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으로 11월 2일 겨울의 한 복판이 우리 친정엄마의 생신이다. 생신 때마다 항상 눈이 많이 오고 날씨가 너무 추어 움직이기가 쉽지 않았다. 이번은 엄마의 88번째 생신으로 우리 네 자매가 2박 3일 일정을 잡아 변산으로 여행을 떠났다. 아버지 돌아가셨던 해에 엄마를 위로해드리기 위해 강원도로 여행을 갔다 오며 앞으로는 자주 엄마와 여행을 하자고 약속했었는데 어느새 8년이란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한 해 한 해 달라지시는 엄마와의 여행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우리 네 자매가 시간을 맞추었다.
떠나는 날 눈이 올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날씨가 좋았다. 격포항에서 곰소항으로 이어지는 해안도로를 따라 드라이브를 하며 서해안의 아름다운 저녁 풍경을 만끽했다. 곰소항의 어시장에 들러 제철이라는 숭어회와 굴, 바지락을 사서 콘도에 돌아왔다. 이튿날 아침 변산 8경 중 하나인 채석강에 갔다. 중국의 당나라 때 이태백이 술에 취해 강물에 뜬 달을 잡으려다 빠져 죽었다는 곳이 채석강인데 그곳과 비슷하여 채석강이란 이름이 붙여졌단다. 편마암 화강암 등이 층층이 쌓인 지층으로 바닷물이 침식되어 시루떡을 켜켜이 쌓아 놓은 것 같은 모양을 볼 수 있었다. 안내문을 보니 7000만 년 전부터 이루어진 것이라고 한다. 7000만 년 세월의 흐름이 고스란히 간직된 채석강을 바라보니 63년을 살아온 나의 마음에는 어떤 모양의 화강암 편마암 등이 층층이 쌓여 있는지 잠시 생각해 보았다. 세월을 간직한 자연은 거짓이 없다. 내 마음도 자연처럼 나에게 다가오는 모든 일들을 묵묵히 받아내며 내 안에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하고 싶어 진다. 그다음 코스로 600년 고찰 내소사로 향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입구에 들어서니 아름다운 길 100선 중에 하나라는 전나무 숲길이 한겨울에도 푸른 잎으로 우리를 반긴다. 변산 8경 중 하나인 소사모종은 내소사의 은은한 저녁 종소리와 어우러지는 울창한 전나무 숲이라고 하는 말이 실감 났다. 포근한 산에 안겨 소박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내소사를 찬찬히 둘러보며 내 마음의 안정을 찾아본다. 콘도로 돌아와 저녁밥을 먹은 후 둘째 언니와 함께 콘도 주변을 산책했다. 겨울밤 공기가 차가웠지만 철석이는 파도소리가 우리의 가슴에 온기를 채워줬다. 노래하기를 나만큼 좋아하는 언니와 함께 가곡 ‘가고파’를 시작으로 몇 곡을 이어 불렀다. 날씨가 흐린 탓에 채석강으로 떨어지는 달빛이 없고 언제나 마음의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밤하늘의 별을 볼 수 없는 것이 아쉬웠지만 우리의 노랫소리가 별 빛이 되어 그리운 사람에게 다가가기를 기대해 본다. 마지막 날 아침 우리 네 자매 모두 함께 부안 마실길이라고 이름 지어진 길을 따라 후박나무 군락지를 지나 수성당까지 가보았다. 날씨는 차가웠지만 볼에 닿는 알싸한 공기가 신선했다. 길옆의 노지에는 아직 푸른 잎을 간직하고 있는 갓이 납작 엎드려 찬바람을 견디고 있는 모습이 대견했다. 봄에는 그곳에 유채꽃이 만발한다고 하니 그 모습 또한 장관이리라. 유채꽃이 피는 따뜻한 봄날 엄마와 함께 다시 이 길을 걷고 싶다.
“수성당은 딸 여덟 자매를 낳아 일곱 딸을 팔도에 한 명씩 나누어주고 막내딸만 데리고 살면서 서해바다를 다스렸다는 개양 할머니의 전설이 깃든 곳으로 매년 음력 정월 초사흘에 제사를 올리고 풍어와 무사고를 빌었다고 하며 수성당 주변에서 선사시대 이래 바다에 제사를 지낸 유물을 발견된 점으로 보아 죽막동 제사 유적지임을 확인된 곳이다.”
라고 쓰인 팻말을 보며 우리 엄마를 생각했다. 우리 엄마도 딸 넷을 시집보냈고 지금은 막내딸과 살고 있으니 개양 할머니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리가 불편해 콘도에 남아계신 엄마 생각을 했다. 엄마는 8년 전 아버지 돌아가시고 혼자 시골집을 지키시다 작년에 갑작스러운 화재로 아버지와의 추억이 깃든 정든 집을 잃으셨다. 그 후 며느리보다 딸이 편하다며 막내 딸네 집에서 생활하신다. 날개 없는 천사가 있다면 엄마를 모시는 바로 내 여동생이다. 거짓말 같지만 나는 61살인 내 동생의 불평을 평생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다. 어려운 일이 없냐고 물어보면 그저 미소로 답할 뿐이다. 인생을 살다 보면 왜 불평 나고 심술 날 때가 없을까 만은 항상 평정심으로 살아가며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는 동생이 고맙고 존경스럽다.
이번 여행 중에 한 가지 아쉬운 일이 있다면 엄마가 예전과 많이 달라지셨다는 것이다. 항상 밝은 성격으로 노래하기를 좋아하시고 주위 사람들과 얘기하는 것을 좋아하셨던 엄마였다. 그런데 이 번 여행길에는 말 수가 많이 줄으셨고 즐거운 표정을 많이 안 보여 주신다. 동생에게 물어보니 엄마가 집에서도 그 전만큼 말을 많이 안 하신단다. 아무래도 우울증이 생기신 것 같단다.
엄마의 모습에서 우리의 미래가 보인다. 항상 건강에는 자신 있었던 68세의 큰 언니도 안 아픈 곳이 없다고 한다. 책 읽기를 즐겨하던 65세인 둘째 언니도 요즘은 눈이 뻑뻑해 책을 볼 수가 없단다. 나도 요즘 부쩍 나빠지는 시력 때문에 걱정이다. 이제 독서의 재미를 느끼고 있고 이제 좋아하던 피아노 칠 시간도 많은데... 이런 게 인생인가 보다.
엄마도 딸들과의 이번 여행을 계기로 예전처럼 밝은 마음으로 생활하시길 기대해 본다.
문득 정채봉 님의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 이란 시가 생각난다.
하늘나라에 계시는 엄마가
휴가를 얻어 오신다면
아니 아니 아니 아니
반나절 반시간도 안 된다면
단 5분만 온대도 나는 원이 없겠다.
얼른 엄마 품속으로 들어가
엄마와 눈 맞춤을 하고
젖가슴을 만지고 그리고 한 번이라도
엄마! 하고 소리 내어 불러보고 숨겨놓은
세상사 중 딱 한 가지 억울했던 그 일을
일러바치고 엉엉 울겠다.’
이제는 자식들이 억울한 일 일러바치기에도, 철없던 딸들이 엄마를 한 여자로 한 인간으로 이해할 나이가 된 것도 모두 소용없는 연세가 되신 것 같아 눈물이 난다.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