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

by 민정애

검은색 졸업 가운에 학사모를 쓴 졸업생들이 줄지어 강당으로 들어선다. 비슷비슷한 모습의 학생들 틈에서 나의 첫 손자 지환이를 찾느라 바쁘게 눈동자를 굴린다. 드디어 미소를 띠고 들어서는 손자를 발견한다. 얼른 카메라 셔터를 눌러 스냅 사진 하나를 건진다. 초등학교 졸업인데도 졸업 가운에 학사모까지 씌어 놓으니 대견하기 그지없다.

문득 내가 초등학교 졸업하던 때부터 우리 아들들 졸업식 장면들도 파노라마처럼 떠오르며 세월의 흐름을 실감한다.

졸업식 풍경도 우리 때와는 사뭇 다르다. 졸업생 하나하나를 무대로 불러 그 학생에 어울리는 상을 모든 학생들에게 수여한다. 우리 지환이는 예의상을 받았다. 선생님과 친구들 사이에 예의를 잘 지키는 학생으로 인식되었다는 것은 흐뭇한 일이다.

우리는 살면서 여러 번의 졸업을 한다.

유치원 졸업부터 대학원까지...

그뿐인가 요즘에는 결혼 생활도 졸업을 한다니.

아무튼 졸업은 또 다른 시작, 손자 앞에 펼쳐질 다채로운 앞날이 기대가 된다.

우리의 삶에는 나름의 주기가 있다. 시작이 있으면 과정이 있고 또 언젠가는 끝이 있다. 끝은 끝이 아니고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한다. 어린 손자의 앞날에는 이상과 야망과 어리석음이 동시에 있는 청년기가 올 것이고 그 폭풍 같은 시기의 시행착오를 거치다 보면 어느덧 성숙한 인간이 되는 성년기에 접어들 것이다. 그때는 좀 더 너그럽고 관대하며 성숙한 한 인간으로 삶을 관조하는 여유를 가진 멋진 어른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나도 여러 번의 졸업과 시작을 거듭하며 어느덧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었다.

오늘 문득 내 인생의 마지막 졸업은 언제일까? 내 인생의 졸업식에는 무슨 상이 주어질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노년기에는 어떤 마음을 가지고 인생의 졸업식에 대비해야 할까?

“황혼기에 걸맞은 철학을 발견해서 이에 따라 순응하는 생활을 해 나가면 평화와 안정과 여유와 만족이 어울린 시기가 될 것이다.”

라는 임어당의 ‘생활의 발견’이란 책을 읽으며 공감했던 이 구절이 떠오른다.

나는 다행히 오래전부터 나만의 철학을 공부했다.

‘自性反省 聖德明心 道德經’을 바탕으로 마음 닦는 이치를 배웠기 때문이다.

“人生果報는 내가 지음으로써 내가 받느니라. 내 착함도 自然이 알아주고 내 怨恨도 自然이 풀어 주며 萬事 理致는 事必歸正 이니라.”

라는 말씀을 되새기며 상대를 원망하는 마음을 갖지 않으려 노력했다. 물론 실천을 다 하진 못하고 살지만 즉시즉시 반성하며 적어도 후회상은 받지 말아야지 다짐한다.

상이던 벌이던 내가 짓고 내가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가치는 내가 만드는 것이다. 상을 타도 자랑할 것도 아니고 벌을 받는다 해서 상대를 원망할 필요도 없다. 그러니 타인에게 잘 보이기 위한 생활이 아닌 참되고 진솔하게 살아가야겠다.

사색과 반성의 시간을 통해 고요한 마음으로 지족 한 삶을 살다가 조용하고 평화로운 졸업을 맞이하고 싶다.

이 시간, 문득 오래전에 본 영화 ‘졸업’의 마지막 장면,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로 면사포를 휘날리며 남자 친구의 손에 이끌려 불안한 미래로 뛰어드는 여주인공의 무모하면서도 용기 있는 모습이 떠오르는 것은 왜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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