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인간은 자기 운명의 개척자이다.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카이쿠스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카이쿠스 (Appius Claudius Caecus, 활동 시기 312년경–279년)는 로마 공화정 시기의 정치인이자 저술가이다. 최초의 로마 대로인 아피아 가도와 로마 시내 최초의 수도교인 아쿠아 아피아 등 두 개 대형 건설 작업을 진두지휘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당시 로마 정국을 주도한 인물이었다. 기원전 312년부터 307년까지 그는 인구를 조사하고, 세금을 매기고, 주민들의 풍속을 감시하는 중요한 관리인 감찰관(censor)을 지냈다. 이어 집정관(consul), 섭정(interrex), 부집정관(praetor), 그리고 독재자(dictator)와 같은 중요한 자리들을 맡았다.
그는 귀족들의 권리를 줄이고 도시 평민들의 권리를 늘리는 개혁을 추진해서, 정치적 세력과 명성을 함께 얻었다. 연설과 저작에도 뛰어난 재능을 지녔고 문법에도 관심을 가져서, 라틴어 산문과 연설의 기초를 다졌다는 후세의 평가를 받았다.
감찰관으로 일하던 312년에 그는 로마에서 카푸아(나폴리 북쪽)에 이르는 도로를 만들었는데, 그것에 그의 이름을 딴「아피아 가도(Via Appia)」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중요한 도로에 자신의 이름이 붙여지는 것은 누구에게도 큰 영광이지만, 그것이 후세에 얼마나 큰 영광으로 판명될지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자신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피아 가도는 처음엔 1백32마일이었고 자갈로 덮였었다. 그 뒤로 꾸준히 개선되어 폭이 6미터에 이르렀고 돌이나 용암으로 포장되었다. 아울러 계속 연장되어 브룬디시움(지금의 브린디시로 이탈리아 반도의 남동쪽에 있음)과 레지움(지금의 레지오로 반도의 남서쪽에 있음)까지 닿았다. 브룬디시움은 그리스와 소아시아로 가는 병력들을 태운 배들이 출발하는 항구였고, 레지움은 마주보는 시실리를 거쳐 북 아프리카로 가는 항구였다.
이탈리아 반도를 남북으로 관통했으므로, 아피아 가도는 모든 면에서 로마의 중심적 도로였다. 특히 그것은 군사적으로 중요했다. 로마가 제국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넘어야 했던 가장 큰 고비들이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와 치른 세 차례의 '포에니 전쟁'과 그리스의 마케도니아와 치른 세 차례의 '마케도니아 전쟁'이었음을 생각하면, 로마에서 레지움과 브룬디시움에 이르는 아피아 가도의 중요성이 또렷히 드러난다.
자연히, 아피아 가도는 로마 사람들의 사랑과 칭찬을 받았고'원로(遠路)의 여왕' 이라 일컬어지기까지 했다. 덕분에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는 불후의 명성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