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중일기]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은 궁금하실 수도 있다.
과연 필자는 매일 달리는가?
아니다. 나는 매일 달리지 않는다.
‘달려야 산다’고 말하면서
왜 달리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다시 한 번 대답하겠다.
나는 매일 달리지 않는다.
이유는 단 하나.
강박적으로 운동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헬스장에 가고 싶을 땐 헬스장에 가고,
달리고 싶을 땐 달리고,
걷고 싶을 땐 걷고,
산이 부르면 산으로 간다.
그때그때 내가 원하는 운동을, 내가 원하는 만큼 한다.
그럼에도 ‘런중일기’라는 제목을 붙인 건
그 중에서도 달리기를 가장 좋아하기 때문이다.
달릴 때 명상이 가장 잘 된다.
차가운 겨울 공기가 어두컴컴한 머릿속을
날카롭게 헤집는 그 상쾌한 느낌이 좋다.
연말부터 최근까지
과중한 회사 업무와 A형 독감 이후
내 라이프 패턴은 박살이 났다.
무기력과 우울이 몰려왔고,
나는 그 이불 안에 나를 가두었다.
결과는 참담했다.
연차를 내고 병원 진료를 기다리며
SNS로 지인과 대화를 하던 중,
내 우울을 진심으로 고백하는 순간
참았던 눈물이 터졌다.
수도꼭지가 터지듯, 멈출 수 없었다.
마침 내 진료 순서가 되어
의사 앞에 앉았을 때도
나는 말없이 울고 있었다.
"… 무슨 일 있으세요?”
대답 대신 핸드폰에 적어두었던 글을 보여주었다.
‘우울이 심해졌다’고 적혀 있던 몇 마디.
그 말을 의사선생님이 진료 차트에 옮겨 적는 동안,
나는 조용히 더 울었다.
그 순간, 나도 내 감정의 무게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TV 소리조차 듣기 싫을 정도로 지쳐 있었다.
살기 싫은 건 아니었지만,
내 삶을 내가 조절하지 못하는 것이 싫었다.
운동할 땐 운동하고
일할 땐 일하고
밥 먹을 땐 맛있게 먹고 싶었지만
아침에 눈을 뜨는 것이 지옥 같았고,
씻는 것도, 바깥에 나가는 것도 죽기보다 싫었다.
로션을 바르기도 싫고,
그냥 이불 속에서
오래도록 조용히 사라지고 싶었다.
먹기도 싫고, 움직이기도 싫고,
세상의 모든 소음이 싫었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의도치 않게, 내 인생에 스스로 먹칠하고 있는 기분이다.”
의사선생님은 조용히 이렇게 말씀하셨다.
“약을 새로 다 바꿔드릴게요. 걱정 말고 푹 쉬세요.”
“이 또한 지나가요~”
나는 대답도 못 한 채
휴지로 코를 틀어막고 겨우 병원을 나왔다.
운전하면서도 울고,
집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며도 울고,
모자와 잠바를 벗으며도 울었다.
모든 감정이 터지기까지 2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지쳐버린 몸과 마음,
한숨 자고 싶었지만
잠도 오지 않았다.
그런 상태에서도
나는 약속된 병원 동행을 위해
요양원 원장님과 함께 길을 나섰다.
운전하는 내내 나는 화가 나 있었다.
내가 나를 조절하지 못할 때,
나는 나 자신에게 화내는 습관이 있다.
그러다 휠체어에 앉아
예쁜 보라색 털모자에
의료용 마스크를 쓴
우리 할머니를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여기서 또 보네~ ^^”
할머니는 그렇게 인사를 건네고
내 손을 어루만져 주었다.
“점심 먹고 앉아있는데
어딜 가자고 하길래 따라왔더니
너를 보게 되다니 정말 좋다.
너를 볼 수 있어서.”
나는 말없이 할머니를 꼭 안았다.
마음속으로 조용히 중얼거렸다.
“고마워요, 살아 있어줘서…
이런 나를 보고 웃어줘서.”
진료를 마친 뒤
요양원 가족들과 할머니를 보내고 돌아오는 길,
창밖 어느 회사 외벽에 크게 적힌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웃자. 그냥 웃자^^]
순간
가슴속에서 다시 뭔가가 움직였다.
“할머니, 나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아요.
힘을 좀 내볼게요.”
지금은 내 몸을 쉬게 해야 할 때다.
나는 운동을 사랑하지만,
오래 하기 위해선 조절이 필요하다는 걸 배웠다.
그래서 나는, 매일 달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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