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다 울었니? 그럼 이제 할 일을 하자

[런중일기]

by 달리는아이





윤단장이 갑자기 직원들 점심을 산다는 말을
어깨너머로 듣고, 엉겁결에 휴가를 내버렸다.

사실 뭘 해야 할지 계획도 없었고
그냥 연차를 써버린 하루였다.
그리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심리상담을 받으러 가는 것이었다.

지난 이야기를 하다 엄마 얘기가 나오자
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내가 해온 거의 모든 행동의 뿌리가
‘외로움’에서 비롯되었다는 말을 듣고서야
나조차 이해되지 않던
특이한 행동과 말들이 하나씩 설명되기 시작했다.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아직도
수학 공식처럼 복잡하고 난잡하다.
퍼즐처럼 이어져 있어
단번에 알아차리기는 쉽지 않다.

그래도 앞으로는
그 감정을 밀어내지 않고
계속 인지하며
외로움을 내 친구로 만들어
인생길을 함께 가보려 한다.

외로움의 끝은 우울증이라 했다.
어쩌면 내가 지금 만성우울증을 겪는 이유도
거기에서 비롯된 것일지 모른다.

상담 이야기는 이쯤 해두고,


따뜻한 쌀국수를 먹고 안경점을 찾았다.

변색렌즈의 치명적인 단점을
끝내 극복하지 못한 탓이다.
회사에서 사람을 만날 때
선글라스로 변한 안경을 쓰고 있는 모습은
이 나라 정서상 납득되기 어려운 상황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거금을 들여
안경을 하나 더 맞췄다.
이번에는, 내가 정말 쓰고 싶은 것으로.

이런 선택을 하며
내 소비 기준이 꽤 달라졌다는 걸 느낀다.
쓸 땐 쓰되,
아낄 땐 아끼자.

예를 들면…
넷플릭스 팝콘 같은 것들.
그런 건 이제 좀 줄이자.

그렇게 말해놓고는
집 앞 편의점에서
넷플릭스 팝콘과 우유 두 팩을 사 와
유튜브를 보며 우걱우걱 먹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팝콘을 먹는데 배부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그대로 침대에 누워 잠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눈을 떠보니 저녁 여섯 시가 다 되어 있었다.
오늘 대체 몇 시간을 잔 걸까.

새로 산 반신욕조를 펼쳐놓고
한참을 망설이다가
‘일단 해보자’는 마음으로
저녁을 먹고 바로 반신욕을 했다.

우리 집 화장실이
이렇게 낯선 공간이었나.
이 호사스러움에 정신이 멍해졌다.

‘내가 이렇게 살아도 되나?’
‘나만 너무 잘사는 거 아니야?’

그런 생각들과 함께
가난하고 힘들었던 옛날 기억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구더기가 우글대던 푸세식 화장실,
떡국에 콩이 들어 있길래
수저로 퍼냈더니 바퀴벌레였던 가겟방.

수많은 역경의 시간을 지나
나는 여기까지 왔다.

신기하게도
이게 현실이다.
엄마가 보고 싶어 울어도,
그래도 이게 현실이다.

나는 지금을 살아야 한다.
나는 나를 돌봐야 한다.

이제는 ‘다시 시작’이라는 말을
해도 될 것 같다.

마흔을 기점으로
많은 것들이 바뀌기 시작했다.
이제, 내가 움직일 차례다.

“다 울었니? 그럼 이제 할 일을 하자.”


#런중일기 #삶도달리는중 #숨고르는구간

#대충살지않는다 #나를돌보는연습 #살아낸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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