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머니

by 민정애

친정 엄마가 한 달 전부터 감자를 캐 놓았으니 가져가라는 연락을 하셨다. 사실 감자는 핑계이고 보고 싶다는 뜻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 바쁘다는 핑계로 선뜻 길을 나서지 못했다. 제헌절을 이틀 앞두고 또 전화를 하셨다. 전화를 받자마자 ‘엄마, 제헌절 날 갈게요.’라고 내가 먼저 말했더니 엄마는 ‘그래, 꼭 와라 꼭 와, 확실히 올 거지.’라고 몇 번을 확인하고 전화를 끊으셨다. 수화기를 내려놓고 많은 생각을 했다. 내 나이 쉰 하나인데 아직도 부모님 모두 생존에 계신 것만으로도 나는 축복받은 사람임에 틀림없다. 자식이 효도하려 해도 부모님이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말씀이 있는데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불효를 저지르고 있다. 내가 어렸을 때 엄마는 동네에서 제일 멋쟁이셨다. 하이힐을 동네에서 제일 먼저 신으셨고 양산을 제일 먼저 들고 다니셨다. 그 당시 우리는 대전에 살았는데 서울이 고향인 어머니는 외가가 있는 서울에 가끔 다녀올 때면 빨강 노랑 파랑 나일론 원피스와 머리에 매는 나일론 리본을 우리 자매에게 안겨 주셨다. 그 덕분에 다른 아이들이 검정 무명 팬티만을 입고 다니던 시절에 우리 자매는 나일론 원피스를 나풀거리며 동네 아이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자랐다. 열아홉 살에 시집 온 엄마는 딸 넷을 낳고 밑으로 아들 둘을 낳으셨다. 남들이 딸만 낳는다고 수근거릴 때면 엄마는 ‘그래 두고 봐라 너의 아들보다 훌륭하게 가르칠 거다’라고 마음속으로 다짐을 하셨단다. 셋째 딸인 나를 낳으실 때는 진통이 오는데도 아무에게 알리지 않고 혼자 낳으셨다.

물을 끓여 가위를 소독하고 탯줄 자르는 방법이 쓰여 있는 일본 책을 읽으며 진통을 하면서도 혼자 아들을 낳아서 남편을 기쁘게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두려움도 잊을 수 있었단다. 그러나 낳아 놓고 보니 또 딸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엄마를 실망시킨 장본인이다. 그때 엄마는 오기가 생겼단다. 그래 아들 낳을 때까지 낳는다. 그다음 또 넷째 딸을 낳으셨고 그다음에야 드디어 아들 둘을 낳으셨다. 초등학교 선생님이셨던 아버지의 월급만으로 우리 6남매를 교육시키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어렸을 때의 기억으로 엄마는 우리를 위해 항상 무언가를 하셨다. 자다가 화장실이 가고 싶어 일어날 때면 남포 불 밑에서 일본에서 나온 뜨개질 책을 보시며 무늬를 넣어가며 뜨개질을 하고 계셨고 예쁜 무늬에 포프린을 사다가 카라에 레이스를 단 원피스와 블라우스를 만들어 딸들에게 입혔다. 그뿐인가 소창이라 불렸던 자연 소재로 잠옷까지 예쁘게 만들어 입혔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값진 옷이었는데 그 당시에는 엄마가 손수 만들어 주는 옷보다 시장에서 사는 옷을 더 입고 싶어 했었다. 흙벽돌을 손수 찍어 집을 지어 군인가족들에게 세를 주기도 했고 직장도 다니셨고 서울에서 사업을 했던 친지에게 힘들게 모은 돈을 떼어서 어려움을 겪기도 하셨다. 그 당시 큰 어려움을 겪으실 때 어린 나이의 나는 엄마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내가 엄마가 되고, 나 역시 보다 나은 환경을 자식에게 제공해 주고 싶어 여러 가지 일을 하다 보니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일을 겪을 때마다 그때 엄마를 원망했던 마음이 뼈저리게 반성된다. 그 모든 어려움을 겪으신 이유가 딸들에게도 교육받을 기회를 주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 당시 우리 동네만 해도 중학교에 진학하는 여학생은 거의 없었다. 어렸을 때의 기억으로 엄마는 항상 부지런하셨고 미래지향적이셨다. 그리고 여흥을 즐길 줄 아는 멋진 분이셨다. 바쁘게 일하면서도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셨고 북 꽹과리 장구를 배우는가 하면(지금 까지도 어떤 노래에도 박자를 맞출 수 있는 수준급이시다) 빠듯한 생활이면서도 축음기도 마련하셨고 이미자 레코드도 나오는 대로 사 모으셨다. 엄마가 지금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유명한 연예인이 되셨을 거란 생각을 할 정도다. 그 당시 여성답지 않게 당당하게 사셨지만 초등학교 선생님이셨던 아버지께서 엄마의 욕구를 다 채워주지 못한 것 같아 연민이 인다. 내가 나이를 먹고 보니 여성으로서의 엄마를 충분히 이해하게 되고 깊이 사랑과 존경을 표하고 싶다. 오라 오라 하기 전에 자주 찾아뵈어야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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