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여행

by 민정애

추석 차례를 지내고 친지들 모두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올해는 추석 연휴가 9일이나 되었다.

남편이 이번 추석 연휴에는 남도 지방을 돌아보자고 제안했다.

아무 계획 없이 갑자기 집을 떠났다.

첫날은 전북 장수에 있는 리조트에 짐을 풀었다. 파란 잔디 위로 고운 단풍잎들이 날리며 온 몸으로 가을을 느끼게 해 준다. 저녁으로 지역 특산물인 한우구이와 육회 냉면을 먹었다. 평소 육회를 못 먹었는데 특산물 이라 하니 시켰지만 냉면 위에 얹어진 육회는 식감이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 이튿날은 통영에 가서 그곳에 가면 꼭 먹어야 한다는 멍게 비빔밥집을 인터넷 검색으로 찾아갔는데 역시 유명한 집답게 많은 손님으로 북적댔다. 유명한 집만큼 이름값은 못하는 집이었다. 서비스가 엉망이었다. 주차하는데만 한참 시간이 걸렸고 그 복잡한 주차장에 안내원 한 명이 없었다. 다시는 인터넷 검색으로 유명한 집은 오지 말자는 교훈을 얻고 멍게 비빔밥을 먹으려고 낭비한 시간을 아까워하며 한 번쯤은 가보고 싶었던 외도로 향했다. 역시 휴일이라 인산인해였다. 교사 부부가 무인도를 오랜 기간 동안 공들여 개발해 놓은 곳답게 잘 가꾸어져 있었다. 우리나라는 참 아름다운 곳도 많지만 이름 붙은 날엔 몰리는 사람들 때문에 여행의 참맛을 느끼지 못하기 일수다. 여행은 일상을 벗어나 한적한 곳에서 나만의 생각을 사유할 수 있고 잃어버린 나 자신을 찾을 수 있는 시간일 것이다. 그런데 너무 많은 관광객과 섬이라는 특성상 돌아가는 배 시간이 정해져 있어 나를 돌아볼 시간은커녕 아름다운 경치조차 제대로 감상할 수 없었다는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튿날 부산으로 가 하루 쉬고 포항 구룡포를 지나 우리나라 지도의 호랑이 꼬리인 최동단 호미곶에 도착했다. 호미곶에 설치되어 있는 조각품 ‘상생의 손’을 배경으로 떠오르는 일출을 맞이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발길 닿는 곳으로 가자,라고 생각하고 떠난 여행이라 숙소를 예약하지 않은 것이 문제가 될 줄이야. 연휴가 길어서인지 방이 없었다. 인터넷을 뒤지고 전화를 걸어 봐도 빈 방이 없단다. 할 수 없이 찜질방에서 자기로 했다. 하룻밤쯤이야 찜질방이면 어떠랴 샤워도 편히 하고 오히려 잘됐다 하고 찜질방에 들어가 샤워할 때 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잠을 청하려고 수면실에 누었는데 여러 사람이다 보니 코 고는 사람, 방귀 뀌는 사람, 잠꼬대하는 사람, 우는 아기, 왔다 갔다 하는 사람 등 도무지 잠을 이룰 수가 없어 뒤척이는데 갑자기 배가 아프기 시작한다. 낮에 부산의 자갈치 시장에서 먹은 회 때문인지 몇 번 화장실을 다녀왔는데 이번에는 머리까지 아파 도무지 견딜 수가 없다. 할 수 없이 옆에서 잠든 남편을 깨워 집에 가자고 재촉했다.

놀란 남편이 주섬주섬 짐을 챙겨 차에 올랐다. 호미곶에서의 일출도 포기했다. 며칠 더 남은 여행 일정에는 북 스테이를 돌아볼 예정이었는데 이번 여행은 여기서 끝이다. 몸이 아프니 모든 것이 멈춰진다. 세상만사가 내 뜻대로 안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우친다.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의 뜻대로 맡기는 수밖에. 나이가 드니 내 몸이 시키는 대로 내 몸의 말을 잘 들어야겠다. 그게 자연에 순응하는 삶일 것이다.

일상을 벗어나 한적한 곳에서 남편과 오붓한 시간을 공유하고 우리가 함께 살아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를 생각하며 천천히 사유하고 싶어 떠난 여행이었는데, 지난 며칠을 되돌아보니 가는 곳마다 많은 인파에 떠밀리고 시간에 쫓겼다. 마지막 코스였던 북 스테이도 들르지 못하고 돌아가며 많은 생각을 했다. 물리적으로 복잡한 가운데서도 내 마음의 내면을 평화롭게 유지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을 그저 먹고 자동차 타고 또 먹고 또 타고 그러니 배탈이 날 수밖에, 나이가 든다는 것은 모든 것을 자제하고 신중해야 한다는 것을 실감케 해준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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