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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펜하이머

J. 로버트 오펜하이머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영어: Julius Robert Oppenheimer, FRS, 1904년 4월 22일 ~ 1967년 2월 18일)는 미국의 이론물리학자이다. 하버드 대학교를 졸업한 후 영국과 독일에 유학하였다. 미국에 돌아와서 오랫동안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에서 재직하였고,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로스앨러모스 국립 연구소장이 되어 여러 학자들과 함께 원자폭탄을 만들기 위한 맨해튼 계획을 수행하였다. 1950년 수소폭탄 제조에 반대하였다가 모든 공직에서 쫓겨난 것으로 유명하다.


1962년 5월 2일 영국 왕립 학회의 국외회원으로 선출되었다.


1904년 4월 22일 뉴욕의 한 부유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1925년에 하버드 대학교 화학과를 최우등으로 졸업했다. 그리고, 3개월 후에 영국의 케임브리지 대학교 캐벤디시 연구소(물리학 연구소)의 J.J. 톰슨 밑으로 유학을 갔다.


1929년 25살 버클리에서 처음 교편을 잡았다.


1930년대 정치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함.

노조운동 특히 교직원 노동조합에의 적극적인 참여는 자연히 주변에 반 나치즘과 반파시즘 운동을 하는 좌익계의 친구들이 모여들게 하였다. 약혼녀였던 진 테트록의 공산당원 경력 , 1940년 공산당원의 처였던 캬타린 해린슨(애칭 키티)과의 결혼은 2차 대전 후 미국을 휩쓴 매카시 선풍에서 오펜하이머를 궁지에 몰아넣은 주요 사건들이 된다.


1943년 3월에서 1945년 10월까지의 2년 7개월 동안 원자폭탄을 설계ㆍ제작한 로스 알라모스 연구소 소장으로 재직했다. 이 시기에 대한 평가는 그의 천재성 없이는 원자폭탄의 개발은 불가능했을 것이란 극찬에서부터 그가 한 일은 실제로 별 것이 아니었다는 비하론까지 다양하다.


1965년 말에 두경부암 진단을 받았다.


1967년 2월 18일, 그는 프린스턴에 있는 그의 집에서 62세의 나이로 자다가 사망했다.

---위키백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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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폭탄의 아버지라 불리는 오펜하이머. 요즘 영화와 일본의 방사능 오염수로 이슈가 되고 있다.


일본과 일부 과학자의 주장처럼 오염수 방출이 문제없을 수도 있지만, 그 주장을 우리 정부가, 우리가 낸 세금으로, 안전하다고 홍보하는 것은 어처구니가 없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 정부는 언제나 대한민국 국민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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