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내가 너무 늦게 이해한 것들

[런중일기]

by 달리는아이

나의 어린 시절은
찬란했다.
아니,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들 만큼
뜨겁고 벅찼다.


그 모든 시절의 중심에는
할머니가 늘 계셨다.


하지만
나는 몰랐다.
할머니가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고
걱정하고
미안해했는지.


간헐적으로 정신이 돌아오신 할머니는
이따금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사는 곳도 한번 못 가보고… 미안해서, 어떡하면 좋으냐…”


그 한마디가
30년 동안 꽁꽁 잠가 두었던 문을
천천히 열어젖혔다.


할머니는 늘
남동생만 걱정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같이 살자고 제안해도
가보자 해도
한사코 거절하시던 모습이
서운함으로만 남았다.


내가 힘들어 술에 빠져 살던 시절
할머니의 전화는
늘 남동생 이야기였다.
나는 울며 소리쳤다.
“나도 힘들어…
내 걱정은 안 돼? 내가 밥은 먹고 다니는지 궁금하지도 않아?”


그 말 이후
할머니는
하소연을 조금씩 줄이셨다.


나는 어릴 때부터
동생과 엮이기 싫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왜 희생하고,
왜 서로를 갉아먹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달랐다.
8남매의 장녀였던 할머니는
동생들을 업고 학교에 가야 했고
돈 벌 줄 몰랐던 당신 아버지를 대신해
가족을 책임지며 살았다.


그러니 내 모습이
차갑고 모질게만
보이셨을 것이다.
“넌 왜 이리 모지니…”
그 말이
이제는 이해가 된다.


나는 나를 먼저 챙기는 사람이었다.
할머니는 가족을 먼저 챙기던 사람이었다.
서로의 방식은 달랐지만
우린 결국
서로를 닮아 있었다.


할머니는 알고 계셨다.
우리가 사촌언니로부터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다는 걸.
하지만 누구 편도 들 수 없었다.
괴롭힌 아이도 손녀,
당한 아이도 손녀.


그 상황에서
할머니는
시간이 해결해주길 바랐다.
하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사촌언니의 구타와 학대,
종교적 갈등.
결국 우리는
큰엄마의 집으로 향했다.


할머니는 많이
서운해하셨다.


영세민 등록을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던
그 노력을 내가 아니까
미안함이 자꾸만
가슴 깊이 차올랐다.


그때는 몰랐던 것들,
이제는 안다.


할머니는,
언제나 우리를
사랑하고 계셨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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