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할머니의 노랫소리 따라 달리기

[런중일기]

by 달리는아이


낮에 뵌 할머니의 노랫소리가 오늘 20km 러닝 내내 귓가를 맴돌았다.
그 목소리는 세월을 통과해온 울림이었고, 망각이라는 신의 선물 덕분에 여전히 맑고 자유로웠다.
예전의 나는 달리기를 분노와 원망으로 채웠다.
세상에 대한 억울함,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 남들이 모르는 무게들을 증명하듯 쏟아내며 달렸다.
달리기는 나의 방패였고, 동시에 세상에 대한 작은 반항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제 내 발걸음의 무게는 분노가 아니라 사랑이다.
나는 할머니를 위해 달린다.
언젠가 완주 후 목에 걸린 메달 하나라도, 꼭 할머니 목에 직접 걸어드리기 위해서.
그 순간 할머니의 노랫소리가 다시 울려 퍼진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짜 승리일 것이다.


할머니의 하루는 잊어버림 속에서 평화롭다.
화내고 속상했던 일들은 사라지고, 우리가 함께 살았던 시간이 가장 행복했다고 말씀하신다.
나에게는 아프고 무겁게만 남아 있는 기억들이, 할머니의 마음속에서는 따뜻한 빛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이 나를 울컥하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뛴다.
내가 기억하지 못한 좋은 순간까지, 대신 달려서 품어내고 싶은 마음으로.
20km를 달리며 나는 깨달았다.
이 길 위에서 나는 더 이상 도망치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사랑하는 이를 위해, 그리고 스스로를 위해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다.
그리고 언젠가, 내가 달려 얻은 모든 땀방울이 할머니의 노랫소리와 만나 하나의 선율이 될 것이다.
오늘의 20km는 다리가 아니라, 사랑과 기억과 노래가 이끌어준 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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