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문을 여는 법

벤처 인증 이야기

by M변

2024. 9. 어느 날.

법무법인 이을 간판을 올린지 두 달도 안되었을 무렵이었다.


한 장의 명함이 물음표 처럼 메신저로 전달되었다. 친정 로펌에서 아직 열심히 일하고 있는 변호사 S의 전화 한 통이 가져온 것은 단순한 의뢰가 아니었다. 20년 업력의 첨단 제조업체 K사, 그들이 원한 것은 관계사 임직원들을 위한 대규모 스톡옵션 설계였다. 소송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친정 로펌에서 수행하기에는 조금 부담스러워 넘겨받은 이 일은, 마치 깊은 물속에 던져진 돌멩이처럼 파문을 일으키며 시작되었다.


K사의 본사는 연구소 때문에 경기 남부로 이전한 곳이었다. 두 번의 출장, CFO 앞에서의 프레젠테이션, 그리고 국내 10위권 대형 로펌과의 경쟁. 결국 선택받았지만, 자문료는 처음 제안의 절반으로 깎였다. 그래도 개업한지 두 달된 나에게 이것은 승리였다. 아니, 승리의 시작이었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K사는 법무팀도 없이 총무인사팀이 법무를 겸하고 있었고, 실무자들은 마치 정해진 궤도만 도는 행성처럼 경직되어 있었다. 거의 외부 법무팀 역할을 자처하며 같은 쟁점을 도돌이표처럼 반복 검토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1990년대 설립된 K사는 벤처기업이 아니었다. 일반 기업은 자사 임직원에게만 스톡옵션을 줄 수 있고, 그 수량도 발행 주식의 10%를 넘지 못한다. 관계사 임직원들에게까지 확대하려는 K사의 꿈은 법의 벽 앞에서 막혀 있었다. 변호사와 실무자들, 그 누구도 30년 된 중견기업이 벤처기업이 될 수 있다는 상상을 하지 못했다. 큰 회사라는 겉모습이 만든 고정관념의 감옥이었다.


답은 의외의 곳에서 왔다.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매형과의 점심 자리였다. K사의 고민을 털어놓자, 매형과 그의 지인이 동시에 던진 한마디 - "그냥 벤처 인증 받으면 안 돼?" 이 단순한 질문이 모든 것을 바꿨다. 벤처기업이 되면 관계사 임직원은 물론 외부 전문가에게까지 주식의 50% 범위 내에서 스톡옵션을 줄 수 있다. 법인세 감면, 인건비 지원까지 따라온다. 그런데 왜 아무도 이 길을 생각하지 못했을까?


K사 부장에게 물었다. "왜 벤처인증을 받지 않으셨습니까?"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아무도 제안하지 않았습니다." 대형 로펌도, 대형 회계법인도 거쳐간 이 회사에 아무도 이 단순한 해법을 제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때로는 전문가의 시선이 오히려 가능성을 가리는 장막이 되기도 한다.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세심하게 관찰하는 전문가들의 맹점이었다.




2024년 4월, K사는 마침내 벤처기업 인증을 받았다.


복잡하게 얽혀 있던 실타래가 단번에 풀렸다. 이 이야기가 주는 교훈은 명확하다. 때로는 문제의 답이 문제 자체를 다시 정의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30년 된 제조업체가 벤처기업이 될 수 없다는 선입견, 대형 로펌이 놓친 것을 작은 로펌이 찾을 수 없다는 편견, 이 모든 것들이 우리가 스스로 만든 보이지 않는 벽들이었다.


나의 작은 승리는 이렇게 시작된 것이라 믿고 있다.


거대한 바위를 굴리는 것뿐 아니라, 가야하는 길에 숨겨진 문을 찾는 것. 그것이 진정한 법률 자문의 가치가 아닐까. 물론, 지나고 보니 자문료를 훨씬 더 받았어야 했다는 아쉬움은 남는다. 하지만 이 경험이 준 가장 큰 선물은 따로 있다. 보이지 않는 문을 여는 열쇠는 때로 가장 평범한 질문 속에 숨어있다는 깨달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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