계 69개국의 도자인들이 응모하여 미와 창의력을 겨룬 작품 중에서 대상을 수상한 나이지리아 작가 로만 오예 칸의 ‘치유하는 존재’라는 작품 앞에 서니 가슴이 뭉클해지며 마음이 숙연해짐을 느꼈다. 적토를 사용해 손 성형으로 만든 대작으로 수많은 상처가 아무는 과정을 형상화해놓은 거대한 항아리 모양이었는데 “어둠 속에 비치는 한 줄기 빛처럼 끊임없는 질의와 이해는 경험의 상처로부터 우리를 아물게 한다. 궁극적으로 나의 작품을 통해 이와 같은 과정을 이루고자 한다.” 는 작가의 짧은 멘트에 그의 예술인생이 모두 녹아 있는 듯했다. 정말 흔히 하는 말인 줄 알았던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말이 절실히 가슴에 와닿았다. 작가는 온전한 작품 한 점을 남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인내와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가. 우리 인생 또한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와 희로애락을 거쳐 인생의 종착역에 안전하게 닿을 것인가. 내 나이 어느새 마흔아홉, 이제 모든 것에 대한 집착쯤은 떨쳐 버리고 싶다. “모든 것을 소유하고 싶은 사람은 어떤 것도 소유하지 않아야 하며 모든 것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것도 되지 않아야 한다.”는 어느 시인의 말뜻을 이제는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다.
전시장에서 나와 전통 가마에 불을 지피는 것을 보았다. 밤낮으로 계속 열하루 동안 불을 지펴야 한다고 작가 분이 말씀해 주셨다. 자기 고유의 빛을 발하는 도자기와 거친 토기와의 차이는 뜨거운 가마에 들어갔던 것과 안 들어간 것의 차이이며 들어갔다 하더라도 그 과정을 이겨내지 못하고 모양이 일그러진 것은 작품으로서의 가치가 전혀 없다고 했다. 그 작가 분의 설명을 듣고 나오며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았다. 그동안 나는 가치 있는 인간이 되기 위한 나의 가마 안에서 때로는 온도가 높다고 때로는 낮다고 얼마나 불평을 했는가. 나는 다짐했다. 우리의 인생행로가 뜨거운 불가마 일지라도 나는 묵묵한 마음으로 참아 내리라. 그리고 그 속에서 참고 인내하며 숙성시키리라. 나만의 고유한 빛을 발하기 위해.
가득 채워진 문화의 배낭을 마음속에 소중히 끌어안고 돌아오는 버스에 올라앉았다. 차창 밖으로는 주홍빛 노을이 이제 여물기 시작하는 들녘으로 조용히 내리고 있었다. 내 눈앞에 펼쳐진 모든 광경이 사랑스럽기 그지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