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이에 공주병이라니?

Aug 25. 2025

나는 미인상이 아니다. 커다란 눈, 높은 코, 도톰한 입술에 매끄러운 계란형 얼굴은 전형적인 미인형 얼굴의 공식이다. 작은 듯한 눈, 동그랗고 낮은 코, 작고 얇은 입술을 가진 나는 스스로를 예쁘지 않다고 생각해 왔다. 츤데레인 내 남편은 연애할 때조차도 나에 대한 칭찬은 일절 하지 않았다. "나 예뻐? "하고 물으면, "그 정도로 예쁘진 않아. "라고 했다. 장난인지 진심인지 모를 '못생겼다. '는 표현도 자주 했다. 결혼 생활을 하며, 나의 외모 자존감은 점점 더 떨어졌다. 나 빼고 세상 모든 여자들이 예뻐 보였다. 저 사람은 눈이 정말 예쁘다, 저 사람은 어쩜 저렇게 코가 높을까, 저 사람의 얼굴형이 너무 부러워. 내 얼굴에서는 단점만 찾아내던 내가 다른 사람의 얼굴에서는 장점들만 쏙쏙 찾아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정말 예쁘지 않은 건가?'

생각해 보면 학창 시절부터 결혼 전까지 남자들에게 인기가 꽤나 있는 편이었다. 당시에는 예쁘지도 않은 날 왜 좋아하는 거지, 나도 모르는 특별한 매력이 있는 걸까, 하고 의아해하곤 했다. 오래전 사진첩들을 뒤져본다. 역시 미인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특유의 귀여움과 여성스러움이 얼굴에 묻어난다. 자꾸 보다 보니, 인기 많을 법했네, 싶다. 종종 들었던 '예쁘다. '는 말들도 어쩌면 인사치레만은 아니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 나 안 못생겼어! 오늘부터 내가 나를 예뻐해 줘야겠어. '

거울을 보고 최면을 건다. 요즘은 너무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화려한 얼굴보다는 나처럼 자연스럽고 동글동글한 얼굴이 대세지. 내 안의 미적 기준을 바꿔본다. 매일 거울을 보며 억지로 미소 지으며 말한다.

"음, 너무 예쁜 걸! "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며 셀프칭찬에 익숙해졌고, 결국은 받아들이게 되었다. 가스라이팅이 이렇게 무섭구나! 이제는 거울을 볼 때마다 진심으로 예쁘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감이 없어 활짝 웃지 못했던 지난날들에 비하면 당당하게 미소 짓는 얼굴이 훨씬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자, 이제 셀프가스라이팅은 끝났고 남편을 가스라이팅 할 시간이다. 남편에게 끊임없이 내가 미인이라는 것을 주입시킨다. 처음에는 격렬히 거부반응을 보이던 남편도 어느 순간부터 인정하기 시작했다. 가스라이팅의 순기능이다.

예전에는 누군가가 외모 칭찬을 하면 부정하거나 겸손을 떨기 바빴는데, 요즘은 쿨하게 인정한다. 재수 없어 보여도 어쩔 수 없다. 그것이 공주의 숙명이니까. 가족들 앞에서도 대놓고 공주병 티를 낸다.

"엄마, 나 너무 예쁘지? "

"응? 그래, 그래. 예쁘지. "

"20대 때보다 더 예쁜 것 같지 않아? "

"응...?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 "

왜 당황하는 거지? 난 진심인데...

더 이상 다른 사람의 외모와 비교하지도 않는다. 사람의 얼굴은 모두 다르고, 저마다 제각각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 마흔을 향해가는 길목에서 공주병에 걸리고 나서야 깨달았다. 예쁨은 다른 사람의 인정이 아닌, 내가 나를 바라보는 마음에서 생긴다는 것을. 내가 나를 예쁘게 바라봐주면, 나는 정말로 예뻐진다는 것을 말이다. 끝으로 공주님들을 위한 노래, Prod. 과나의 '공주의 규칙' 노래 가사를 첨부한다. 천천히 음미하고 가슴에 새기시길 바란다.