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중일기]
어릴 적 우리 할머니는 돼지갈비집을 하셨다.
깍두기를 참 맛있게 담그시던 분이었다.
항상 우렁찬 목소리로 말씀하셔서
어린 나는 자주 혼나는 줄 알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화가 아니라 삶의 무게였다.
피로와 분노가 언어의 억양으로 스며든 거였을지도 모른다.
할머니는 독실한 불교 신자셨고,
우리 엄마는 기독교인이었다.
두 분은 자주 다투셨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한 집에 두 종교가 있으면 안 된다'는
단순하고도 지독한 생각을 갖게 됐다.
엄마는 갑작스러운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나는 당연히 외할머니와 살게 될 줄 알았다.
어릴 적부터 우리를 돌봐주신 분이었으니까.
하지만 우리는 친할머니 집으로 보내졌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들.
외할머니는 세상물정을 잘 모르셨고
기도원에서 지내시다 그곳에서 생을 마감하셨단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
슬프다기보다 허전했다.
마음 한 켠이 조용히 쓸려나갔다.
마흔이 가까운 지금도,
그날 밤의 기억은 선명하다.
집안이 무너지듯 휘청였고
우리는 야반도주하듯 짐을 챙겨
친할머니 집으로 향했다.
외할머니는 나를 꼭 안고 말씀하셨다.
“동생이랑 싸우지 말고, 친할머니 말씀 잘 들어야 해.”
늘 하시던 말이었는데
그날따라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마지막 인사였기 때문이겠지.
어두운 방,
창문 사이로 달빛이 흘렀다.
곁에서 자는 동생 얼굴이 은은하게 빛났다.
‘녀석… 아무것도 모르고 잘 자네.
우린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지…’
나는 조용히 다짐했다.
다음 날, 시장에 가서 엄마를 찾겠다고.
엄마는 아직 어딘가에서 장을 보고 계실지도 모른다고.
죽었다는 말, 그건 다 거짓말일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어린 나는,
아직 끝나지 않은 세상 속에서
작은 새벽을 버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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