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다시 그 여름의 병실에서...

[런중일기]

by 달리는아이

2024년 6월의 어느 날 아침 9시.
그 시간에 본가로부터 오는 전화는 언제나 불길하다.
마른침을 삼키며 전화를 받는다.


동생의 떨리는 목소리.
할머니가 침대에서 떨어졌단다.

고관절을 다쳐 움직이지 못하신다며,

동생은 침착하려 애쓰고 있었다.


나는 알면서도 무심한 척 말했다.
“119 불러. 지금은 그게 먼저야.”


사실… 가고 싶지 않았다.
그곳은 나의 과거가,
먼지 낀 서랍처럼 켜켜이 쌓인 장소였다.

그래도 결국 시동을 걸었다.
6월 중순의 뜨거운 열기가
내 주저함을 비웃듯 차 안을 달궜다.


병원 도착.
동생과 눈인사.
할머니 곁에서 우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침도 못 먹은 동생에게 밥부터 먹이려 식당에 들렀다.
들어보니 상황은 생각보다 더 심각했다.


의사는 말했다.
“수술 안 하면 생존은 길어야 한 달입니다.”
“수술해도 장담은 어렵습니다.”

우린 수술을 결정했다.


그렇게 나는 병원 간이침대에 눕게 되었다.

밤새 병원은 깨어 있었다.
간호사들의 발소리,
기계음,
할머니의 잠꼬대.

새벽 5시, 병원은 다시 깨어났다.

식사가 나왔고,
나는 국에 밥을 말아
할머니께 몇 스푼 떠먹여 드렸다.

“좀 드셔야 큰 수술 버티시죠…”

그때, 할머니가 조용히 말씀하셨다.
“그냥 죽었으면 좋겠어…”

오히려 그 말에 안심이 됐다.
정신이 돌아오셨다는 뜻이니까.


작은아버지가 병원에 왔다.
우린 회의를 했다.
수술, 병원비, 현실.

작은아버지는 내 얼굴을 못 알아봤다.
마스크를 내리자,
“저예요.”
술 끊고 30kg 감량한 지금의 나.
몰라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지.


수술 당일 의사와의 미팅이 끝난 뒤,
나는 몇 번이나 고개를 숙이며 수술 잘 부탁드린다고 인사했다.
돌아서는데 문득
내가 18살에 고등학교 1학년으로 복학하던 날
할머니가 선생님들께 연신 허리 굽혀 잘 부탁드린다고

인사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의 할머니와 지금의 할머니.
같은 사람이 맞을까 싶은 시간의 거리.
그 모든 감정과 기억이
병실의 공기 속에 가만히 떠 있었다.


#런중일기 #가족의시간 #병원에서보낸밤 #할머니와나 #돌봄의기억 #삶과죽음사이 #병실일기

#가족에세이 #성장과회복 #그날의기억

작가의 이전글12. 그날의 공기, 그날의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